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12.25 아버지와 크리스마스 이브.
  2. 2011.09.01 제주도 무덤 투어 (11)
  3. 2007.12.20 가족사진

 생각해보면 이제 곧 나가는 마당에, 한번만 참았어야 했나 싶지만,

 결국 참지못하고 터져버렸다. 제사상 앞에서 애꿎은 피아노를 걷어차며 거칠게 항변했다.

 

 "아버지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얼마전부터 빈도와 수위가 점점 더해지던 손주 타령.

 손녀들 앞에 두고 대가 끊기게 되어 조상볼 면목이 없다는 말에

 오늘은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덩달아 숨을 몰아쉬며 화를 내시던 아버지.

 

 돌이켜보면, 그 분노의 원인이 아들이 갑자기 격렬히 저항한 것도 있겠지만,

 하필 아들이 그렇게 무례하게 군 것이 조상들을 모신 제사상 앞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시고, 고위공무원까지 지내신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조상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단순히 예나, 효의 차원을 넘어

 말 그대로 종교적 의식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었다.

 아버지께 조상이라는 것은 이성을 넘어 원초적인 공포 혹은 운명을 좌우하는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나는 극단적인 이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질적인 인과율을 바탕으로 매사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져가며 결정하는 세계.

 그런 내게 조상이란, 무시하자니 관습과 사회에 맞서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너무도 크기에 적당히 따라줘야 할, 그리고 최근에 보자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적당한 효용성을 지닌 하나의 소재나, 재료일 뿐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다 화해의 제스쳐는 없었지만, 일은 그렇게 또 덮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가는 아들네를 공항까지 따라와 살갑게 맞아주셨고,

 출국장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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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벌초를 하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여지껏 벌초는 아버지만의 일이었으나, 이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벌초 및 문중벌초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 일전에 두어번 벌초에 손을 도왔던 적이 있어서
 벌초 그 자체는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1박2일이었다.



 벌초 자체는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미리 몇기를 해두신 덕분에, 그리고 내 마음의 각오가 대단했던 탓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끝났지만,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것은 "집착"에 가까운 아버지의 벌초에 대한 태도였다.

 손주가 할머니 무덤에 처음 찾아가는 거라며 어머니께 요청했던 제사음식(그래서 결국 제주도에 계신 이모님이 준비하셨다)이나,
 뒤에서 장비를 챙겨 따라가는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덤을 향해 My way를 외치시는 모습이나, 
 (덕분에 나는 진입로를 놓쳐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비포장로에 렌트카를 넣었다 범퍼를 긁고 속상해하는 나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으신 모습 등등...




 결국 화가 났던 나는 장갑과 모자를 아버지가 보란듯이 내팽겨쳤고.... 그리고 아버지의 "뭐지?" 하는 무심한 표정.
 분노의 예초기질을 해대며 분을 삭이다 결국 머릿속에 남은 건 아버지의 무심한 표정과, 그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를, 느끼지를 못하시는 걸까?'

 

 벌초를 마치고 읍내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골집-할머니가 사셨던-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을 건냈다.

"아버지, 아까 제가 왜 화났는지 아세요?"

"자동차 범퍼... 긁어서..?"

"제가 그것 때문에 화난 건 아시지만, 제가 화난 걸 이해하진 못하시죠?"

".....?"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후 약 한시간 여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의 성정 등으로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쌓인 것이 꽤나 많으셨던듯,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든다며 주변에 대한 원망과 울분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상 가족관계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 고립과 함께 더욱 커져버린 고집, 그리고 조상에 대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
이 모든 것이 쉽게 변하진..아니 아마 절대 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확신이 교차해갔다.
하지만 이도 마음에 안들고, 저도 마음에 안든다며 격하게 울분을 토하시는 아버지도,
아마 스스로 (그리고 아마 난생 처음으로) 그 감정들을 쏟아내며, 그 감정의 진위, 정당성(?)에 대해
곱씹어보셨을 듯 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문중 벌초. 3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 넘게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들일듯 하다.
예초기가 두 대씩 돌고, 손이 많으니(-라지만 거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분위기) 벌초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예초기가 들어가기 힘든 돌담 주변이나 비석 주변은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도맡아 하셨는데, 
건 벌초가 끝나고 드리는 의식에서는 철저하게 (본인 스스로) 소외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며, 회원 약관을 놓고 격하게 토론이 있었는데, 요는 문중회의 회비 납부 요건을 30세 이상 남성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해서 세대를 이룬 사람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 어느쪽에도 여성이 문중회의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논리를 연장해보면, 딸은 결혼을 하면 남편쪽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독신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딸은 부모님의 무덤에 풀 벨 자격도 없다는 것일까. 얼마전 폐지된 호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과연 문중회라는 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났다.



문중 벌초를 마치고, 외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온 적이 없으니 약 10년만이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시립 공동묘지인지라, 깔끔하고 접근도 쉽다. 우리 집은 항상 이렇다. 외가는 세련되고, 친가는 투박하고..
멀리 제주시내가, 그리고 더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아마 제주도에 경치 좋은 곳은 다 무덤이 차지하고 있을까 싶다.


 빌린차를 반납하기 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무작정 바닷가로 차를 달렸다. 멀리 노을이 지고, 멀리 무슨 테마 공원이라며
뻘짓거리로 만들어 놓은 목마형상의 등대도 보인다. 볼이 바람에 스치고, 아버지와의 1박2일이라는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앞으로의  나날들에 쓴웃음이 지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후 찾아오는 평온함을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짧은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수고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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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휴지통/!! 2007. 12. 20. 23: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 이란 언제나 나를 포근히 맞아줄 것 같은 따뜻한 감상을 젖게 하는 단어이지만,
여든 평생 홀로 살아온 생에 꼬장꼬장해져버린 할머니와,
각자 인생에 이야기가 있기에 마냥 감상적일 수 만은 없는 두 아들 -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 의 미묘한 긴장.

 TV 드라마, 소설, 영화 속에선 대체로 가족의 갈등과 긴장은 일말의 따스함과 웃음으로 매듭지어지지만,
가족, 현실 그대로의 가족이란, 혹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가족이란,
결코 그렇게 감상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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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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