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ewyorker.com/magazine/2020/01/13/the-equality-conundrum

 

The Equality Conundrum

We all agree that inequality is bad. But what kind of equality is good?

www.newyorker.com

좋은 글.

 

번역본은 newspeppermint.com/2020/05/07/m-equality1/

 

평등이라는 수수께끼(1/3)

마이클과 안젤라 부부는 이제 쉰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지인 중 두 명이 암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이를 지켜본 부부는 아이들에게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할지 �

newspepperm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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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TAG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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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지만,

 

힌두민족주의 운동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지지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꽤 많다.

 

그러니 모디도 총리를 연임할 수 있었을 터이고.....

 

 

 

이 힌두민족주의가 펼치는 주장이라는 것이,

 

인도의 역사에서 1530~1858년까지 한토막을 차지하고 있는 무굴 제국-이슬람 왕조를

 

인도 역사-힌두/인더스 문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삭제해버린다는 것인데,

 

실제로, 내가 타지마할(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의 처의 묘) 을 간다고 했을때 "그걸 뭘 보러 가냐" 라는 친구도 있었고,

 

200년동안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영국은 우리를 이슬람에서 해방시켜줬으니까" 라고 대답을 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이슬람을 인도의 역사에서 침략의 역사로 규정하고 삭제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힌두 문화의 원류가 되는 아리안(Aryan)족의 침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도인들, 특히 인두민족주의에서의 생각이 궁금하였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역사적으로 아리안들의 이주와, 이들이 이주하여 만든 베다(Veda) 및 카스트 제도가

 

힌두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침략을 부정하자니 힌두 문화의 근간이 흔들리고,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그들의 근간이 외부에서 시작된 침략(혹은 이주)의 역사임을 자인하는 형국이라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페북에 친구중 한명이 (앞서 그 친구와는 다른) 흥미로운 기사를 올렸다.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피부색에 대한 식민지적 관점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만연해있다.>

 

기사는 한 남부의 정치인이 북쪽의 정치인에게 "아리안 침입자"라고 비난한데에서 시작한다.

 

아리안족 기원설에서는 아리안 침입설 (Arayan Invasion Theory, AIT) / 아리안 이주설(Aryan Migration Theory, AMT)

 

이 있는데, AIT는 식민지 시절 식민지배를 정당하기 위해(아리안족 우월설 식의) 언어학적으로만 본 것이라

 

역사적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AMT는 침입이 아니라 평화롭게 이주/공존했다는 설인데,

 

유전적 연구로 보았을때 지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아리안족이 이주할(이주했다면) 당시 번성했던 인도의 드라비다 족의 하라파(Harappan)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리안족이 고향에 정착하지 않고 이주할 이유가 없으므로,

 

아리안이라는 종족적 구분은 의미가 없고, 인도는 그당시부터 남북이 하나의 인더스 문화이자 베다(Vedic) 문화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결국 아리아인의 침입/이주설을 부정하고, 그것이 이미 고대 통일된 인도에 내재되어 있었다라는 주장이고,

 

잠시 뒤 이야기하겠지만, 힌두 민족주의/우파의 "아리안"침입/이주에 대한 전형적인 반론이다.

 

 

"아리안(Aryan)"족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살펴보니,

 

위 기사의 언급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데,

 

우선 19세기에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어족사이의 유사성을 토대로 유럽과 인도의 공통 조상이되는

 

아리아인을 상정한 것은 맞다. 즉 출발이 언어학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또한 이 논리가 과거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의 인종차별/우월주의적으로

 

활용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특정 인종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언어학에서의 어족(인도-유럽어족)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게 통용된다고 한다.

 

다만, 당시 인도의 하라파 문명은 청동기 시대였으나, 베다에는 철기 문화의 언급이 자주 나타나며,

 

베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을 타거나, 전차(chariot)를 끄는 모습도 하라파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리안인들의 흔적으로, 아리안족 침입/이주설이 단순히 언어적으로만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닌

 

다수 비교 문헌 및 유적등의 발굴과정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중 2018년도에 하버드 대학의 데이빗 리치(David Reich)가 이끈 연구팀이

 

고대인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아리안족의 이주설을 지지하는 꽤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는데,

 

이로 인해 힌두민족주의의 소위 "아리안 자생설"은 그 근거가 많이 흔들리게 된다.

 

관련된 기사에서 "아리안"을 두고 역사적으로 어떤 입장이 있어왔는지 꽤 재미있게 정리를 했기에,

 

간단히 언급해두고자 한다.

 

The Economist에 실린 <새로운 연구가 인도인의 기원에 대한 소중한 이론에 찬물을 끼얹다>

 

원문은 구독을 해야만 볼 수 있는데, 다행히 한 힌두민족주의자가 데이빗 리치는 사기꾼! 하면서 

 

전문을 옮겨 놓았다.

 

 

1세기 반 전 "인도-유럽-원어(Proto-Indo-European)"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와,

 

아리안족의 침입/이주에 대한 이론은,

 

①나치에게는 세계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②영국 식민지배하의 인도에서는 카스트제도와 상위계급의 지배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시 우리가 지배자!)

 

③또 반대로 남인도에서는 드라비다족들의 분리에 대한 주장을 야기하였다. (아리안 침략자!)

 

④한편 힌두민족의자들은 이 이론에 대해 인도의 분열을 노리는 기독교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의 모략이라고

비난하고 "아리안-인도문화의 원류"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자생했으며,

이들이 서쪽으로 나아가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요 지점이 딱 위의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가 주장하는 바이다.)

 

 

 

한데 이러한 주장이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대해서는 BBC의 기사에서 꽤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고대의 DNA가 인도의 고대사를 다시쓸지도 모른다.>

 

2018년 3월에 출간된 그의 연구에는 세계에서 총 92명의 연구자가 함께 했으며,

 

남아시와와 중앙아시아의 고대 인류의 유해에서 DNA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도에는 두번의 큰 이주가 확인되는데,

 

첫번째는 기원전 7,000~3,000년 사이 이란 서남쪽의 자르고스 지방에서 이주한 농경문화이며,

 

두번째는 기원전 2,000년경 유라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이주한 세력이다. 

 

다만 이 연구에서 밝혀낸 점은, 이들이 지금까지 알려진바와 같이 이란 지역이 아닌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방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소련이 세계를 정복한...것이다...)

 

데이빗 리치의 논문중 도판 ①BC7,000년 경 이주, ②BC2,000년경 이주.

 

데이빗 리치의 논문 중 도판 / 녹색 세력이 인도문명의 직접적 조상이다.

 

이 논문은 당연 힌두 민족주의가 득세하던(그리고 지금도) 당시 인도 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데이빗 리치를 비롯, 공동 연구자들의 트위터가 테러 당하는 등,

 

힌두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거친 항변이 이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조명해야 하는 역사와, 한 나라의 근간과 정당성을 세워야 하는 국사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국사에서, "찬란한 우리 반만년 역사"라고 이야기 해야지,

 

"우리 민족은 애초에 쬐끄만 땅덩어리에서 아웅다웅 살아왔어요" 라고 말할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다만, 소위 "국뽕"이 지나쳐 '신화'에서 끝나야 할 것들을 '역사'로 만든다거나,

 

과거의 그릇된 행위들을 정당한 행위로 포장하는(옆 섬나라처럼..) 행위는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 최악은 자기 생각에 정당하지 못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거나,국가의 구성원일지라도 - 배제해버리는 행위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에 의미를 새로이 부여할 수는 있어도

 

그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이 논쟁은 인도의 '국사'에 대한 관점에 가까울 것이라

 

외부인인 내가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다만 이미 역사에서 이루어진 것, 그리고 이미 인도의 역사의 일부가 된 것들을

 

그리고 그 후손으로서 현재 인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축출/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언젠가는 파국적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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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침신문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들고 시민의 체온을 측정하는 인도 경찰의 모습.

(인터넷판 신문을 찾아보았으나, 다른 사진이 실려 있어, 해당 사진의 출처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자연스레 너무도 유명한 1968년 에디 에이담스(Eddie Adams)의 <사이공의 처형> 사진이 떠올랐다. 구도나 포즈나, 너무나 유명한 사진이니, 다분히 오늘날의 신문기자가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은 구성이지 싶었다.

 

하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점은, 두 사진이 권총을(체온계를)겨누고 있는 경찰/군인과

이를 맞는 시민(혹은 베트공)의 구도적인 시각적 유사성과 달리,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68년의 희생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반면,

오늘날 인도의 시민은 너무도 당당하게 체온계를, 경찰을 응시하고 있다.

1968년과 202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닮은 듯 다른 두 사진을 발견한다는 것은

나를 꽤나 흥분시켰다.

 

이러한 발견은 그리 드문 편은 아닌 것인지, 이라크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Sophie Ristelhueiber는 헬기를 타고 이라크 상공을 찍은 전쟁현장의 사진에서, 만레이가 뒤샹의 작품에 내려 앉은 먼지를 찍었던 <Dust Bleeding>을 연상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왼편 : <Dust Bleeding>, 만레이, 1920 / 오른편 : <Because of Dust Bleeding>, Sophie Ristelhuiber, 1991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러한 발견을 기쁘게 지인들에게 공유하고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던 순간,

 잠시 주저할 수 밖에 없었는데, 혹시나, 인도의 지인들이 이 사진을 보고 인도의 공권력에 대한 - 베트남전에서의 즉결처분처럼 - 비판적인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부연설명을 곁들이고, 바이러스와의 싸움 / 이념의 싸움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니,

 굳이 그런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을듯 하여 약간의 부연과 함께 사진을 올렸는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선 한국의 지인이 "저 베트남전 사진의 희생자가 실상 무고한 사람이 아닌 비무장 시민을 학살한 게릴라를 사살하는 사진인데, 사진의 프로파간다가 껄끄러운 측면이 있는건 알고 있느냐" 고 댓글을 달았고, 인도 친구 한명은 "저 사진가가 이 소리를 들으면 까무라치겠는데요?" 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사실 다른 인도 친구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한달에 한번정도 올리는 포스팅에 열렬한 좋아요를 눌러주던 그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이번 포스팅은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위의 지인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다른 인도 친구들과도 이  두 사진의 비교가 그렇게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① 대부분은 베트남전의 사진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② 베트남전 사진은 사람이 죽는 사진이고, 인도의 사진은 사람을 돕는 사진인데,

    둘을 비교를 한다는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실 ②번이 정확히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유사한 형식, 다른 컨텍스트-인데,

 부연설명을 했음에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분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부연설명-글을 읽기에 앞서,

 두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아래와 같은 즉각적인 시각적 판독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신문 기사의 사진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사람을 죽이는 사진

 

 사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래와 같다.

 

   신문기사의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죽이는 사진.

 

 더불어, 두 사진을 비교하는 내 의도는 역사적 맥락을 걷어내고,

 순전히 그것들의 형식과 내용의 닮음과 다름에서 오는 발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두 이미지의 비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분히 두 사진의 외부의 맥락들,

예를들면 : 베트남전 당시 사진이 전달했던 프로파간다, 인도의 경찰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

 을 고려하여 두 사진을 비교하고, 의도를 품고 사진을 비교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베트남전의 사진 이미지가 워낙에 강렬하기도 하고,

 또 인도인들은 이 상황의 당사자이다보니 다분히 복잡한 외부의 맥락들 속에서

 사진의 비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일단 한번 이렇게 두개의 사진 비교가 의미화 되면,

 그 이후에 어떤 설명도 처음의 시각적 문법을 뒤집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은 읽을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삼 시각적 문법의 즉각성과 의미 고착의 강력함을 깨달았다.

 

 여기서 딜레마는, 비록 내가 그러한 의도로 올린 것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철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인데, 

 굳이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목소리도 없었고,

 또한 당사자들이 아니라 외국인이니까 할 수 있는 비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성(?)을 추가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소심한 복수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개인적으로 사진이 불편한지에 대해 물어본 친구들에게는

 충분히 내 의도를 설명을 했고, 대부분은 내 의도를 이해하고,

 굳이 글을 내리거나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근데 그렇게 이야기 했던 그중 한명이 결국 뒷통수를 치는데...

 약 6년여간 알고지낸, 나름 친하다면 친한 친구녀석이 있는데,

 약간 힌두 민족주의 / 반중주의 / 친일(?!) 노선을 취하는 친구라,

 종종 힌두우파 테러리즘의 입장에 준하는 글을 보내주기도 하고,

 나는 나대로 질문도 하고, 다소 보편적인 차원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며,

 나름 그런면에서는 터울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친구가 구자라트 지역에서 이슬람 폭동의 역사가 담긴 글을 보내주며

 

 "너는 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테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뜻이니?"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은, 모든게 그들(이슬람)에게서 시작되었음은 잊어버리고,

  이슬람을 피해자로 포장하지."

 

 "지금 나보고 그 자유주의자라는 이야기?"

 

 "난 너의 정치성향은 몰라, 하지만 흰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해야겠어"

 

 

  나한테 너무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냐는 물음에 결국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긴 했으나,

  

  이것은 분명 상기한 사진 비교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고,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준 친구이긴 한데,

  다른 인도 친구들과 교차검증을 해보면 편향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이런식으로 투정을 부릴거라면 관련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리를 좀 둘 필요가 있지 싶다.

 

 이상 나름 개인적으로 뿌듯한 발견에서, 시각 문법의 즉각적 독해에 놀라고, 그로 인해 소심한 복수까지 당한 이야기.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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