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2001년 9월 11일 100여층짜리 고층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장관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주변의 반응은
무척이나 상이했던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누군가는 미국이 희생한 수만명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며 통쾌했다. 나와 친구들도 각 입장을 두고
격한 감정 싸움을 벌인 기억이 있다. 미국 시민이었다면 일단은 무조건 전자의 입장을 취해야 했겠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에, 미국을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이 그때처럼 극명하게
교차했던 적도 없었다.

 사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헐리우드도 시류를 타서, [왜 적들은 우리를 미워하나?]를 묻는 영화들을 대거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스티브 개건이 감독하고, 조지클루니가 열연한 <시리아나, Syriana 2005> 가 있고,
소위 '헐리웃 공식'과 이러한 주제를 접목시키는 영화들, 에드워드 즈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제이미 폭스가 열연한 <킹덤, The Kingdom, 2007>등이 개봉했고,  굳이 이들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많은 영화들에서도,
중동 및 이슬람권을 분쟁 지역-미국에 적대적인-의 코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아이언 맨, Iron Man, 2008>에서도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다)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하는 헐리우드 답게, 영화에 절묘하게 녹여낸 [미국의 적] 코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 세게를 누비며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추상적인 선/악 구도를 제시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미국'의 입장들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까닭에, 미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냉정한 시선의 차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편, 여전히 상당수 중동 및 이슬람권 국가들은 미국 영화의 수입과 상영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예루살렘 쟁탈전을 소재로 화해의 메세지를 전달한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은 많은 중동국가들에서 상영이 허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하 소개할 영화 <트레이터, Traitor, 2008>와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역시 위에서 소개한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이며, 영화의 시선이 미국인들에게로 향할때와, 미국 밖의 사람들(여기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로
향할 때 발견되는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하다.


트레이터(Traitor, 2008)
감독 : 제프리 나크마노프
출연 : 가이 피어스, 돈 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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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버스테러를 계획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테러를 저지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폭탄전문가, 돈 치들)의 이중간첩 스릴러.
많은 이중간첩물이 그러하듯, 성공적인 침투를 위해 주인공은 아군에서도 소수에게만 알려진 극비의 존재이며,
그의 존재를 아는 소수가 그를 배신하거나, 죽임을 당함으로서, 결국 주인공 스스로 양쪽 모두의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는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이중간첩]플롯에 [미국의 적]코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 미정부 요원들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복수를 위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타락한 인물, 혹은 지나치게
순진해서 고뇌따위는 없는 단선적인 인물들로 그려지며, 주인공을 비호하는 미 정부 요원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소수 인명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서 영화가 취하는 시각은 주인공을 둘러싼 양쪽 인물들을 제거해(죽여)버림으로서, "그 어느쪽도 답이 아니다"
라는 양비론을 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손에 묻힌 피는 정당화 되고, 미국은 다시 한번 (테러를 막음으로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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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주인공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인명을 살상하는 방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는 이슬람 율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를 역설하며, 이러한 고뇌속에서 주인공은 이슬람 성자인 동시에, 미국의 수호성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다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역설되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을 벗어나 설득력이 있는지 살펴볼 일인데,
애초에 주인공은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미국 국적에,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아버지의 죽음도, 미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은
 출신과 믿는 종교에서 [미국의 적]들과 공통될 뿐이지, 미국에 대해 하등의 복수심 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아프리카계 이슬람교인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주인공에게 "동족"이라는 개념은 단지 이슬람 신앙으로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범위로 보이며,
애초에 위처럼 나이브한 결론을 내리고 미국을 구원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리라고 본다.

 결국 영화는 애초에 고뇌따위 할필요가 없는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그럴듯한 갈등과 스토리로,
[미국의 적]들에게 평화의 메세지를 역설하기에 다름 아니고, 이것이 '미국産-미制'가 갖는 한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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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다만 영화가 갖는 소기의 성과라면,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 시민인 주인공에게,
FBI요원인 가이 피어스의 입을 빌어 "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라고 인정하는 것 정도랄까?
이부분은 묘하게 오바마 미 대통령이 떠오른다.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감독 : 폴 해기스
출연 :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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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인종문제를 다룬 <크래시, Crash, 2004>의 폴 해기스 감독이 이번에는 이라크전을 치룬
미국 젊은이들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엘라의 계곡"의 은유는
전쟁(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적에 맞섰던 한명 한명의 미국 젊은이(다윗)로 풀이된다.
전쟁에서 승리했고, 살아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상처는, 되돌아 온 평온한 현실에서
그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겁고, 견디기 힘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지를 영화는 묻고 있다.

 다만 지금 리뷰를 작성하는 관객이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데, 미국 주변의 국가들이 느끼기에, 미국 젊은이들은 "다윗"
이라기 보다는 "골리앗"이고, 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국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타국 사람들의 숫자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가 휘두른 폭력과
그 국가에 속한 개인의 희생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영화는 무고한 미국의 '개인'
들이 '무엇을 위해서(석유든, 후세인이든, 화학무기든 간에)' 부조리하게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최소한의 설명을 했어야 했다.

 즉, 영화는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왜?"에 대한 해명은 없고, "희생"에 대한 강조만 하고 있기에
, 제3자인 한국의 검은머리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마도 이같은 사정을 고려했기에, 국내에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라크전을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내에서도 거듭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수지안맞는 이라크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09195 )

 토미 리 존스의 절절한 부정 연기와 여전사에서 돌아와 간만에 열연을 펼치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드라마로서는 훌륭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머나먼 타국의 관객에게 설득하기엔,
미국에 대한 애증의 골이 너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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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린 성조기마냥 미국은 총체적 난국이여..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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