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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9 회색인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종로로 모여 촛불을 켰다.
나 역시도 권력에 눈이 멀어 멀쩡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못난 심보에 무척이나 화가 났고, 종로에 나아가 '탄핵 반대'를 목이 쉬도록 외쳤더랬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났다. 나는 어느덧 '지성'에 목마른 청년이 되어있었다.
 사회주의 세계사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도 어설프나마 완독했고, (시각 예술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이미지의 정치학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아갔고, "한스 하케"나, "수잔 레이시"와 같은 공공성과 참여를 강조하는 작가들을 접하면서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고, FTA를 둘러싸고 광우병 촛불이 점화되었다. 100여일 가까이 촛불이 밝았다.
하지만 4년여간 '많이 공부한' 내가 촛불을 보고 떠올린 것은 '파시즘-집단적인 과격함'에 대한 환멸 혹은 공포였다. 또는 몽매한 대중이 또다른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는 냉소였고, 또는 대안이 없는 반대일 뿐이라는 도피였고, 나는 이러한 역학 관계에서 냉정을 잃지 않으며 휘둘리지 않는다는 비겁함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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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영결식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 영등포 구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5년여 전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 코를 찌르는 향내와 짐짓 숙연한 분위기에 괜시리 눈 밑이 화끈거렸다.

 내일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정권 타도를 외치며 촛불이 타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과연 영웅인가. 정권 타도가 해답인가. 분노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5년전의 뜨거웠던 가슴엔 쟂빛 의심만이 가득한 채로 말이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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