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01 제주도 무덤 투어 11
  2. 2011.06.18 제주도 여행 DAY 1 2
 지난 주말, 벌초를 하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여지껏 벌초는 아버지만의 일이었으나, 이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벌초 및 문중벌초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 일전에 두어번 벌초에 손을 도왔던 적이 있어서
 벌초 그 자체는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1박2일이었다.



 벌초 자체는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미리 몇기를 해두신 덕분에, 그리고 내 마음의 각오가 대단했던 탓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끝났지만,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것은 "집착"에 가까운 아버지의 벌초에 대한 태도였다.

 손주가 할머니 무덤에 처음 찾아가는 거라며 어머니께 요청했던 제사음식(그래서 결국 제주도에 계신 이모님이 준비하셨다)이나,
 뒤에서 장비를 챙겨 따라가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덤을 향해 My way를 외치시는 모습이나, 
 (덕분에 나는 진입로를 놓쳐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비포장로에 렌트카를 넣었다 범퍼를 긁고 속상해하는 나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으신 모습 등등...




 결국 화가 났던 나는 장갑과 모자를 아버지가 보란듯이 내팽겨쳤고.... 그리고 아버지의 "뭐지?" 하는 무심한 표정.
 분노의 예초기질을 해대며 분을 삭이다 결국 머릿속에 남은 건 아버지의 무심한 표정과, 그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를, 느끼지를 못하시는 걸까?'

 

 벌초를 마치고 읍내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골집-할머니가 사셨던-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을 건냈다.

"아버지, 아까 제가 왜 화났는지 아세요?"

"자동차 범퍼... 긁어서..?"

"제가 그것 때문에 화난 건 아시지만, 제가 화난 걸 이해하진 못하시죠?"

".....?"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후 약 한시간 여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의 성정 등으로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쌓인 것이 꽤나 많으셨던듯,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든다며 주변에 대한 원망과 울분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상 가족관계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 고립과 함께 더욱 커져버린 고집, 그리고 조상에 대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
이 모든 것이 쉽게 변하진..아니 아마 절대 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확신이 교차해갔다.
하지만 이도 마음에 안들고, 저도 마음에 안든다며 격하게 울분을 토하시는 아버지도,
아마 스스로 (그리고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 감정들을 쏟아내며, 그 감정의 진위, 정당성(?)에 대해
곱씹어보셨을 듯 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문중 벌초. 3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 넘게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들일듯 하다.
예초기가 두 대씩 돌고, 손이 많으니(-라지만 거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분위기) 벌초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예초기가 들어가기 힘든 돌담 주변이나 비석 주변은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도맡아 하셨는데, 
건 벌초가 끝나고 드리는 의식에서는 철저하게 (본인 스스로) 소외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회원 약관을 놓고 격하게 토론이 있었는데, 요는 문중회의 회비 납부 요건을 30세 이상 남성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해서 세대를 이룬 사람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 어느쪽에도 여성이 문중회의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논리를 연장해보면, 딸은 결혼을 하면 남편쪽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독신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딸은 부모님의 무덤에 풀 벨 자격도 없다는 것일까. 얼마전 폐지된 호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과연 문중회라는 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났다.



문중 벌초를 마치고, 외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온 적이 없으니 약 10년만이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시립 공동묘지인지라, 깔끔하고 접근도 쉽다. 우리 집은 항상 이렇다. 외가는 세련되고, 친가는 투박하고..
멀리 제주시내가, 그리고 더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아마 제주도에 경치 좋은 곳은 다 무덤이 차지하고 있을까 싶다.


 빌린차를 반납하기 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무작정 바닷가로 차를 달렸다. 멀리 노을이 지고, 멀리 무슨 테마 공원이라며
뻘짓거리로 만들어 놓은 목마형상의 등대도 보인다. 볼이 바람에 스치고, 아버지와의 1박2일이라는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앞으로의  나날들에 쓴웃음이 지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후 찾아오는 평온함을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짧은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수고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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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 

 아침으로 먹으려던 샌드위치는 집에 두고 나와버리고, 
 손톱깍기 만한 작은 주머니칼 덕분에 검색대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등의 소란을 피워가며 제주도에 도착했다.
 이른 장마와 남부지방 폭우 예고에 걱정했건만, 다행히 맑은 날씨.
 다만, 황금빛 물결을 예상했던 보리밭에는 이미 추수가 끝나 누런 밑둥만 남아있었다.



 
제주도가 시골인지라 뻔질나게 드나들었건만, 고기국수가 유명하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삼대국수집에서 고기국수와 비빔국수를 아침으로.
특별난 맛은 아닌데, 면이 꽤 독특하다. 쫄면과 우동면의 중간쯤이랄까. 적당히 차진 느낌이 입안에서 재미있다.




 이번 여행의 내 주요 목표중 하나. 비오토피아에서 이타미 준의 건물들을 보는 것.
일반에 공개되는 곳을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입구에서 사바사바 한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sk에서 인수하면서 리조트 사업도 구상중이라니 좀 지나면 일반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 미술관. 특별히 미술 품이 있거나 한 곳은 아니고, 물 그 자체를 작품으로 한 장소.
겉으로는 물 저장탱크 정도로 보이는 조그만 공간이지만, 꺽어진 입구를 지나 들어서면 외부와 단절된 '물'의 공간이 드러난다.
정확히는 '물'의 소리가 지배하는 공간. 배수구로 천천히 떨어지는 물의 쪼로로 소리가 사각형 공간의 네 귀(퉁이)를 스피커 삼아
상하좌우에서 울려나오는데, 마치 머리 위에서 물이 흐르는듯한 착각이 일게 한다.
....한데, 물을 흐르게 하는 펌프의 모터소리도 함께 들리는게 다소 아쉽긴했다.



 




비오토피아는 좀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고급 빌라촌, 별장촌쯤 된다. 평당 분양가가 1500으로 제주도 최고가라고...
재일교포 사업가 김흥수씨가 조성했다가 최근에 sk가 인수했다.
핀크스라는 이름의 단지안에 골프장, 포도호텔(호텔 이름이 포도), 비오토피아 등이 구성되어 있고,
핀크스 골프장은 세계100대 골프장에 속해있는 국내 유일 골프장이란다.
돌아단니다보니, 직원들이 잔디도 깍고 나무도 자르고 정원도 봐주고 계속 관리는 하던데...
단지내의 무성한 수풀들은 자연주의(?) 컨셉인 것인지, 제주도의 무성한 식생탓인지 알쏭달쏭하다.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바람 미술관에 닿았다.
가을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때이면, 나무틈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높고, 가는 소리들을 내며 스쳐지나갈 터인데,
오늘은 바람이 가라앉은지라, 바람의 정취를 느끼기엔 다소 무리였다.



 




 그리고 돌 미술관.
 코르텐 강판으로 벌겋게 녹이 슨 건물에 들어서면 천정과 측면의 조그만 채광창이 밝히는 어두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주위를 둘러보면, 매끈한 대리석의 바닥과 벽을 발견할 수 있다. 천장의 동그란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매끈한 대리석 표면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주변을 밝힌다.
 남쪽으로 난 창으로는 손과 산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 보이는데, 맑은 날이면 산방산과 겹쳐 보인다고 한다.
 건물 뒤를 통과해 두손 미술관으로 향하다보면, 돌미술관 밑으로 난 창과 돌, 반대쪽 창, 그리고 조각품이 일직선상에 놓이는데,
 이 또한 관람자의 시선을 고려한 건축가의 의도인듯하다.







 

 



 

 두손 미술관. 소녀의 두 손을 모은 모습이라는데..음..
 현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관리를 맡아 운영하고 있고 황규태 작가의 <인생은 즐거워>展이 열리고 있었다.
 







소화전도 신경써 주시는 센스.




언제 다시 들를까 싶어 단지 내에 조성된 생태 공원도 한바퀴.




나오면서 입구의 방주교회. 역시 이타미 준의 작업이고, 방주를 형상화한 모습이란다.
입주자 중 한 사람인 어느 사장님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는데, 기도드릴 곳이 없으면, 혹은 멀어 가기 힘들면, 우리 집 옆에 우지끈 뚝딱
만들어 버리는 저 높은 곳의 세상. 암튼 이타미 준은 좋았겠다. 원하는 대로 다 펼쳐보일 수 있었으니.




무인 까페 오월의 꽃. 마음대로 마시고, 금액 역시 마음대로 지불하면 된다.
주인장이 뜻이 있어 낙향 하며 만든 곳이라는데, 저녁시간엔 주인장의 작은 콘서트도 볼 수 있다고.
주인장이 하나하나 손대어 만든 듯한 하얀 건물의 외관과, 결코 고급스럽진 않지만, 나름 앤틱풍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녹차 두잔과 과자 조금 집어 먹고 기분이다~ 하며 만원을 넣고 왔는데,
돌아오며 조금 과하게 넣었나, 살짝 후회가 되기도.
(왜냐면 잠시 후에 들른 오설록에서 아이스크림+롤케익이 \9,000이라서....)





오설록 녹차다원. 동양에서 손에 꼽는 규모라던데.. 지금까지 보성 녹차밭이 가장 큰 줄 알고 있던 내게는 다소 의외였던 사실.



 




 

숙소인 해비치 호텔. 추첨제로 운영되는 회사 휴양소인데, 다행히 당첨!
제주도에서 손에 꼽는 호텔 중 하나인데,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거의 잠만 자게 되어서 좀 아쉽게 되었다.
뷰도 바다쪽 전망이 보이는 좋은 위치. 아이리스 마지막편쯤 나와서 더 유명세를 탄다지 아마..








저녀식사는 근처의 한아름 식당에서 두루치기.
원래 유명한 식당은 아니었는데, 올레길을 지나던 여행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근근히 알려진 로컬식당이다.
분위기 역시 전형적인 동네 식당. 우리가 밥을 먹는 그때에도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가족들과 친척들 한팀이
형님, 동생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식사 중이었다.


 


제주도 여행 첫날은 여기까지.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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