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벌초를 하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여지껏 벌초는 아버지만의 일이었으나, 이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벌초 및 문중벌초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 일전에 두어번 벌초에 손을 도왔던 적이 있어서
 벌초 그 자체는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1박2일이었다.



 벌초 자체는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미리 몇기를 해두신 덕분에, 그리고 내 마음의 각오가 대단했던 탓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끝났지만,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것은 "집착"에 가까운 아버지의 벌초에 대한 태도였다.

 손주가 할머니 무덤에 처음 찾아가는 거라며 어머니께 요청했던 제사음식(그래서 결국 제주도에 계신 이모님이 준비하셨다)이나,
 뒤에서 장비를 챙겨 따라가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덤을 향해 My way를 외치시는 모습이나, 
 (덕분에 나는 진입로를 놓쳐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비포장로에 렌트카를 넣었다 범퍼를 긁고 속상해하는 나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으신 모습 등등...




 결국 화가 났던 나는 장갑과 모자를 아버지가 보란듯이 내팽겨쳤고.... 그리고 아버지의 "뭐지?" 하는 무심한 표정.
 분노의 예초기질을 해대며 분을 삭이다 결국 머릿속에 남은 건 아버지의 무심한 표정과, 그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를, 느끼지를 못하시는 걸까?'

 

 벌초를 마치고 읍내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골집-할머니가 사셨던-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을 건냈다.

"아버지, 아까 제가 왜 화났는지 아세요?"

"자동차 범퍼... 긁어서..?"

"제가 그것 때문에 화난 건 아시지만, 제가 화난 걸 이해하진 못하시죠?"

".....?"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후 약 한시간 여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의 성정 등으로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쌓인 것이 꽤나 많으셨던듯,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든다며 주변에 대한 원망과 울분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상 가족관계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 고립과 함께 더욱 커져버린 고집, 그리고 조상에 대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
이 모든 것이 쉽게 변하진..아니 아마 절대 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확신이 교차해갔다.
하지만 이도 마음에 안들고, 저도 마음에 안든다며 격하게 울분을 토하시는 아버지도,
아마 스스로 (그리고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 감정들을 쏟아내며, 그 감정의 진위, 정당성(?)에 대해
곱씹어보셨을 듯 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문중 벌초. 3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 넘게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들일듯 하다.
예초기가 두 대씩 돌고, 손이 많으니(-라지만 거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분위기) 벌초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예초기가 들어가기 힘든 돌담 주변이나 비석 주변은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도맡아 하셨는데, 
건 벌초가 끝나고 드리는 의식에서는 철저하게 (본인 스스로) 소외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회원 약관을 놓고 격하게 토론이 있었는데, 요는 문중회의 회비 납부 요건을 30세 이상 남성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해서 세대를 이룬 사람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 어느쪽에도 여성이 문중회의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논리를 연장해보면, 딸은 결혼을 하면 남편쪽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독신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딸은 부모님의 무덤에 풀 벨 자격도 없다는 것일까. 얼마전 폐지된 호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과연 문중회라는 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났다.



문중 벌초를 마치고, 외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온 적이 없으니 약 10년만이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시립 공동묘지인지라, 깔끔하고 접근도 쉽다. 우리 집은 항상 이렇다. 외가는 세련되고, 친가는 투박하고..
멀리 제주시내가, 그리고 더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아마 제주도에 경치 좋은 곳은 다 무덤이 차지하고 있을까 싶다.


 빌린차를 반납하기 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무작정 바닷가로 차를 달렸다. 멀리 노을이 지고, 멀리 무슨 테마 공원이라며
뻘짓거리로 만들어 놓은 목마형상의 등대도 보인다. 볼이 바람에 스치고, 아버지와의 1박2일이라는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앞으로의  나날들에 쓴웃음이 지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후 찾아오는 평온함을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짧은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수고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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