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구 서울역사에서 진행중인 서울국제사진페스티발을 다녀왔다. 문화부와 서울시가 주관하고 5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꽤나 규모있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추운 날씨탓인지, 을씨년스러운 구서울역사의 분위기 때문인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호주의 사진작가 폴리세니 파파페트루의 작가 해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동심-자연을 주제로한 사진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사진들이 최근 하나의 주류로 부상하는듯 한데, 이번 전시에 초대되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로레타 럭스나(Loletta Lux), 아래 스웨덴의 루비자 링보르그(Luvisa Ringborg) (좌), 영국의 줄리아 플러튼-바텐(Julia Fullerton-batten), 호주의 폴리세니 파파페트루(Polixeni Papapetrou)가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사진들에는 "Wonder Land"와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차용한 제목들이 따라다닌다! - 루비자 링보르그/폴리세니 파파페트루)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Velasquez와 Lucas 의 어린이 포트레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들로, 유년기의 오점과 경이에 관한 것이다. 제목은 Lewis Carrols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차용했지만, 내용은 동화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다. 이는 뒤바뀐 세상의 안과 밖의 비유이다. 삶, 죽음, 의존성, 무력함과 관계하는 어린이는 어른세계의 기준에 적응하거나 거부한다. 개인적이고 신비로운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 내며 물리적인 현실과 두려움에 대면하는 어린이는 어른과 아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융화된다. 이 장소에서 어린이는 그 스스로 규칙과 계층을 창조한다. 하지만 완전히 실제현실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과 두려움은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날 수 있다. (전시 도록 中)
청소년기는 10대 여자아이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을 보고 그들의 정체성의 의문을 갖는 복잡하고 민감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쉽지 않지만 자유에 대해 기대하기도 한다. 나는 작품에서 이런 변화를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전문 모델이 아닌 소녀들과 작업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데려다 놓고 포즈를 취하게 했다. 내가 십대가 된 것 같은 어색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가 이 작업에 중요한 요소임을 느낀다. 가끔 우리는 어린 소녀들이 그들만의 생각에 빠져 공상에 잠겨있는 걸 본다. 소녀들을 비현실적인 환경에 두고 공상에 빠진 모습을 연출한다. 잠시 동안 그들은 상상의 세계에 거주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이 상상의 세계는 더 커 보이고 거대해 보이고 그들의 진짜 세계보다 더 진실해 보인다. 이 환상의 세계에소녀들은 그들의 일상보다 더 강한 힘을 느낀다. 나는 조명을 색다르게 하여 풍경에 기묘함을 주었다. 내가 이 시리즈를 촬영할 때 나는 모델을 세운 곳과 내 십대시절의 광경을 다시 체험하여 이 상황에 더 동화되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장난기가 있는 데 이는 대 가족에서 자란 내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는 나의 자전적인 내용이고 나의 십대시절을 반영한다. 수년 후 나의 정신과 어른의 시각 그리고 카메라는 이를 찍고 풀어낸다.(전시 도록 中)
나는 자연세계의 깊이와 복잡함을 내가 경험하는 성장의 아름답고 어두운 양상의 배경으로 사용한다. 내 유년기 놀이는 짜여 있는 게 아닌 자연환경에 둘러 싸여 있는 것이었다. 자연 풍경과 함께한 유년기 놀이의 기억을 탐험하며 나는 이 비밀공간을 즐겼던 우리의 자유를 회상해보고 싶었다. 땅은 우리에게 속박이 없는 공간이자 주변 환경을 통해 개성을 정의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나는 풍경을 경연의 낙원으로 경험했다. 그것이 설령 강 근처의 위험한 곳, 여름에 뱀이 가득해지거나 계곡 혹은 단절된 장소에 위치했어도 우리가 자랄 때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고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아이들의 성장기는 매우 다르다. 그들 세계에서 이런 종류의 자유로운 놀이와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은 사실상 자연과 상반되는 스크린세계의 매혹에 의해 감소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안전한 집을 나가서 노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이를 부추겼다. 세계표준화된 게임들 닌텐도와 컴퓨터, 부모들에 의한 또 다른 번 외 교과과정들이 이를 대신했다. 문화가 점차적으로 아이들의 자유를 지워가는 요즘, 나는 아이들의 화창한 날을 일깨우고 싶다. (전시 도록 中)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인간 풍경(Human Scape)"이고, 안을 바라보다 / 타인을 느끼다 / 밖으로 나가다의 세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루즈한 주제의 전시가 그러하듯, 섹션별로 확연한 차별성을 느끼기는 다소 어려운편이다. 그보다는 작가 개개인의 면모와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울 듯 하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품들을 꼽자면...
윤진영 - 떡으로 얼굴을 빚고, 흑임자, 고추장 등의 음식을 통해 삶과 죽음, 먹고 먹힘 등의 관계를 살펴본 작업. 무엇보다 최근의 국제적인(즉, 작업만 봐서는 작가의 국적이 서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업들이 유행인데에 반해서, 우리의 먹거리(흑임자,김치,고추장, 떡 등)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도 데드마스크와 벌레, 용암 등을 연상시키면서 주제에 부합하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김인숙 - 여성성과 남성의 성적 환타지 등에 대한 작업들로 위 작업의 제목은 <경매>이다. 이 작업보다 건물을 통째로 빌려 포르노그라피-관음증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작업이 유명하다(귀찮아서 스캔 안했음-.-) 난 아무래도 이렇게 메세지가 강력한 작업을 선호하는듯..
전반적으로 기독교 성인이나,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패러디한 느낌. 기존 남성들이 구축해온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하고 개척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인 작업.
그리고 영예의 전당에 영국의 수잔 앤드류(Susan Andrew)의 <Black Dog>연작이 선정되었는데, 작년 4월에 갤러리 온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갤러리 온 전시 후기 보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그들의 뒷모습을 병치한 작업이었는데, 그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치유의 과정인 동시에,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갖고 있는 "우울"에 대해서 본인을 돌아보고, 혹은 사진의 사람과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시간을 제공한다.
" 우유부단함, 무력감,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겨움에 압도된다. 음식이 역겹고, 주위 환경이 역겹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나를 옥죄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느낌 때문에 도망 갈 데가 없다. 악모보다 더 나쁘다. 지옥이 아마 이럴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미움 당하고 멸시된다고 느낀다. 나를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를 혐오되고 비열한 뭔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전원길이나 멋진 건물들, 볼 수는 있지만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느낄 수가 없다. 음악, 미술,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내 면전에서 문이 쾅 닫힌 것과 같다. 문 뒤 저쪽에는 뭉너가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며 나 자신만을 비난한다. 아주 단순한 일도, 예를 들어 쇼핑같은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시장을 몇 시간씩 헤매고 다니고서도 아무것도 못 사고 가게에 들어갈 수도 없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낟. 내 주위의 사람들은 너무나 목적지향적이고 삶의 활기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혼자이고 단절되어있다. 늦게 오는 신랑을 기다리면서 램프 기름을 충분히 사 두지 않은 우화속의 바보같은 처녀와 자신의 재능을 묻어버리고 주인에게 쓸모없게 여겨진 남자, 이 둘 모두와 나 자신을 동일시한다."
한바퀴 휘 둘러보자면, 참여 작가들 모두 이미 인정받았거나, 혹은 인정받기 시작하는 작가들인지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눈이 호강하기는 두말할 나위 없음이다. 다만, 이런 식의 루즈한 주제의 대규모 전시가 항상 그렇듯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또 이들의 명성에 한줄 추가 됨과 동시에 마켓 진출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알려진 대표작들만 출품된것도 문제라면 문제.) 물론, 청소년 사진전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진전이 더불어 열리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대행사격인지라, 비중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활동하는 몇몇 작가들이 모여서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새로운 작업을 협업 or 개인작업해보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같은 불만은 말하려는 바가 강렬하지 않은-이를테면 자신 스스로에게 향하는 작업들, 셀프 포트레이트 및 유년의 환타지 등의 - 작업들 보다는 메세지가 강력한 - 다소 사회를 강력하게 반영하는 - 작업들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