호텔 조식을 먹기 전에 호텔 식당 옥상에 올라보니 맞은편 옥상에 고양이들이 일광욕을 하며 늘어져있다. 아마도 식당 부근이라 뭔가 콩고물을 노리고 모여드는 듯 했다. 식사는 빵과 각종 치즈, 계란 요리들, 잼들과 과일, 요거트 등등.. 특히 챠이가 씁쓸하지 않고 은근한 것이 참 괜찮았다.

 

 투어 차량이 오기 전에 지배인에게 벌룬 투어를 신청했다. 가격은 1인 150유로, 300TL. 깍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 깍쟁이 한국인이 되기 싫어서 바로 OK. 둘이서 600TL….전체 여행 비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예상에 없던 지출이었지만, 언제 다시 카파도키아에 들를까 하는 생각에, (잃어버린 캐리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신청을 했다.
 투어 차량이 호텔에 도착하고, 호텔에 있던 두커플의 신혼부부와 함께 투어를 하게 되었다. 셋다 신혼인데다가, 이국에서 동행하게 된 반가운 한국 사람들인지라, 금방 친해져 수다를 떨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두 커플 모두 카파도키아로 오는 여정이 녹녹치 않았던듯 하다. 한쪽은 카이세리 공항에서 짐을 찾고도, 검문에 걸려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픽업차량이 그냥 가버려 공항에서 1시간 반여를 기다려야 했고, 또 한쪽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항공편으로 짐이 오지 않는 바람에 다음날 짐을 받을 때까지 반팔차림으로 덜덜 떨어야 했다고…… 터키항공 수하물 배송사고가 엔간히 자주 일어나는 일인 모양이다.

 투어 가이드는 샤프하게 생긴 29세의 남자였는데, 느릿느릿한 영어 발음에, 일행들이 환호를 질렀다. 어제 투어의 여자 가이드분 발음이 워낙에 빨라서 그야말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멀뚱멀뚱 구경한 탓이란다.
 오르테히사르를 둘러보고, 로즈밸리로 향했다. 가이드가 “로즈밸리에서 챠우신 마을까지 트래킹 할까요.. 둘러보고 차로 이동할까요?”라고 묻는데, 모두 앞선 의욕으로 “걸어가요!”라고 대답했다. 가이드는 짧은 한숨을 쉬고 가게에 들러 조그만 생수를 사온다--;

 

 길 양쪽으로 포도밭이 펼쳐지는데, 흔히 보는 포도나무의 형태가 아니라, 건조한 기후에 적응이 쉬운 넝쿨형태의 포도나무들이었다. 중간중간 밭을 가는 현지인들과 마주쳤는데, 서로 웃으면서 간단한 목례와 함께 “메르하바”를 외쳐줬다. 트랙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과 쟁기를 이용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로즈 혹은 레드밸리라는 명칭은 계곡의 붉은색/흰색 줄무늬들 덕분에 생긴 것인데, 여러 차례 화산이 분출하면서, 온도가 높은 용암은 흰색, 낮은 온도의 용암은 붉은색이나 어두운 색으로 굳어지면서 이와 같은 줄무늬를 만든 것이라 한다. 용암과 바람, 물이 오랜시간 만들어 낸 별 세상의 풍경이다.

 

 

 한시간 남짓 걸어 챠우신 마을에 도착했다. 석회 바위를 파내고 생활하던 카파도키아 전통주거 형태인데, 7-80년전까지 그리스계 기독교도들이 거주하다가, 주민 교환 정책에 의해 빈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의 공동묘지와 함께, 메마른 황량한 풍경들이 왠지 서부영화에서 총잡들이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진 황량한 마을이지만, 건물 곳곳에 보이는 정성스레 쌓아 올린 벽돌들이나, 테라스를 내고 조각한 모양들을 보자면, 이곳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집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휴식도 취하고 마을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메뉴는 고기(닭고기, 쇠고기) 볶음밥과, 양고기 라비올리(조그만 만두를 소스에 비벼먹는 것). 일동은 모두 고기 볶음밥을 외쳤지만, 나는 용감하게 라비올리를 시켰다. 메인 메뉴 전에 샐러드와 스프가 나왔는데, 샐러드의 채소는 약간 쌉싸름한 맛이 도는 풀(?) 종류이고, 스프는 터키 전통의 묽은 요거트 스프이다.

 

 일행들은 모두 한숟가락 뜨고는 돌처럼 굳어버렸고, 냐궁이는 꿋꿋하게 바닥까지 긁었다—v 주인장이 메인메뉴를 들고 나타났는데, 하나도 줄지 않은 샐러드와 스프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프러블럼 인 스프? 프러블럼 인 스프?”를 묻는다.

 

 고기 볶음밥은 살짝 짠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다들 잘 먹었고, 양고기 만두 라비올리는 양고기 만두위에 얹혀진 뜨뜻한 요플레 소스 였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색적이라는 생각에 역시 바닥을 비웠다—v 옆에서 바라보던 일행들이 “개방적 입맛”이라고 별명을 붙여줬다—v

 식사후 카이마클르 지하도시를 방문했다. 아마도 히타이트 때부터 기원해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차츰 확장시킨 피난처로, 일상적으로 사람이 생활하는 곳은 아니고, 위급할 때에 숨기 위한 장소였다고 한다. 부엌으로 사용하던 곳에는 불을 사용했던 그을음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이 때 즈음 해서,  가이드가 다소 성의 없다는 생각이 굳어졌는데, 5년전에 왔을 때에는 로즈 밸리 트래킹도 좀 더 계곡에 접근했었고, 지하도시도 좀 더 깊은 곳까지 소개해 줬었기 때문이었다.

 

 

 터키석 공방을 둘러보고(어지간하면 밍군 귀걸이라도 하나 해볼까 싶었는데 너무 비싸다! 좀 이쁘다 싶은 건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니..), 피죤 밸리가 보이는 언덕을 향했다. 계곡에는 사람들이 파놓은 비둘기 집이 있었는데, 비둘이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기독교에서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으로는 건너편의 비둘기집 보다는 노점에서 만들어 놓은 ‘이블 아이’가 가득 매달린 나무가 인상적이었다.ㅎ

 

 

 투어를 마치고 일행들은 각각 카이세리 공항과, 파묵칼레를 가기 위해 위르깁 터미날에 내리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지배인에게 캐리어를 물으니, 이미 호텔방에 갖다 놨단다. 있다! 할렐루야!!! 지배인에게 “땡큐, 땡큐”를 외치며 세찬 악수를 하고 방으로 달려갔다. 캐리어 커버가 군데군데 뜯어지고, 캐리어 손잡이가 살짝 휘기도 하고, 몰골이 엉망이긴 했지만, 내용물은 무사하다! 아~ 산뜻한 속옷의 기쁨이여

 

 

 아주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위해 위르깁 시내로 향했다. 호텔서 도보 10분 정도…… 위르깁 시내는 한바퀴 도는데 걸어서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다. 고급스러워보이는 식당들도 몇 군데 보였지만, 손님들이 없는 듯 했고, 가이드 북에 첫번째로 나온 아부쉬 레스토랑은 아마도 없어진듯 했다. 벌룬투어를 신청하는 덕에 예산이 부족해져서, ATM 들러 500TL을 찾고 역시 가이드 북에서 찾은 키르데실레 피데 식당을 찾았다.

 


 가이드 북에는 사진 메뉴가 있어 고르기 편하다..라고 해놨던데, 사진은 있는데, 항아리 케밥들 같은 경우는 항아리 뚜껑을 덮어놓은 사진들이라 사실 있으나 없으나 였다--; 항아리 케밥(14TL)과 키말리 피데(7TL), 콜라(2TL), 스프라이트(2TL)을 시켰다. 항아리 케밥은 향신료를 우려낸 국물에 소고기 덩어리 들이 들어가 있었고, 맛은 짭짤하면서 살짝 장조림 같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키말리 피데가 대박이었는데, 계란 후라이(원래는 없는데 Mix 버전이라 얹혀진 것)가 얹어진 엽기적인 모습이었지만 꽤나 맛있었다.

 

 

 

 식당 벽과 테이블 유리 밑에는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냅킨에 남긴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는데, 우리도 끄적끄적 하나 적구 나왔다. 비행기에서 수하물을 엉뚱한 데 보냈다 하더라도 걱정 말라고……^^  그리고 식당 괜찮다는 이야기도..

 

 

 저녁을 먹고, 아까 한 커플이 알려준 동네서 가장 저렴하다는 마트(위르깁 터미날에 있다)에 가서 간단히 물과 주전부리를 샀다. 유제품 코너를 둘러보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만났는데, 바로 작은 페인트 통 수준으로 파는 요거트!! 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세상! 아마도 (대?)가족단위를 위한 요거트 제품인듯 했다. 또 하나 재미있던 건 대농에서 나오는 액티비아가 이 곳에서 팔리고 있던 것. 한국 식품회사가 터키에, 그것도 유제품으로 진출했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그리고 그 다음 일정을 체크해보니 살짝 걱정이 앞선다.
 새벽에 벌룬투어 – 종일 카파도키아 투어 – 데니즐리행 야간버스 – 다음날 – 파묵칼레 – 그리고 터키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울루데니즈까지. 꼬박 이틀 논스톱 여행이 될 예정이다. 즐거운 신혼여행이 지옥 극기훈련이 되지나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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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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