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01 제주도 무덤 투어 (11)
  2. 2007.12.20 가족사진
 지난 주말, 벌초를 하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여지껏 벌초는 아버지만의 일이었으나, 이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벌초 및 문중벌초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 일전에 두어번 벌초에 손을 도왔던 적이 있어서
 벌초 그 자체는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1박2일이었다.



 벌초 자체는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미리 몇기를 해두신 덕분에, 그리고 내 마음의 각오가 대단했던 탓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끝났지만,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것은 "집착"에 가까운 아버지의 벌초에 대한 태도였다.

 손주가 할머니 무덤에 처음 찾아가는 거라며 어머니께 요청했던 제사음식(그래서 결국 제주도에 계신 이모님이 준비하셨다)이나,
 뒤에서 장비를 챙겨 따라가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덤을 향해 My way를 외치시는 모습이나, 
 (덕분에 나는 진입로를 놓쳐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비포장로에 렌트카를 넣었다 범퍼를 긁고 속상해하는 나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으신 모습 등등...




 결국 화가 났던 나는 장갑과 모자를 아버지가 보란듯이 내팽겨쳤고.... 그리고 아버지의 "뭐지?" 하는 무심한 표정.
 분노의 예초기질을 해대며 분을 삭이다 결국 머릿속에 남은 건 아버지의 무심한 표정과, 그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를, 느끼지를 못하시는 걸까?'

 

 벌초를 마치고 읍내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골집-할머니가 사셨던-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을 건냈다.

"아버지, 아까 제가 왜 화났는지 아세요?"

"자동차 범퍼... 긁어서..?"

"제가 그것 때문에 화난 건 아시지만, 제가 화난 걸 이해하진 못하시죠?"

".....?"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후 약 한시간 여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의 성정 등으로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쌓인 것이 꽤나 많으셨던듯,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든다며 주변에 대한 원망과 울분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상 가족관계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 고립과 함께 더욱 커져버린 고집, 그리고 조상에 대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
이 모든 것이 쉽게 변하진..아니 아마 절대 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확신이 교차해갔다.
하지만 이도 마음에 안들고, 저도 마음에 안든다며 격하게 울분을 토하시는 아버지도,
아마 스스로 (그리고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 감정들을 쏟아내며, 그 감정의 진위, 정당성(?)에 대해
곱씹어보셨을 듯 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문중 벌초. 3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 넘게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들일듯 하다.
예초기가 두 대씩 돌고, 손이 많으니(-라지만 거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분위기) 벌초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예초기가 들어가기 힘든 돌담 주변이나 비석 주변은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도맡아 하셨는데, 
건 벌초가 끝나고 드리는 의식에서는 철저하게 (본인 스스로) 소외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회원 약관을 놓고 격하게 토론이 있었는데, 요는 문중회의 회비 납부 요건을 30세 이상 남성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해서 세대를 이룬 사람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 어느쪽에도 여성이 문중회의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논리를 연장해보면, 딸은 결혼을 하면 남편쪽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독신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딸은 부모님의 무덤에 풀 벨 자격도 없다는 것일까. 얼마전 폐지된 호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과연 문중회라는 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났다.



문중 벌초를 마치고, 외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온 적이 없으니 약 10년만이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시립 공동묘지인지라, 깔끔하고 접근도 쉽다. 우리 집은 항상 이렇다. 외가는 세련되고, 친가는 투박하고..
멀리 제주시내가, 그리고 더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아마 제주도에 경치 좋은 곳은 다 무덤이 차지하고 있을까 싶다.


 빌린차를 반납하기 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무작정 바닷가로 차를 달렸다. 멀리 노을이 지고, 멀리 무슨 테마 공원이라며
뻘짓거리로 만들어 놓은 목마형상의 등대도 보인다. 볼이 바람에 스치고, 아버지와의 1박2일이라는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앞으로의  나날들에 쓴웃음이 지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후 찾아오는 평온함을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짧은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수고했다"




이런 저런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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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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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kie 2011.09.19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대대손손 가족제도는 나에겐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ㅋㅋ 나날이.

  2. 워녕 2011.10.19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오랜만에 들어와서 오빠는 속상했을지 모를 아버지와의 대화를 보고 웃었네요.미안;;
    그런데 부모와의 갈등이란게 대화로 풀어가야 하는데, 결혼전에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오빠도 또다른 부모가 되어가는 첫걸음이니 그 갈등이 조금씩 표출되는거 아닐까요.
    저도 마찬가지로 엄마와 많은 마찰이 있었고, 지금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답니다.

    결혼한 남자들 대부분이 명절때만 되면 벌초하러 가느라 힘들긴 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부모님 마음이 조금씩 이해는 되요. 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무덤이 있다면 그곳에 내가 낳은 자식도 같이 가면 좋겠구나..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요.ㅎㅎ
    그런데 명절이라는 그런 날조차 없으면, 당연히 가야하는 날 조차 없다면 과연 챙길수 있을까..
    누구나 귀찮죠. 그래도 아버지 마음은 아들이 알아줘야 하는게 제 생각이예요.^^ 아버지인생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해못할게 없다는 생각입니다.ㅎ
    요즘 애키우면서 철이 들어가는 일인이 들렀다 갑니다용.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 냐궁 2011.10.21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우~! 오랫만이에야! 동규대규는 잘 크지!?
      많이 컸겠다~! 보구싶네..^^ 나도 내년초에 아빠가 될거라서 더 궁금하네..^^

      부모님과의 갈등이 이해로 해결이 되면 좋은데..이해는 하지만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상하면 그게 어려운 것 같아..^^

  3. 워녕 2011.10.22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내년에 아빠가 되는군요^^ 정말 축하드려요~~~ㅎ예정일이 몇월쯤이예요?
    민지가 배가 많이 나왔겠군요. 힘들겠다. 그래도 낳고나면 힘들어도 이쁜얼굴을 직접 대면할수 있는
    기쁨이 더 큰것 같아요. 성별은 어떻게 되요? 궁금하네요.ㅋㅋ

    저도 부모님에 대한 이해는 하지만 안맞는 부분이 많아서 대화를 할땐 서로 상처를 안주게 조심하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저도 자식이 생기니 부모님 마음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더이다.
    애들에게 하는 무의식중의 잔소리들이 울 엄마패턴과 똑같더라는..ㅋㅋㅋ;;;
    아기 생기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겠군요.
    애낳으면 남편도 한동안 자유롭지는 않은데, 그 전에 열심히 주변관리도 해놓으세요.ㅋ

    • 냐궁 2011.10.24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정이 2월 말~3월초쯤..^^
      배는 이제 막 부풀어 오르고 있음~
      성별은 아직 알려주지는 않았는데..
      아마 다음주쯤 정확히 알게 될듯..
      민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 초음파 보고 딸이라고 하고 있음..^^

      결국 자식은 부모의 거울일 수 밖에 없긴 한데..
      그래서 내가 못가진 것이 자식에게 결핍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내가 못가진 것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참 어려워..^^

  4. lakie 2011.11.15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옹. 아빠가 되는군. 왠지 회사 동갑들이 아빠가 되는건 납득이 되는데 학교친구들은 애를 실제로 봐도 실감이 안나는걸 보면 아직 맘의 준비가 안된걸까.ㅎㅎ
    하여간 ㅊㅋㅊㅋ
    원래 100% 준비 다 하고 일 벌리면 되는일이 없다는 듯. 지금 생각해보면 울 부모님들도 나름 시행착오가 심하셨던게구나 하는 부분들이 좀 있곤 해.ㅋㅋ

    • 냐궁 2011.11.16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라는거..낳아놓고 나면 더 그렇겠지만..
      그 생성(?)에서부터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더라고..
      그러니 어여어여 준비하시게나..^^

    • lakie 2011.11.17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왠지 여유있어보이는 멘트인걸.

    • 냐궁 2011.11.17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가 뜻대로 안생기면..뭐가 문제일까 고민해야 하고..
      들어서면, 초반에는 잘 자라고 있나 고민해야 하고...^^
      그래도 지금은 비교적 무던한 시기라...
      마지막 여유를 즐기는 중이랄까~

  5. 허준녕 2012.01.16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 뭐라 말할수없는 깊은 감정이 생기는 글입니다... ㅜㅜ ㅋㅋ

가족사진

휴지통/!! 2007.12.20 23: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 이란 언제나 나를 포근히 맞아줄 것 같은 따뜻한 감상을 젖게 하는 단어이지만,
여든 평생 홀로 살아온 생에 꼬장꼬장해져버린 할머니와,
각자 인생에 이야기가 있기에 마냥 감상적일 수 만은 없는 두 아들 -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 의 미묘한 긴장.

 TV 드라마, 소설, 영화 속에선 대체로 가족의 갈등과 긴장은 일말의 따스함과 웃음으로 매듭지어지지만,
가족, 현실 그대로의 가족이란, 혹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가족이란,
결코 그렇게 감상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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