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생계라는 것은 예술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 이전에 던져지는 문제이자 갈등이다. 갈등은 예술가의 행위와 사유에 끊임없이 침범하고, 때로는 예술가로 살 것이냐 말 것이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까지 서게 한다. 결국 예술가는 무엇이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질문이 던져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회사원과 예술가라는, 상반된 두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서 그 갈등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이며, 단순히 예술행위 밖에서가 아니라 그 갈등을 예술행위 안으로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대구 작은 공간 이소에서 김규형, 황영 작가와 함께 <회사원展>을 치루었다.
지난번 밍군의 <곰팡이展>을 통해 연이 닿은 <작은공간이소>의 운영자/기획자 황현호씨는 여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는데...
운영상, 그리고 개인 신변의 문제등으로 인해 내년엔 <작은공간이소>의 운영이 불투명하다 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함께 한 김규형작가, 황영작가 역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고,
나는 김창원, 홍준호, 라인석 작가를 끌어들여, 이들의 회사원으로서의 모습, 작가로서의 모습을 Collarboration 작업으로 이미지화했고,
이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았다. 작업노트에 적어두었지만, 회사원들이 예술 행위에 대한 사회학적인 접근-주로 부르디외식의-을
목표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간 기획이 되었다.
하지만 작업의 내용, 성공적인 시각화 등을 떠나서, 작업을 진행하며 내스스로의 위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가 된 듯 하다.
황현호씨와 함께 참여하신 작가분들과 나눌 이야기가 많았는데, 갈 길이 멀어 오래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 작업
김규형 작가 작업 - 시간의 중첩에 대한 작업.
황영작가 작업 - 회사생활에서 전화에 대한 본인의 경험, 감정에 대한 작업.
황영작가 작업 - 작업실, 의도적으로 불편한, 회사원도, 예술가도 아닌 불편한 현실에 대한 참여적 작업.
- 가지지 못한것
7-8년전쯤, 그러니까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때,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때, 1년 학교선배이자 회사 선배인 최모씨의 싸이월드에는 낯선 그림들과 한줄의 촌평이 올라오곤 했다. 그 중에 기억이 나는 것이라면 얀 사우덱(Jan Saudek)의 <This is My star>와, 그것에 달린 "소녀의 하얀 둔부보다 완벽한 것이 있을까"라는 짤막한 코멘트였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우연히 얀 사우덱의 그 작품을 마주칠때면 하얀 소녀의 엉덩이에 유독 시선이 모이곤 한다.
그리고 요즘도 최모씨의 페이스 북에는 게하르트 리히터의 <베티>, 훈데르트 바써의 그림 등이 올라오고, 짤막한 촌평이 이어진다. 이젠 나도 "국립 현대에서 할때 직접 봤지요. 리히터의 손녀라죠",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봤는데, 제 준엄한 예술관으로는 예술적 소질은 그닥 없으신 환경운동가 아저씨" 따위의 댓글을 달긴 하지만, 내가 노력해온 지난 수년의 세월이 과연 내게 그보다 나은 심미적 혜안을 주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며칠 전에도 그는 내게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보며 황홀했던 그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노라 이야기 했고, 나는 우리는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대꾸해 주었다. 그런데 ,아마도 나는 그런 시절조차 가지지 못하였구나.
- 오만한 기획
작업을 구상하며, 회사원이 예술을 하게 되는 조건들을 밝히리라 마음 먹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이미 답은 떠오르고 있었다. "먹고 살만하니까", "예술은 무언가 특별하니까".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 문화적 자본을 끌어들이고, 부르디외의 이론을 바탕으로 박사과정을 진행중인 지인에게 나 스스로를 카운셀링 받으면서 회사원의 예술적 욕망이란 (계급)상승의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심증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이제 내가 작업에 끌어들인 회사원 작가들에게서 그들의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기만 하면 내 기획은 완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욕망에서 예술을 갈망하고 있거나, 혹은 내가 감추어진 그들의 욕망을 이끌어낼 만큼 모질거나 치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기획은 완성되지 못했다.
- 낯뜨거운.
기획은 좌초되었고, 그렇게 진행된 인터뷰는 볼수록 없이 낯뜨겁고 어색하다. 그 누구의 어떤 대답도, 질문을 준비한 나 스스로의 대답도, 어쩔줄 모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애초에 질문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낯뜨거운 질문에서 시작한 불안한 발화(發話)가 주체에게 돌아가 무엇을 확정하고 드러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엔-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회사원과 예술가라는 그들의-나의- 굴레는 너무나 흐릿한 까닭이다.
<홍준호>, 50x33cm pigment print, collarboration with 홍준호
<홍준호>, 33x50cm pigment print, collarboration with 홍준호
<허정우>, 33x50cm pigment print
<허정우>, 33x50cm pigment print
<라인석>, 75x50cm pigment print, collarboration with 라인석
<김창원>, 75x50cm pigment print, collarboration with 김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