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지만,

 

힌두민족주의 운동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지지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꽤 많다.

 

그러니 모디도 총리를 연임할 수 있었을 터이고.....

 

 

 

이 힌두민족주의가 펼치는 주장이라는 것이,

 

인도의 역사에서 1530~1858년까지 한토막을 차지하고 있는 무굴 제국-이슬람 왕조를

 

인도 역사-힌두/인더스 문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삭제해버린다는 것인데,

 

실제로, 내가 타지마할(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의 처의 묘) 을 간다고 했을때 "그걸 뭘 보러 가냐" 라는 친구도 있었고,

 

200년동안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영국은 우리를 이슬람에서 해방시켜줬으니까" 라고 대답을 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이슬람을 인도의 역사에서 침략의 역사로 규정하고 삭제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힌두 문화의 원류가 되는 아리안(Aryan)족의 침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도인들, 특히 인두민족주의에서의 생각이 궁금하였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역사적으로 아리안들의 이주와, 이들이 이주하여 만든 베다(Veda) 및 카스트 제도가

 

힌두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침략을 부정하자니 힌두 문화의 근간이 흔들리고,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그들의 근간이 외부에서 시작된 침략(혹은 이주)의 역사임을 자인하는 형국이라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페북에 친구중 한명이 (앞서 그 친구와는 다른) 흥미로운 기사를 올렸다.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피부색에 대한 식민지적 관점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만연해있다.>

 

기사는 한 남부의 정치인이 북쪽의 정치인에게 "아리안 침입자"라고 비난한데에서 시작한다.

 

아리안족 기원설에서는 아리안 침입설 (Arayan Invasion Theory, AIT) / 아리안 이주설(Aryan Migration Theory, AMT)

 

이 있는데, AIT는 식민지 시절 식민지배를 정당하기 위해(아리안족 우월설 식의) 언어학적으로만 본 것이라

 

역사적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AMT는 침입이 아니라 평화롭게 이주/공존했다는 설인데,

 

유전적 연구로 보았을때 지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아리안족이 이주할(이주했다면) 당시 번성했던 인도의 드라비다 족의 하라파(Harappan)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리안족이 고향에 정착하지 않고 이주할 이유가 없으므로,

 

아리안이라는 종족적 구분은 의미가 없고, 인도는 그당시부터 남북이 하나의 인더스 문화이자 베다(Vedic) 문화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결국 아리아인의 침입/이주설을 부정하고, 그것이 이미 고대 통일된 인도에 내재되어 있었다라는 주장이고,

 

잠시 뒤 이야기하겠지만, 힌두 민족주의/우파의 "아리안"침입/이주에 대한 전형적인 반론이다.

 

 

"아리안(Aryan)"족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살펴보니,

 

위 기사의 언급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데,

 

우선 19세기에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어족사이의 유사성을 토대로 유럽과 인도의 공통 조상이되는

 

아리아인을 상정한 것은 맞다. 즉 출발이 언어학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또한 이 논리가 과거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의 인종차별/우월주의적으로

 

활용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특정 인종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언어학에서의 어족(인도-유럽어족)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게 통용된다고 한다.

 

다만, 당시 인도의 하라파 문명은 청동기 시대였으나, 베다에는 철기 문화의 언급이 자주 나타나며,

 

베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을 타거나, 전차(chariot)를 끄는 모습도 하라파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리안인들의 흔적으로, 아리안족 침입/이주설이 단순히 언어적으로만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닌

 

다수 비교 문헌 및 유적등의 발굴과정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중 2018년도에 하버드 대학의 데이빗 리치(David Reich)가 이끈 연구팀이

 

고대인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아리안족의 이주설을 지지하는 꽤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는데,

 

이로 인해 힌두민족주의의 소위 "아리안 자생설"은 그 근거가 많이 흔들리게 된다.

 

관련된 기사에서 "아리안"을 두고 역사적으로 어떤 입장이 있어왔는지 꽤 재미있게 정리를 했기에,

 

간단히 언급해두고자 한다.

 

The Economist에 실린 <새로운 연구가 인도인의 기원에 대한 소중한 이론에 찬물을 끼얹다>

 

원문은 구독을 해야만 볼 수 있는데, 다행히 한 힌두민족주의자가 데이빗 리치는 사기꾼! 하면서 

 

전문을 옮겨 놓았다.

 

 

1세기 반 전 "인도-유럽-원어(Proto-Indo-European)"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와,

 

아리안족의 침입/이주에 대한 이론은,

 

①나치에게는 세계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②영국 식민지배하의 인도에서는 카스트제도와 상위계급의 지배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시 우리가 지배자!)

 

③또 반대로 남인도에서는 드라비다족들의 분리에 대한 주장을 야기하였다. (아리안 침략자!)

 

④한편 힌두민족의자들은 이 이론에 대해 인도의 분열을 노리는 기독교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의 모략이라고

비난하고 "아리안-인도문화의 원류"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자생했으며,

이들이 서쪽으로 나아가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요 지점이 딱 위의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가 주장하는 바이다.)

 

 

 

한데 이러한 주장이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대해서는 BBC의 기사에서 꽤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고대의 DNA가 인도의 고대사를 다시쓸지도 모른다.>

 

2018년 3월에 출간된 그의 연구에는 세계에서 총 92명의 연구자가 함께 했으며,

 

남아시와와 중앙아시아의 고대 인류의 유해에서 DNA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도에는 두번의 큰 이주가 확인되는데,

 

첫번째는 기원전 7,000~3,000년 사이 이란 서남쪽의 자르고스 지방에서 이주한 농경문화이며,

 

두번째는 기원전 2,000년경 유라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이주한 세력이다. 

 

다만 이 연구에서 밝혀낸 점은, 이들이 지금까지 알려진바와 같이 이란 지역이 아닌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방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소련이 세계를 정복한...것이다...)

 

데이빗 리치의 논문중 도판 ①BC7,000년 경 이주, ②BC2,000년경 이주.

 

데이빗 리치의 논문 중 도판 / 녹색 세력이 인도문명의 직접적 조상이다.

 

이 논문은 당연 힌두 민족주의가 득세하던(그리고 지금도) 당시 인도 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데이빗 리치를 비롯, 공동 연구자들의 트위터가 테러 당하는 등,

 

힌두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거친 항변이 이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조명해야 하는 역사와, 한 나라의 근간과 정당성을 세워야 하는 국사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국사에서, "찬란한 우리 반만년 역사"라고 이야기 해야지,

 

"우리 민족은 애초에 쬐끄만 땅덩어리에서 아웅다웅 살아왔어요" 라고 말할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다만, 소위 "국뽕"이 지나쳐 '신화'에서 끝나야 할 것들을 '역사'로 만든다거나,

 

과거의 그릇된 행위들을 정당한 행위로 포장하는(옆 섬나라처럼..) 행위는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 최악은 자기 생각에 정당하지 못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거나,국가의 구성원일지라도 - 배제해버리는 행위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에 의미를 새로이 부여할 수는 있어도

 

그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이 논쟁은 인도의 '국사'에 대한 관점에 가까울 것이라

 

외부인인 내가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다만 이미 역사에서 이루어진 것, 그리고 이미 인도의 역사의 일부가 된 것들을

 

그리고 그 후손으로서 현재 인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축출/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언젠가는 파국적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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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침신문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들고 시민의 체온을 측정하는 인도 경찰의 모습.

(인터넷판 신문을 찾아보았으나, 다른 사진이 실려 있어, 해당 사진의 출처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자연스레 너무도 유명한 1968년 에디 에이담스(Eddie Adams)의 <사이공의 처형> 사진이 떠올랐다. 구도나 포즈나, 너무나 유명한 사진이니, 다분히 오늘날의 신문기자가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은 구성이지 싶었다.

 

하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점은, 두 사진이 권총을(체온계를)겨누고 있는 경찰/군인과

이를 맞는 시민(혹은 베트공)의 구도적인 시각적 유사성과 달리,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68년의 희생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반면,

오늘날 인도의 시민은 너무도 당당하게 체온계를, 경찰을 응시하고 있다.

1968년과 202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닮은 듯 다른 두 사진을 발견한다는 것은

나를 꽤나 흥분시켰다.

 

이러한 발견은 그리 드문 편은 아닌 것인지, 이라크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Sophie Ristelhueiber는 헬기를 타고 이라크 상공을 찍은 전쟁현장의 사진에서, 만레이가 뒤샹의 작품에 내려 앉은 먼지를 찍었던 <Dust Bleeding>을 연상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왼편 : <Dust Bleeding>, 만레이, 1920 / 오른편 : <Because of Dust Bleeding>, Sophie Ristelhuiber, 1991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러한 발견을 기쁘게 지인들에게 공유하고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던 순간,

 잠시 주저할 수 밖에 없었는데, 혹시나, 인도의 지인들이 이 사진을 보고 인도의 공권력에 대한 - 베트남전에서의 즉결처분처럼 - 비판적인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부연설명을 곁들이고, 바이러스와의 싸움 / 이념의 싸움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니,

 굳이 그런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을듯 하여 약간의 부연과 함께 사진을 올렸는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선 한국의 지인이 "저 베트남전 사진의 희생자가 실상 무고한 사람이 아닌 비무장 시민을 학살한 게릴라를 사살하는 사진인데, 사진의 프로파간다가 껄끄러운 측면이 있는건 알고 있느냐" 고 댓글을 달았고, 인도 친구 한명은 "저 사진가가 이 소리를 들으면 까무라치겠는데요?" 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사실 다른 인도 친구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한달에 한번정도 올리는 포스팅에 열렬한 좋아요를 눌러주던 그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이번 포스팅은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위의 지인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다른 인도 친구들과도 이  두 사진의 비교가 그렇게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① 대부분은 베트남전의 사진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② 베트남전 사진은 사람이 죽는 사진이고, 인도의 사진은 사람을 돕는 사진인데,

    둘을 비교를 한다는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실 ②번이 정확히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유사한 형식, 다른 컨텍스트-인데,

 부연설명을 했음에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분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부연설명-글을 읽기에 앞서,

 두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아래와 같은 즉각적인 시각적 판독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신문 기사의 사진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사람을 죽이는 사진

 

 사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래와 같다.

 

   신문기사의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죽이는 사진.

 

 더불어, 두 사진을 비교하는 내 의도는 역사적 맥락을 걷어내고,

 순전히 그것들의 형식과 내용의 닮음과 다름에서 오는 발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두 이미지의 비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분히 두 사진의 외부의 맥락들,

예를들면 : 베트남전 당시 사진이 전달했던 프로파간다, 인도의 경찰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

 을 고려하여 두 사진을 비교하고, 의도를 품고 사진을 비교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베트남전의 사진 이미지가 워낙에 강렬하기도 하고,

 또 인도인들은 이 상황의 당사자이다보니 다분히 복잡한 외부의 맥락들 속에서

 사진의 비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일단 한번 이렇게 두개의 사진 비교가 의미화 되면,

 그 이후에 어떤 설명도 처음의 시각적 문법을 뒤집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은 읽을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삼 시각적 문법의 즉각성과 의미 고착의 강력함을 깨달았다.

 

 여기서 딜레마는, 비록 내가 그러한 의도로 올린 것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철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인데, 

 굳이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목소리도 없었고,

 또한 당사자들이 아니라 외국인이니까 할 수 있는 비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성(?)을 추가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소심한 복수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개인적으로 사진이 불편한지에 대해 물어본 친구들에게는

 충분히 내 의도를 설명을 했고, 대부분은 내 의도를 이해하고,

 굳이 글을 내리거나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근데 그렇게 이야기 했던 그중 한명이 결국 뒷통수를 치는데...

 약 6년여간 알고지낸, 나름 친하다면 친한 친구녀석이 있는데,

 약간 힌두 민족주의 / 반중주의 / 친일(?!) 노선을 취하는 친구라,

 종종 힌두우파 테러리즘의 입장에 준하는 글을 보내주기도 하고,

 나는 나대로 질문도 하고, 다소 보편적인 차원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며,

 나름 그런면에서는 터울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친구가 구자라트 지역에서 이슬람 폭동의 역사가 담긴 글을 보내주며

 

 "너는 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테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뜻이니?"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은, 모든게 그들(이슬람)에게서 시작되었음은 잊어버리고,

  이슬람을 피해자로 포장하지."

 

 "지금 나보고 그 자유주의자라는 이야기?"

 

 "난 너의 정치성향은 몰라, 하지만 흰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해야겠어"

 

 

  나한테 너무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냐는 물음에 결국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긴 했으나,

  

  이것은 분명 상기한 사진 비교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고,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준 친구이긴 한데,

  다른 인도 친구들과 교차검증을 해보면 편향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이런식으로 투정을 부릴거라면 관련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리를 좀 둘 필요가 있지 싶다.

 

 이상 나름 개인적으로 뿌듯한 발견에서, 시각 문법의 즉각적 독해에 놀라고, 그로 인해 소심한 복수까지 당한 이야기.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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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이제 곧 나가는 마당에, 한번만 참았어야 했나 싶지만,

 결국 참지못하고 터져버렸다. 제사상 앞에서 애꿎은 피아노를 걷어차며 거칠게 항변했다.

 

 "아버지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얼마전부터 빈도와 수위가 점점 더해지던 손주 타령.

 손녀들 앞에 두고 대가 끊기게 되어 조상볼 면목이 없다는 말에

 오늘은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덩달아 숨을 몰아쉬며 화를 내시던 아버지.

 

 돌이켜보면, 그 분노의 원인이 아들이 갑자기 격렬히 저항한 것도 있겠지만,

 하필 아들이 그렇게 무례하게 군 것이 조상들을 모신 제사상 앞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시고, 고위공무원까지 지내신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조상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단순히 예나, 효의 차원을 넘어

 말 그대로 종교적 의식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었다.

 아버지께 조상이라는 것은 이성을 넘어 원초적인 공포 혹은 운명을 좌우하는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나는 극단적인 이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질적인 인과율을 바탕으로 매사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져가며 결정하는 세계.

 그런 내게 조상이란, 무시하자니 관습과 사회에 맞서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너무도 크기에 적당히 따라줘야 할, 그리고 최근에 보자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적당한 효용성을 지닌 하나의 소재나, 재료일 뿐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다 화해의 제스쳐는 없었지만, 일은 그렇게 또 덮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가는 아들네를 공항까지 따라와 살갑게 맞아주셨고,

 출국장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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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주저리주저리 2019. 9. 11. 00:07

아마도 별 이변이 없으면 내년 초에 인도로 가서 약 4년을 보낼 예정.

 

처음 도전 했던 것이 2015년이니 약 4년 만에 바램을 이룬 셈.

 

막상 왜 인도일까 생각해보면 끌리는 데는 이유가 없다던가...

 

혹은 나름대로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던 것 같다.

 

40이 되기 전에 인생의 이정표를 한번쯤 틀어보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늦기는 했다. 

 

게다가 이정표가 돌려질 만큼의 계기가 될지 살짝 걱정도 되고..

 

아이들이야 어디서든 잘 적응한다지만, 아내에게는 살짝 미안한 마음도,

 

그리고 나나 아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이것 저것 알아보고 고민할 것들이 많아지네...

 

그래도 행복한 고민이겠거니....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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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린이 미술관 방문을 핑계로..(정작 아이들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아했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방문했다. 

(접근성이나, 주변 분위기나 난 여전히 서울관보다 과천관이 더 정이 간다..)

아이들 때문에 아내와 번갈아서..빠르게.. 전시를 훑었다...30분씩..--;

진행중인 전시는 <문명:우리가 사는 법>, <김중업 다이알로그>, <박이소:기록과 기억>.

규모나 방식으로 보아 셋다 꽤 신경 썼을 것 같은 전시였고,

프레임을 짜서 전시물을 공간에 띄운 배치는 과거에도 시도된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재미를 본 것인지 <문명:우리가 사는 법>, <김중업 다이알로그>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아니 전시와 관련은 있는 것이지만...

<문명:우리가 사는 법>은 8개의 주제를 두고 루즈하게 엮인 수백점의 사진이 전시된 형태인데...


전시의 내용을 떠나 한방 두드려 맞은 느낌이 들었던건 사진들의 유사성, 혹은 익명성 때문이었다.

상당수의 사진이 흔히 유형학적 사진으로 (이게 결코 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분류될법 했고,

약간 먼발치서 사진을 보면 그 방면의 거장들의 이름이 저절로 떠오르는..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여분, 사진 한장당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수초. 

아..이건 딱 누구 느낌이네? 아니네 모르는 사람이네..

이 사진은 같은 작가 사진인가? 아니네 다른 작가네..

사진 개개로 보면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또 내적인 외적인 형식적인 의미화가 분명 있겠지만,

수십/수백장이 모여진 이곳에서는, 그리고 수초만에 눈앞에서 스쳐가는 이곳에서는

철저히 동질성과 익명성에 가려진 구분되지 않는 사진들.


결국 스스로에게 다가온 물음.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이렇게 서로 구분되지 않는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내고 있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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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장인 어른 환갑으로 제주도 3박 4일을 다녀왔다.

나름 성수기라고 렌트카가 너무 가격이 올라버려서, 쏘카를 이용.

(쏘카는 성수기 요율이 따로 없는듯?)



::::우선 아이오닉 후기.


기존의 내연기관 차와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운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전기차라서 기대했던 특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달까..

주행감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기차(?)임을 증명할 수 있는 특별 옵션(?) 같은게 하나 있었다면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배터리 때문에 무게 중심이 꽤 하향되어 있어서 승차감은 괜찮은 편인데,

무게 배분 탓인지 핸들링이 여느 전륜구동 차와는 다르게 오버 스티어 느낌으로 들어가서 언더로 마무리됨.

즉, 관성모멘트 탓에 뒤가 따라 돌지를 못한다는 이야기. 연비 위주 타이어 탓도 있겠지만, 크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중산간 도로에서는 살짝 속도를 붙여 코너를 돌면 차가 거의 사선으로 달리는걸 보게 됨..-_-;



그리고 패들쉬프트로 회생제동 기능을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이게 대박임.

3단계(가장 강하게)로 설정해놓으면 완전히 정지하는 상황 이외에는

악셀에서 발을 살짝 떼어주는 것 만으로 감속을 조절할 수 있음.(+에너지업)

오른발을 계속 미세 컨트롤(?) 하게 되어서 무릎에 살짝 스트레스가 되긴 하지만..

브레이크페달을 오가는 것보다는 훨씬 덜 수고스러움.


 바람직한 사용자 경험(UX)이란, 경험 이후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경험이다라고 하는데,

내 경우에 있어서는 회생제동을 통한 감속-정확히는 악셀페달을 이용한 감속 컨트롤-이 그것이었음.

서울에 돌아와서 다시 내연기관차를 운전하는데, 그부분이 얼마나 아쉽던지....아니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적응이 안되는 수준..


3번 충전하는 동안 540km를 달렸고, 마지막은 180km이상 남아있었으니,

만충시 주행거리 220km정도를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되고,

실제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250km 남짓으로 보임.

향후 300km대 전기차가 나오면 일상적인 용도에서의

주행거리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됨.


다만, 배터리 잔량 표시에 문제가 좀 있는데,

완충 후 잔량표시 기준 200~220km까지는 매우 천천히 잔여 주행거리가 떨어지고,

(그래서 어 생각보다 오래 달리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됨)

그 이후로는 주행거리에 비례해서 떨어지게 되어서 초반 예상과 주행거리가 어긋나게 됨.

(연료탱크 게이지가 만땅 넘어가서 측정이 안되는 느낌이랄까..)

내연기관 차도 부정확한건 마찬가지지만 눈앞에 보이는 주유소를 들릴 수 있는 내연기관 차와 달리

잔여 주행거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전기차라면

다소 정확하게 표시해줄 필요가 있을 듯..



모든것이 좋다 좋다, 다음에는 무조건 전기차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한번 더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발생하는데,

혹시나 했던 바로 충전소 인프라.


제주도는 워낙 충전소가 많이 깔려있어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1. 충전기 고장.

2. 업장 영업시간 후 주차장 폐쇄로 충전소 접근 불가.

3. 지도에 표시된 충전소가 위치한 업장 폐쇄.

4. 충전기가 1대 뿐이라 다른 차 점유시 충전 불가.




특히 4번은 앞으로 전기차가 확대 보급 될 때에 좀 생각해볼 문제인데,

충전소 앞에 "충전완료 후 주차 금지"라고 되어있지만, 현실적으로 관광지에 입장하면서

주차하는 김에 충전하자가 대부분이라, 지켜지기가 거의 어렵다고 보이고,

결국 충전기 1~2대로는 충전기 앞에 줄을 서는 사태가 이미 벌어지고 있음.


어떻게 보면 단순히 충전기 숫자를 늘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집(숙소)에서 (완속)충전하고, 관광지나 마트에 위치한 급속 충전기는 비상개념으로 

운용하는 자동차 운용 패턴 자체가 바뀌어야 될 일이긴 한데....

문제는 집(숙소)에도 충전 인프라가 충분치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파트 주차장에 1~2대 있는 충전기에 5~6대가 충전해야 하는 상황이 불보듯 뻔함...)

결국 집이든, 밖이든 충전인프라의 확대는 필수적으로 보임. 

모든 주차면에다가 무선 충전기를 설치하던가...

(심지어 쏘카 차고지(완속충전기)에서조차도 충전기 댓수가 부족함....)

그게 안되면 최소한 220V 콘센트라도 주차장에 깔아서 개인 충전기로 충전/과금하게 해야...할듯.




::::그리고 쏘카 후기.


지역이 제주다보니, 비교의 기준이 여타 렌트카 회사가 될 수 밖에 없어서, 쏘카에게 좀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


장점이라고 하면, 따로 성수기 요율이 적용되지 않는 요금제. 상대적으로 싸다 이고,

반대로 비수기에는 여타 렌트카 회사들이 보험 커버리지도 넓고 요금도 비슷한 수준임.


내가 차를 인수했을 때 차량 상태는 무척 좋은 편이었으나, 

내가 반납할때 시간이 급하기도 했고, 매트에 묻은 흙은 어찌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긴 했음.

쏘카 앱을 살펴보니, 반납 전에 세차하면 10,000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등 이벤트가 있긴 했지만,

여행지에서 (+전기차라 주유소에서 세차도 못하는데) 굳이 여행 일정 쪼개가면서 세차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임.


그리고 쏘카 차고지에는 완속 충전기 밖에 없는데, 완속 충전기는 손으로 눌러 열어야 하는걸 몰라서..

결국 완속 충전기에다 걸어놓지 못하고 반납했음..(물론 배터리 잔량은 80% 이상 남아있어서 주행에는

문제가 없긴 하겠지만..) 전기차는 생소한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한명이라도 있어서

가이드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결론적으로 반납 과정에 있어서 차를 넘기기만 하면 되는 렌트카 회사와는 달리..

청소부터 충전기 연결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쏘카의 경우, 이번 성수기처럼 비용상으로 큰 이득이 없으면,

렌트카 회사와 비슷한 이용 요금 수준에서 선뜻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듬.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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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준녕 2017.12.25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도 현대차를 렌트해서 타봐야하시다니!!!
    하이브리드 너무 조용하고 부드럽고 연비좋고 느무느무좋아서 완전 만족하는데
    뭔가 처음에 물컹하게 출발하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ㅠㅠ
    이전차가 젠쿱이라서 더 그런것같긴합니다만
    요즘에도 갑자기 끼어서 확 밟아야할때 안나가면 순간 철렁해서 마음이 아퍼요 ㅠㅠ
    완전 전기차는 그런게 좀 없나요??
    엑셀밟을때 그르렁거리는 느낌이 그리워서 전 오히려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도..
    산지 얼마안돼서 5년은 지나야 차 바꿀텐데..
    그때가서 내연기관차를 산다는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것같기도하고... ㅋㅋㅋ

3년간 별 불만없이 잘 사용하던 핸드폰이 인도에서 돌아오는 날 전원 버튼 고장으로 죽어버렸다.

부랴부랴 2년 약정에 알뜰 통신사로 LG V20을 구입.





약속이 있어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가 사진 서적 코너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딱히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

사진에 대해 조금 알게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일지

10년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류의 책들이 서가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10년전 디지털 카메라 붐이 일었을때가 사진 관련 서적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개인적으로 이제 사진은 없고, 사진적 이미지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오늘날의 시각-이미지 문화에 대한 책들이 나올때도 된 것 같은데 아쉽다.

존버거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 신판이 보이는 것 같아 뒤적거리다가

(구판에 비해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좋아졌다!)

이영준 교수의 <이미지 비평의 광명 세상>이 보이길래 샀다.

2012년 출간. 시의 적절한 시점의 책인듯.

다만 이미지와 더불어 세태 비평 같은 느낌도 조금 들었다.

군데군데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느껴지는데, 의도인지 오독인지 잘 모르겠다.





V20에 20mm 광각을 넣은 것은 정말 신의 한수.

화질도 100% 확대해서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긴 하지만,

화면(특히 핸드폰)으로 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소니 A7(28mm)을 챙겨나간 이날,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왜 이 무거운걸 들고다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수팩과 결합하니 A7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점의 사진이 가능.

이렇게 기술은, 그리고 사진적 이미지의 세상은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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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하이데라바드 오는 길, 올라를 이용했음..

거리는 약 50km정도, 50분 소요. 요금은 809루피

톨비(30루피) / 주차비(200루피) 별도


나: 너 직업에 대해 몇가지 물어봐도 될까?


Ola : 옛 써


나 : 올라 기사가 메인 잡이야?


Ola : ㅇㅇㅇ


나 : 올라 말고 우버도 있잖아. 굳이 올라를 하는 이유는?


Ola : 우버도 같이 해, 올라 우버 동시에 같이...


나 : 아하..그렇구나, 커미션은 얼마나 떼어가?


Ola : 올라 우버 똑같이 20%씩...


나 : 하루에 얼마나 벌어?


Ola : 정확히 하루는 아니고..한번에 2천-3천 루피 정도..(한화 3~5만원)


나 : 정확히 하루가 아니라는건 무슨 의미? 하루에 몇시간 일하는데?


Ola : 24시간


나 : 너 잠도 안자냐?


Ola : 24시간 일하고 그다음날은 쉬어


나 : 그건 올라나 우버에서 정한 규칙이야?


Ola : 아니 내 스스로 만든 규칙이야.


나 : 올라/우버 드라이버라는 직업에 만족해?


Ola : ㅇㅇㅇㅇ


나 : 공항에서 손님 태워가는건 비싸니까.. 흔한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 올때 누구 태워온거지? (= 운 좋은거지?)


Ola: 아니 혼자 왔어


나 : 혼자와서 공항에서 시내 가는 손님 기다린거야?


Ola : ㅇㅇㅇ 그게 내 전략이야.


나 : 그럼 나 내려주고 다시 공항으로 갈거야?


Ola : ㅇㅇㅇㅇ


나 : 근데 이거 너차야?


Ola : 아니 빌린거야


나 : 역시 그렇구나.. 하루 빌리는데 얼마?


Ola : 800 루피.


나: 그럼 하루 2-3000번다는거는 렌탈피랑 기름값은 제한거야?


Ola : 아니 그냥 하루 매출이 2000-3000정도라는거야


나 : 휴, 이것도 쉬운일은 아니네

(한달 15일 잡고, 하루 순수입 1000수준이면, 15000루피, 일반적인 개인 기사 월급정도임.)


Ola : ㅇㅇㅇㅇ


나 : 우버나 올라에서 차 빌릴때 혜택이 있나?


Ola : ㅇㅇㅇ 몇몇 지정된 렌트카 회사에서 빌리면 할인해줘


나 : (Ola를 부르면 항상 Tata Indicar가 오는 이유가 그거로군...)


나 : Ola나 우버기사를 신청할때 백그라운드 체크 같은건 하나?


Ola : 아니.


나 : 그럼 누구나 Ola나 우버기사가 될 수 있다는거야?


Ola : ㅇㅇㅇㅇ


나 : 택시나 오토릭샤 기사들이랑 트러블같은건 없어? 경쟁자잖아..


Ola : 글쌔.. 잘 모르겠는데..


나 : 근데 너 길을 참 잘아는구나, 지금까지 구글맵 한번도 안보고 왔네?


Ola : ^-^


나 : 웨스틴 들어가지 말고 저기 세워줘 저 건물이야


Ola : ok, 809루피네


나 : 자 여기 1000루피, 거스름돈은 됐어, 덕분에 즐겁게 왔네, 잘가


Ola : 땡큐 썰~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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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벌초..

그래도 올해부턴 전부 대행에 맡겨서..

그냥 확인만 하러 가는 셈...




그래도 무덤 가는 길이 험난하다..
















매년 오지만..여전히 어느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겠다..



이 무덤이 증조할아버지 무덤이라는 것만 암...


















옆동네 월정리 해변..







카페들이 많이 생겼네..



시골집..












문중 벌초..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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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의 컨셉은 자유....from 애들.



서울 국립현대 - 악어의 눈물.




김수자 展



일민 미술관 - 너무 어둡다. 위험.

<멀리 있는방>(페드로 사페즈, 후안 코스타)



아시아프 - 히든 - 원영이 - 그림이 점점 완성도가..



봉천동 - 분양 신청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봉천동 - 내집 냅둬



D-TOWER




한육감 - 두툼 덮밥 - 별넷.



망원동 주오일 식당 - 별 셋



방배동 플라잉 볼 - 별 마이나스 백개.



미미네 국물 떡볶이 - 별 둘 - 내취향 아님.



카페 에스프레소 - soso..




커피 가게 동경 - 별 넷.




내가 한 제사 음식 - 별 다섯.



어린이집.




꿈에 그리던 아이들 손잡고 등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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