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취업이 빨랐다.

2002년 당시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은 굴지의 기업이 된, IT회사에 입사를 했었고,

약 3년간 근무를 하고 퇴사후 복학/졸업을 하고 2006년 현재의 골수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골수 제조업 회사로 옮기니 

문화적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당이 없는 야근은 물론이고, 명시된 휴가를 쓰는 것 조차

허락아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입사 당시에는 경직된 회사 분위기에 아연실색했다가, 차차 조직에 물이 들어가며,

'그래 회사 생활은 이런게 당연한거지.. 나름 회사 안정적이니 된거지' 

라고 그렇게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와 일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최근이 변화라면 단연 주 40시간(52시간)과 코로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회사에서 40시간은 단순히 근무 시간 뿐 아니라 문화 자체를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의 준수와 더불어서 '나의 보장된 권리'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함께 높아진 것이다.

 

이를테면 '왜 원치 않는 회식을 참여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고,

 

예전 같았으면 '팀웍을 위해서!' 라고 답변되었을 질문들이 이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율 참여, 혹은 아얘 하지 마' 로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변화들을 보며 15여년 전 내가 처음 입사했을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너무도 달랐던 회사의 문화들을 비교해보며 당황해 했었고, 

'원래 회사가 이런거지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나봐' 라고 정리했던 생각들이

지금와서 보면 당연한 요구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IT기업과 골수 제조기업의 문화지체가 그만큼-15년- 존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40시간 도입때도 그렇고, 코로나때도 그렇고

회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표면적으로는 '효율성' 이고, 내부적으로는 '근무 기강'인듯 하다.

40시간 도입때도 '놀거 다 놀고 쉴거 다 쉬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막상 제도를 도입하고보니, 코로나로 재택 근무가 늘어나보니,

생각만큼 업무에 지장이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큰 무리 없이 업무가 진행이 된다.

특히 흔히 '사무직'으로 표현되는 연구 개발 업무 등은 의외로 원활히 돌아간다.

사실 여기에 오히려 더 큰 위기가 있다고 보는데, 일단 당장 현상유지가 된다는데에 만족을 하고, 

처음에 우려했던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 이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40시간/코로나 등으로 업무 시간이 제한되면, 당연히 '시간에 맞춰' 업무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에너지나 열정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무한하더라도)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면,

업무의 절대적인 처리량이나 퀄리티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효율성 = 퀄리티/업무시간

퀄리티/혹은 업무처리량 = log(업무시간)

 

위와 같기 때문에 업무 시간 축소에 따라 효율성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고,

그간 사실 필요 이상의 업무 시간이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업무의 질이나 량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 40시간 문화 확산, 코로나 등으로 인해 절대적인 업무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업무 처리량이나, 질이 기업이 기준으로 삼는 수준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제가 안생기니 애써 외면하고 있겠지만.

 

이야기가 길었는데,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결국 문제가 생겼을때 '근무 기강', '결과물 질' 등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투입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자원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부가적인 자원이었던 '근무기강', '마음가짐'등은 더이상 유효한 자원이 아니다.

 

결국은 '효율성'을 재고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앞서도 말했다시피,

직원 개인의 차원에서 투입 시간이 줄면 효율성은 저절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결국 직원 개인의 효율성은 노동시간 투입이 지배적이고,

그 나머지 부분의 효율성은 회사의 시스템적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개선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원들이 해야 할 일 중에 '쓸데없는 일'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절대 업무의 효율성은 줄어든 시간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런의미에서 차라리 40시간이나 코로나가 기업에게는 위기인 동시에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모두가 힘드니) 반 강제적으로 기업의 효율성을 재고하고

발전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아래 글의 일본 처럼 '친기업적'이라는 노동 문화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독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닐지...

 

 

 

아래는 쥬오대 교수의 글이라는데 출처는 찾을수가 없다...

공감가는 내용이 많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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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열심인데 왜 일본만 GDP가 회복되지 않는가?

봄이 왔다고는 하는데 기분이 다운되는 경기가 나쁘다는 얘기만 들려온다. 와세다대학교 비즈니스 파이낸스 연구센터 고문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씨의 「미약한 GDP 회복력, 코로나로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하락한다」 (다이아몬드 온라인 4월 1일)에 의하면, IMF의 추계를 토대로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일본의 2019년부터 21년에 걸친 GDP 증가율을 비교해 본바, 일본이 0.46%로 최저를 기록했다.

중국(14.5%)를 필두로 독일(11.8%), 프랑스(7.4%) 등 거의 모든 나라가 2%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하루 수 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나오고 지금도 록다운을 반복하며 실업자도 대량으로 넘치고 있는 나라조차도 착실히 경제가 회복하고 있는데, 일본만 시원치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일본 경제의 회복이 늦는 건, 경제활동보다 코로나 봉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며 코로나를 핑계 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일본의 GDP 성장률은 선진국 중 단연코 제일 낮았다.

요컨대, 원래부터 시원치 않았던 차에, 주변 국가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성장해 버린 탓에, 그렇지 않아도 시원치 않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 결과 다른 나라에 비해 완전히 뒤처지게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런 지적을 하면, 「일본의 강점은 GDP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일본만이 이렇게 낮은 게 이상하다. IMF 의 통계가 잘못되었다!」 등등 현실도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기분은 너무 잘 알고, 심정적으로도 이런 테이터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화가 치민다.

일본은 이 1년간,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보다도 경제회복이 안 되고 있다니,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가능한가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는 바다.

■ 결과가 수반되지 않는 시스템

손님이 없어도 가게를 연다. 팔리지 않아도 매장을 지킨다. 많은 일본인이 그런 심경으로 자포자기하고픈 괴로운 심정을 억제하며 버텨온 것이 이 1년이다. 겨우 경제활동이 부활할 것 같은 밝은 조짐이 비치자마자, 신규 감염자가 갑자기 확 늘어나는 일이 반복되어, 「이대로 가면 코로나로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고 불만을 토로하고픈 심정을 꾹 참고 억제했다. 「의료종사자 여러분은 더 힘들다」 를 자신에게 되뇌며, 심신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면서도 힘겹게 버텨온 사람들이 직종과 관계없이 매우 많을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3월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Work Trend Index」에 의하면, 코로나로 피로를 느끼는 사원이 글로벌에서는 39%, 아시아 전체에서는 36% 인데, 자그마치 일본은 48% 라는 매우 높은 수치가 나왔다.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사원은 45%로, 글로벌 42%, 아시아의 39%로 상회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나라보다도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피폐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 터이니, 어느 정도는 그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신규 감염자가 넘쳐나고 록다운으로 실업자가 넘쳐나는 나라보다도 경제는 얼어붙어 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인가 하며 한탄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결과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노력이 부족했다, 일하지 않고 땡땡이치는 놈들이 있다, 등등 이런저런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심플하게 일본 사회의 시스템이 블랙 기업(역주: 근무환경이나 임금 등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의 악덕 기업)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직장 근무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블랙 기업이라는 곳은 사원이 아무리 불철주야 노력하며 열정과 근성으로 일을 해나가도, 회사의 성장과 연결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급속하게 매상이 오르기도 하지만, 이런 기업은 인력에 100% 의존하고 있는 비즈니스모델인지라 언젠가 반드시 한계에 달한다.

예를 들어 경쟁에서 허무하게 패하든지, 노사문제나 직장 내 갑질 문제 등의 불씨도 꺼지지 않는다. 즉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 시스템」 인 것이다.

그리고 이건 블랙 기업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일본의 선량한 노동자 대부분은 그런 의식이 없겠지만, 일본 경제는 「개인의 노동력」 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걸 뼛속까지 빼먹는 시스템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에 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 개인에 대한 대가는 이상할 정도로 부족하다.

그 증거가 이제는 일본 명물이 되어 버린 「저임금 중노동」 이다.

■ 실질적인 실업자 문제

일본인 노동자 임금이 선진국 중에서도 눈에 띄게 낮은 것은 이런저런 객관적 데이터가 증명하는 사실이며, 최근에는 드디어 한국에까지 추월당했다고 화제가 되었다.

더구나 책임감에 의해 무급으로 일하는 소위 서비스 잔업이 만연하고 있듯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급취득률도 낮으며, 정신적으로도 매우 괴로운 지경에 처하고 있다. NHK도 참가하고 있는 국제비교조사그룹(ISSP)에 의하면, 일본의 직장 내 갑질(꼰대질) 비율이 25.3% 로 세계 37개국 중 4위로, 주요 선진국 중에 매우 높다. 참고로 이런 일본의 블랙 기업화는 외국인 범죄도 늘려가는 중이다.

「저임금 중노동」이 디폴트이므로 당연히 젊은이는 조금이라도 조건이 좋은 기업에 몰리고, 중노동에 비해 임금이 낮은 기업에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 그러면 거기에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싼 노동력이 혹사당하는 소위 「외국인 노동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이는데, 문제는 이들 나라에서도 경제성장으로 눈에 띄게 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럼 당연히 “왜 이렇게 싼 임금을 받아 가며 혹사당해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고조되기에, 직장에서 도망 나와 불법체류자 상태가 되는 외국인이 늘어간다. 그런 가운데 범죄로 흘러드는 자도 생겨나는 법이다.

21년 2월, 군마현 경찰이 20년에 적발한 재일 외국인(영주자, 특별영주자 등을 제외) 가 433명으로 과거 10년 동안 2번째로 많으며, 그중 베트남 사람이 212명으로 국적별로는 촤다라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런 뉴스는 전국에서 눈사태처럼 늘어나고 있다.

「확실히 일본의 저임금이나 장시간 노동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블랙기업과 함께 취급하는 건 얘기가 너무 비약된 게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공통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블랙 기업이 블랙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알바나 파견 노동자라는 고용 불안정한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철저하게 쓰고 버리는 비열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바인데, 사실은 일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그걸 상징하는 것이 「실질적 실업자」 이다.

이 용어는 노무라 종합연구소가 파트타임・아르바이트 중에서 「근무 시프트가 50% 이상 감소」에 「휴업수당을 못 받는」사람들을 정의한 것인데, 이 사람들은 통계상의 「실업자」 「휴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알기 쉽게 말하면, 고용주로부터 “미안하네 코로나로 어려우니까 이번 달은 근무 날짜를 절반으로” 라는 식이 되어 원래는 그렇게 되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휴업수당도 못 받고, 월급도 절반 정도로 견디어 내야 하는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 노동 착취 구조

그런 불쌍한 사람들이 있었다니 하며 놀라는 정사원들도 많겠지만, 지금 음식점, 호텔 등 서비스업 현장에서는 이런 「실질적 실업자」 가 매우 많다. 노무자종합연구소가 2월에 전국 20~59살의 파트타임•아르바이트 취업자 6만 49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총무성의 노동력조사를 이용하여 추계해 보았더니, 21년 2월 시점에서 전국의 「실질적 실업자」는 여성이 103.1만 명, 남성이 43.4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약 1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런 상식을 벗어난 블랙 노동을 강요받아야 하는 가인데, 이는 입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근무 날짜를 줄인다면 휴업수당을 주세요”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가 힘드니 다른 알바와 병행하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 고용주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근무 날짜가 더 줄어들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해고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게 되어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노동력 착취 구조는, 블랙 기업에서 상식을 벗어난 근무 형태를 강요받아도, 그냥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파견 사원이나 알바들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이처럼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산업이 유감스럽게도 일본에는 무척 많다. 좋고 나쁨의 얘기가 아니라 이런 사실은 속일 수 없는 일본의 모습이다.

물론 이처럼 얘기한다고 해서 “하이 소우데스까?” 하며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블랙 기업 같이 나쁜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일본인이 착취와는 관계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다만 일본의 시스템이 블랙 기업의 그것과 같다는 뺴도 박도 못하는 증거의 하나라 사실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정신론」이다.

■ 이름뿐인 관리직

블랙 기업의 특징 중의 하나에 「정신론 강요(무장)」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회사는 가족」 「감사를 잊지 않는다」 등의 파워 워드를 연호하며, 개인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세뇌를 해가며 과중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을 ‘자신의 의지로’ 행하도록 조정한다.

또한 「이름뿐인 관리직」처럼 책임감이 있는 듯한 직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런 식이면 신뢰받는 리더가 못 된다」며 부추기며, 정신론 강요를 「밑」의 인간들에게 파급시킨다.

사실은 이것도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서 괴로워지면 질수록 이와 같은 「정신론 무장」에 의해 성가신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움직임을 활성화시킨다. 그 최고의 사례가 도쿄도가 새로이 감염대책으로 들고나온 「코로나 대책 리더」이다.

이것은 도쿄 내의 음식점 점장이나 점원 중에서 인터넷으로 감염대책 포인트를 배운 후, 솔선해서 감염방지책에 착수하는 「코로나 대책 리더」를 등록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점 감염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가 아니겠는가」라 느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으나, 「리더」가 된다고 해서 무언가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 회식을 하지 않는 손님에 대해 「나는 코로나 대책 리더인데」 라며 스티커를 보여주어도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식으로 냉소당할게 뻔하다.

그러면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가 하면, 이자카야 측에 책임감을 떠넘기어, 자신들이 스스로 손님에게 「마스크를 해주세요」 라며 주의를 주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녁 뉴스를 보면, 코로나 대책 리더에 등록했다는 이자카야 점주가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내가 손님의)생명을 맡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제 알겠지만, 「코로나 대책 리더」라는 것은 블랙 기업에서 말하는 「이름뿐인 관리직」과 똑같은 것이다.

직함과 책임을 부여하기만 하고 권한이나 대가는 일절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 가진 건 몸 밖에 없는 개인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몰아넣고 난국을 빠져나가 보려고 하는 전투를 일본의 위정자들은 참 좋아한다.

「간바레」 「지금이야말로 하나로 뭉치자」고 선동만 하고 있으면, 근본적인 대책이나 시스템 개혁 따위 손대지 않아도 된다. 즉 개인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김으로써 「현상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이자카야 측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 「솔직히 이런 방식에 위화감을 느낀다. 점포마다 자기 방식대로 대처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라의 대책으로서 분명하게 해주는 게 좋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의 부담이 현장으로서는 너무 무겁다」라는 의문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일본인의 곤죠(근성)가 부족하다

코로나가 되고 나서 일본 사회는 전보다 더 「곤죠根性」 나 「기합気合」을 들먹인다. 서구보다도 감염자 수가 적은 것은 「일본인이 자숙하며 노력했기 때문」. 반대로 조금이라도 감염자가 늘어나면, 「젊은이들이 느슨해졌다」.

우리 모두 한 팀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코로나를 반드시 격퇴할 수 있다. 그런 고교야구팀 슬로건과 같은 무드가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수상의 연설도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전력을 다해 대처하겠습니다」 는 식의 기합을 강조하는 언설로 일관한다.

일본인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정신주의에 경도한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럼 가운데 「GNP가 도무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요즘 일본인의 곤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떠들기 시작할 날도 그리 멀리 않은 것이 아닐까.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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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돌아가면서 20% 정도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 근무중이다.

 마감이 임박한 급한 업무로 인해 지난 2주간 특정 그룹이 지속해서 출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  그중 직원 한명의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해당 직원은 며칠 전

 부모님댁을 방문해 아버지를 만난 상황.  하필 그 통보를 내가 그 직원과 업무관련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같이 들었더랬다. 해당 직원은 당연히 혼돈에 빠지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도,

 그리고 함께 지난 2주간 일하던 직원들도 다같이 대 혼란. (물론 모두 마스크는 착용했다고 하나...)

 

 마감은 내일까지이고, 당장 일은 벌어졌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

 책상으로 돌아와 인사팀에 메일을 적기 시작했다.

 

 "당팀 직원의 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해당 직원은 지난 주말 아버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지난 2주간 해당 그룹 인원들이 밀접하게 근무하였음을 고려할때...."

 

  여기까지 적고 잠시 숨을 돌렸다. 지금까지 문맥으로 볼때

 

  "당장 모두 집으로 귀가 시키고,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적절한 문장인 것은 너무나 자명해보였지만,  결국 고민 끝에 내가 적은 말은 

 

  "지금 복귀 시킨다고 하여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서

  업무 마감인 내일까지 근무시키고,  다음주부터 재택근무 및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몰려오는 자괴감.  

  같이 일했던 직원들도, "이 친구가 확진이면 우린 이미 다 망했어" 분위기이긴 했지만, 

  이 친구가 확진일 확률과, 업무의 마감을 두고 도박을 벌인 셈.

  

  다행히 해당 직원은 음성으로 판명이 나서 모두 한숨 돌리긴 했다만,

  불확실한 상황을 두고 확률게임을 벌일때 과연 어떤 공식을 써야만 하는지는 

  앞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

 

 

2. 인도 정부의 공식 통계는 현재까지 확진자수가 전체인구의 0.02%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만,

  주변의 확진자 사례로 미루어 짐작컨데, 대략 5%, 20명 중 한명 꼴로 걸려있는 듯한 느낌.

  인도정부도 경제 활동을 마냥 중단할 수 없으니 점점 제재를 완화하고 있고,

  현지 산업시설, 공장 들도 점점 가동률을 올려가고 있다.

  글로벌 회사 주재원들은 대부분 철수한 가운데, 우리 회사는 "의리"를 외치며 모든 주재원이 근무중이다. 

  공장이 위치한 곳이 인도에서도 썩 발병률이 높은 지역이라 연구소 직원들도 방문을 꺼리고,

  공장 직원들도 외부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인데,

  "의리"를 지키기 위해 연구소에서 꼭 기술지원을 와야한다는 공장의 입장.

  

 

3. 재택 근무가 지속되며 근태가 점점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직무에 따라 재택의 효율이 다른 부서간의 문제도 있고,

  같은 부서에서도 당장 업무의 긴급도에 따라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재택으로도 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장 문제는 아얘 도시가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시골 고향집으로 가버린 친구들.

  

 재택이든, 사무실이든 맡은바 업무만 제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 않은가..싶지만서도,

 위에서 말했다시피, 애초에 부서마다, 사람마다 재택의 효율과 업무의 긴급도가 다른 문제가 있다.

 사람 마음이 누구나 안전하게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누군가는 회사를 나와야 하는 불공평한 상황.

 

  가장 좋은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에 나오는 직원들에게 따로 보상을 해줘야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니, 역으로 재택이 가능한 직원도 회사에 일부러 출근을 시켜야만

  형평성에 논란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고향에 가있는 친구들이 집 주변이 위험해요, 부모님이 못가게 해요 등등의 이유를 들어

  복귀를 거부하고 차라리 해당 기간 만큼 월급을 깍이겠어요 하는 상황이라 난감하다.

 

  위험에 대한 각자의 상황도 다르고,  확률 계산도 다른지라, 충분히 이해도 되고, 

  또 만에 하나 본인이 그리 해서 감염이되거나, 건강상의 손해를 본다면

  내가 확실하게 책임져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복귀를 강요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긴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는 친구들에게는 보상을,

  그리고 그러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그만큼의 페널티를 슬슬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 같다.

  

 

 4.  또 한편에서는 현재 출근 인원이 20%정도인데도, 회사일이 그럭저럭 되는 것을 보고, 

  얼마만큼 회사 운영에 낭비적이 요소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종종 간과하는 것이 80%가 집에서 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업무를 커버해보려고

  열악한 환경에서(이곳 인도의 인터넷 환경이 썩 좋지 않다.. 데스크탑 있는 집도 거의 없고..) 노력하고 있고,

  필수적인 업무만 대응하고 있을 뿐,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부가적인 업무는 모두 미뤄둔 상태라는 것.

  물론 이번일을 토대로 과연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무엇이 있었는지는 분명히 돌아봐야할 것 같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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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로 인해 회사가 셧다운한지 일주일째,

 

사태가 발생하기 전 장난스럽게 회사 총원이 1000명 정도이니,

 

3% 정도, 30명 확진자 예상한다고 농담을 했었는데,

 

현실은 사태 발생 일주일만에 30명을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도 어제 오늘 2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다.

 

하필 한명은 내가 있는 동의 33층 거주. (난 29층 거주)

 

내가 있는 하이데라바드의 인구가 900만 정도고, 이중 2만정도가 확진인데,

 

주변 체감으로는 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검사하면 물반 고기반으로 걸려올라오는 느낌.

 

나 혼자라면 어떻게 버텨볼수 있을 것 같아서, 가족들을 임시로 돌려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치명률이 높은 병은 아니라서 혹여 걸린다고 해도,

 

- 아주 안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 그렇게 크게 걱정은 안되는데....

 

다만, 이 상황이 언제쯤 종식이 될지 조금씩 걱정이 되긴 한다. 

 

전에 없을 경험이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든, 혹은 아이들의 경험에 있어서든..

 

혹은 개인적으로 인도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든..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정확한 근거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국가별 통계/추이를 봐도, 개도국들은 딱히 경향성이 보이지 않는듯...)

 

희망은 8월 중/하순 정도에 피크 찍고 내려가주기를 바라는데...

 

아마 현실적으로는 10월.. 아마 늦으면 연말까지도 쭉 이렇게 기승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의지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 현실이니.. 그저 바라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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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인도는 코로나로 한참 혼란스럽다.

대부분의 외국계 회사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우리 회사(특히 설계) 업무 특성상, 재택이 제한이 많고,

또 한국 회사 특유의 근성(?)이 발휘되어 60% 정도로 조를 짜서

교대로 출근하며 업무를 하고 있다.

 

얼마전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100% 재택근무시 발생하는 문제점 및

근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의외의 쟁점이 나타났다.

 

쟁점 : (재택 근무 기간 중) 연구소가 위치한 도시를 벗어나는 경우 재택근무로 인정 되는가?

 

- 반대 입장 :1. 인도 특성상, 고향방문을 허용하면 집이 지방인 친구들은 다들 빠져나갈 것이다.

                2. 혹여 급하게 회사에 나와야할 수도 있는데, 못나올 수 있다.

                3. 말이 재택이지, 고향간다는 건 업무를 안하겠다는 의도가 크다. 

 

- 찬성 입장 :1. 호스텔(우리로 치면 고시원)에서 지내는 친구는 차라리 고향집이 안전할 수 있다.

                2. 필요한데 못나오게 되면, 그때 거기에 대해 페널티(재택 근무 불인정 = 개인 휴가 사용)를 주면 된다.

                3. 결과로서 책임지게 해야지, 의도로서 규제하는건 옳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입장이었는데, 인사를 포함하여 의외로 많은 주재원들이 전자(반대)입장을 표명했고,

결국 재택 근무시에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경우는 모두 근무 인정이 안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놀랐던 많은 주재원들의 인도 직원들에 대한 인식.

 

"핑계만 대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한다.",

"한 번 두 번 호의를 베풀면, 결국 뒤통수를 친다",

 

 물론 나도 기사로 속을 썩어보기도 하고, 이곳 사람들 일하는 것이 영 미덥지 못하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사람을 속이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사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아니 이녀석이!" 하고 나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알고 오해했다가,

 나중에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 부끄러운 적이 몇 번 있어서, 가급적 의도에 대해서는 미리 짐작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주어진 제도나, 환경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는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는 개인이 다소 손해보면서 사는게 편하다는 듯한 분위기가 있고,

 그것이 조직생활의 매너 혹은 관례로 인식되는 반면, 이곳에서는 그것이 허용하는 한계를 두드려 보는

 일이 종종 있다는 정도? 대부분 원칙과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면 두드려 보고 아님 말지 하는 식으로

 수긍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오늘 결국 점점 좋지 않아지는 상황에 다음주부터 2주간 재택근무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고,

 문제는 이미 휴가를 쓰고(근태 인정이 안되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간 친구들의 다음주 근태였다.

 

 쟁점 : 어차피 재택인데, 굳이 회사가 위치한 도시로 돌아와서 재택을 해야 하는가?

 

 돌아와야한다는 입장 : 1. 예외를 인정하면 끝이 없다. 악법도 법이다.

                              2. 도망간 애들이다. 봐줄 수 없다.

 

 돌아올 필요 없다는 입장 : 1. 고향집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연구소 근처의 고시원보다..

                                   2. 고향집/연구소 소재 도시, 어디서 재택을 하든, 현실적으로 무슨 차이인가?

 

결국은 악법도 법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고,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재택 근무가 인정이 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이제 이곳 생활 6개월이고, 이곳에서 1년 이상 생활한 그들의 경험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의도를 짐작하여 행동을 규제하고, 실질적인 업무효율이나, 개인의 안전과 상관없이 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졸지에 도시를 벗어날 계획이 있는 친구들은 업무를 하지 않을 의도를 

지닌 친구가 되었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향에서 업무를 해야만 하는 친구들은 공식적으로 비업무 상태가 되어

업무지시를 하기도 애매한 상황 - 실질적으로 전력이 이탈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수의 불순한 의도를 경험 → 의도를 짐작하여 규제함 → 결국 집단을 해당 의도를 가진 집단으로 정의.

 

결국 이 과정에서 불순하지 않은 의도를 가진 사람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구성원 모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남게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것은, 당장의 불순한 의도를 가진 몇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

다수의 그렇지 않은 직원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당장 몇사람 더 출근시키겠다는 욕심이, 장기적으로는 직원들의 낮은 충성도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이미 이 시국에 출근하는 거의 유일한 회사...)

여기서 내가 어떻게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지만...걱정스럽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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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을 이기고자 발버둥치는

 가상의 미군 장성 글렌 맥마흔의 노력을 그린 블랙코미디 영화.

 빵형 브래드피트의 연기 변신이 볼만하고, 

 현대전에서 단순한 병력간의 교전이나 작전 수행이 아니라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 특별한 영화.

 

 (사실 글랜 맥마흔은 실제 아프간 해방전을

 이끌었던 스탠리 매크리스털을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과장된 글렌 맥마흔의 연기를 보면, 분명 블랙코미디가 맞기는 한데,

 또 주인공의 고뇌를 함께 그리고 있어서.. 이게 마냥 웃어야 할지 공감해야 할지

 피아식별이 확실하지 않아 영화적인 재미는 다소 떨어지는 편.

 

 다만 이 영화를 두고 글을 좀 펼쳐볼까 하는 이유는,

 글렌 맥마흔 같은 리더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글렌 맥마흔은 군인집안에서 태어나, 사관학교, 레인져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이라크전을 성공전으로 수행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장성임에도 매일 아침 십수키로를 뛰고,

 하루에 4시간 취침하고, 병사들과 같은 수준의 숙소에서 머물며, 자기 전에는 경영서를 읽는

 경력으로 보나, 자기 관리로 보나, 평판으로 보나 나무랄 것이 없고,

 이번 아프가니스탄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다면 경력의 정점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을 앞두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이같은 리더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업무를 준비한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던(=너그들도 열심히 해라!) 부회장님도 있었고,

 매일 아침 6시 출근은 물론이고, 자기 개발을 위해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살던 팀장님도 있었고,

 실무자들보다 더 디테일하고 정확하게 실무를 꿰고 계시던 부사장님도 있었다.

 이들이 이룬 업적을 폄하하거나,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왜 이들이 내 기억속에 "그리 좋지 못한 리더"로 남아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왜 실패했는지,

 주인공 글렌 맥마흔은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는지, 이 영화는

 한 기자의 입을 빌어 이야기 한다.

 

 "장군님의 좋은사람이라는 건 알겠어요, 의도의 선량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의심하는건, (당신이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자아 의식이 의심스럽다는거에요"

 

 "이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사람과 다른 점은, 현실을 외면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광기라고 부른다."

 

리더는 선지자나, 예언자가 아니다. 물론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엘런머스크처럼 비젼을 열어가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매우 한정적인(그리고 운과 재능이 겸비한) 경우일뿐이다.

극 중 맥마흔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한 자신의 야망을 이렇게 역설한다.

 

 "완벽한 군사력과 작전 능력만으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우리 이상(ideal)의 완벽한 힘과 능력으로만 승리할 수 있어"

 

 도대체 "이상(ideal)"이란 무엇인가? 정치인이 나서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외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 지는가? 기업인이 나서서 "세계 1등 제품을 만들겠습니다" 라고 외치면

 세계 1등 제품이 만들어 지는가? 자신의 역량(이것은 단순히 리더 개인이 얼마나 뛰어난가와는 다른 문제이다.)과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고 외치는 것은 그저 이룰수 없는 꿈이거나,

 단순히 구호성 외침으로 끝날 뿐인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리더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은 "의도의 선함"이 결과의 선함을 보장한다고 믿거나,

 혹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비난을 피해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목적하는 선함의 구현을 위한

 과정에서 수단의 정당성의 결여를 (흔히 "창조적인"이라는 미명하에)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글렌맥마흔은 병사 3만을 추가로 받아 이들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점령지역 사지로 몰아넣었고,

 결국에는 자신이 벌인 작전의 끝을보지도 못한채 쫓겨나야했다. (실제로는 본인이 이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스캔들을 만들어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음.)

  

 우리 주변에도 흔히 현실인식이 결여된 허울 좋은 이상을 위해 구성원들을 사지로 내모는 리더들을 본다.

 본인들이 성실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구성원들도 모두 그러하리라 믿고 구성원들에게 자신처럼 일할 것을 강요하며,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지기를 바란다. 심지어는 적군조차 자신의 이상에 동조할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극중 아프간에서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모르겠다는 병사의 질문에 글렌은 이렇게 답한다.

 

 "그럼 자네는 자신부터 이해시켜야겠군"

 

 그리고, 이들의 이상을 한꺼풀 벗겨보면, 사실은 그 이면에 "성공 혹은 명예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본다.

 물론 사람의 욕망이 단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인류에, 혹은 구성원 집단에 기여하기 위한 선함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출세를 위한 야욕인지, 혹은 둘다이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이것을 분리하지 않으면, 아니 최소한 분리하려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기 쉽다.

 즉,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장군의 이력의 정점에 있고, 장군님의 야망을 이해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장군님의 개인의 야망이 망상이 되지 않고, 납득하지 못할 비용(댓가)이 들지 않도록

  검증하는게 (기자로서)제가 할 일입니다."

 

 

 인도에 오기 전 주재원 수업을 들으며, 좋지 않은 인사말의 예라며 배웠던 문장이 있다.

 

 "I'm here to Lead, not to be led."

 (나는 여기 지휘하러 왔지, 지도를 받으러 온게 아닙니다.)

 

 어쨌거나, 이곳의 현실은 나를 리더로 인식하고 있고,

 나를 걱정반, 기대반으로 바라보는 60여명의 시선과,

 "위대한 이상"을 위해 충성하라는 회사 리더들의 요구가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이들을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이며,

 이들은 무엇을 느낄것이며, 내 위의 리더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진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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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지만,

 

힌두민족주의 운동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지지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꽤 많다.

 

그러니 모디도 총리를 연임할 수 있었을 터이고.....

 

 

 

이 힌두민족주의가 펼치는 주장이라는 것이,

 

인도의 역사에서 1530~1858년까지 한토막을 차지하고 있는 무굴 제국-이슬람 왕조를

 

인도 역사-힌두/인더스 문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삭제해버린다는 것인데,

 

실제로, 내가 타지마할(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의 처의 묘) 을 간다고 했을때 "그걸 뭘 보러 가냐" 라는 친구도 있었고,

 

200년동안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영국은 우리를 이슬람에서 해방시켜줬으니까" 라고 대답을 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이슬람을 인도의 역사에서 침략의 역사로 규정하고 삭제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힌두 문화의 원류가 되는 아리안(Aryan)족의 침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도인들, 특히 인두민족주의에서의 생각이 궁금하였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역사적으로 아리안들의 이주와, 이들이 이주하여 만든 베다(Veda) 및 카스트 제도가

 

힌두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침략을 부정하자니 힌두 문화의 근간이 흔들리고,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그들의 근간이 외부에서 시작된 침략(혹은 이주)의 역사임을 자인하는 형국이라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페북에 친구중 한명이 (앞서 그 친구와는 다른) 흥미로운 기사를 올렸다.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피부색에 대한 식민지적 관점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만연해있다.>

 

기사는 한 남부의 정치인이 북쪽의 정치인에게 "아리안 침입자"라고 비난한데에서 시작한다.

 

아리안족 기원설에서는 아리안 침입설 (Arayan Invasion Theory, AIT) / 아리안 이주설(Aryan Migration Theory, AMT)

 

이 있는데, AIT는 식민지 시절 식민지배를 정당하기 위해(아리안족 우월설 식의) 언어학적으로만 본 것이라

 

역사적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AMT는 침입이 아니라 평화롭게 이주/공존했다는 설인데,

 

유전적 연구로 보았을때 지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아리안족이 이주할(이주했다면) 당시 번성했던 인도의 드라비다 족의 하라파(Harappan)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리안족이 고향에 정착하지 않고 이주할 이유가 없으므로,

 

아리안이라는 종족적 구분은 의미가 없고, 인도는 그당시부터 남북이 하나의 인더스 문화이자 베다(Vedic) 문화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결국 아리아인의 침입/이주설을 부정하고, 그것이 이미 고대 통일된 인도에 내재되어 있었다라는 주장이고,

 

잠시 뒤 이야기하겠지만, 힌두 민족주의/우파의 "아리안"침입/이주에 대한 전형적인 반론이다.

 

 

"아리안(Aryan)"족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살펴보니,

 

위 기사의 언급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데,

 

우선 19세기에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어족사이의 유사성을 토대로 유럽과 인도의 공통 조상이되는

 

아리아인을 상정한 것은 맞다. 즉 출발이 언어학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또한 이 논리가 과거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의 인종차별/우월주의적으로

 

활용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특정 인종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언어학에서의 어족(인도-유럽어족)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게 통용된다고 한다.

 

다만, 당시 인도의 하라파 문명은 청동기 시대였으나, 베다에는 철기 문화의 언급이 자주 나타나며,

 

베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을 타거나, 전차(chariot)를 끄는 모습도 하라파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리안인들의 흔적으로, 아리안족 침입/이주설이 단순히 언어적으로만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닌

 

다수 비교 문헌 및 유적등의 발굴과정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중 2018년도에 하버드 대학의 데이빗 리치(David Reich)가 이끈 연구팀이

 

고대인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아리안족의 이주설을 지지하는 꽤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는데,

 

이로 인해 힌두민족주의의 소위 "아리안 자생설"은 그 근거가 많이 흔들리게 된다.

 

관련된 기사에서 "아리안"을 두고 역사적으로 어떤 입장이 있어왔는지 꽤 재미있게 정리를 했기에,

 

간단히 언급해두고자 한다.

 

The Economist에 실린 <새로운 연구가 인도인의 기원에 대한 소중한 이론에 찬물을 끼얹다>

 

원문은 구독을 해야만 볼 수 있는데, 다행히 한 힌두민족주의자가 데이빗 리치는 사기꾼! 하면서 

 

전문을 옮겨 놓았다.

 

 

1세기 반 전 "인도-유럽-원어(Proto-Indo-European)"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와,

 

아리안족의 침입/이주에 대한 이론은,

 

①나치에게는 세계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②영국 식민지배하의 인도에서는 카스트제도와 상위계급의 지배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시 우리가 지배자!)

 

③또 반대로 남인도에서는 드라비다족들의 분리에 대한 주장을 야기하였다. (아리안 침략자!)

 

④한편 힌두민족의자들은 이 이론에 대해 인도의 분열을 노리는 기독교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의 모략이라고

비난하고 "아리안-인도문화의 원류"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자생했으며,

이들이 서쪽으로 나아가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요 지점이 딱 위의 <당신은 아리안 침략자인가?> 가 주장하는 바이다.)

 

 

 

한데 이러한 주장이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데이빗 리치의 연구에 대해서는 BBC의 기사에서 꽤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고대의 DNA가 인도의 고대사를 다시쓸지도 모른다.>

 

2018년 3월에 출간된 그의 연구에는 세계에서 총 92명의 연구자가 함께 했으며,

 

남아시와와 중앙아시아의 고대 인류의 유해에서 DNA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도에는 두번의 큰 이주가 확인되는데,

 

첫번째는 기원전 7,000~3,000년 사이 이란 서남쪽의 자르고스 지방에서 이주한 농경문화이며,

 

두번째는 기원전 2,000년경 유라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이주한 세력이다. 

 

다만 이 연구에서 밝혀낸 점은, 이들이 지금까지 알려진바와 같이 이란 지역이 아닌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방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소련이 세계를 정복한...것이다...)

 

데이빗 리치의 논문중 도판 ①BC7,000년 경 이주, ②BC2,000년경 이주.

 

데이빗 리치의 논문 중 도판 / 녹색 세력이 인도문명의 직접적 조상이다.

 

이 논문은 당연 힌두 민족주의가 득세하던(그리고 지금도) 당시 인도 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데이빗 리치를 비롯, 공동 연구자들의 트위터가 테러 당하는 등,

 

힌두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거친 항변이 이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조명해야 하는 역사와, 한 나라의 근간과 정당성을 세워야 하는 국사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국사에서, "찬란한 우리 반만년 역사"라고 이야기 해야지,

 

"우리 민족은 애초에 쬐끄만 땅덩어리에서 아웅다웅 살아왔어요" 라고 말할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다만, 소위 "국뽕"이 지나쳐 '신화'에서 끝나야 할 것들을 '역사'로 만든다거나,

 

과거의 그릇된 행위들을 정당한 행위로 포장하는(옆 섬나라처럼..) 행위는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 최악은 자기 생각에 정당하지 못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거나,국가의 구성원일지라도 - 배제해버리는 행위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에 의미를 새로이 부여할 수는 있어도

 

그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이 논쟁은 인도의 '국사'에 대한 관점에 가까울 것이라

 

외부인인 내가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다만 이미 역사에서 이루어진 것, 그리고 이미 인도의 역사의 일부가 된 것들을

 

그리고 그 후손으로서 현재 인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축출/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언젠가는 파국적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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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침신문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들고 시민의 체온을 측정하는 인도 경찰의 모습.

(인터넷판 신문을 찾아보았으나, 다른 사진이 실려 있어, 해당 사진의 출처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자연스레 너무도 유명한 1968년 에디 에이담스(Eddie Adams)의 <사이공의 처형> 사진이 떠올랐다. 구도나 포즈나, 너무나 유명한 사진이니, 다분히 오늘날의 신문기자가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은 구성이지 싶었다.

 

하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점은, 두 사진이 권총을(체온계를)겨누고 있는 경찰/군인과

이를 맞는 시민(혹은 베트공)의 구도적인 시각적 유사성과 달리,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68년의 희생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반면,

오늘날 인도의 시민은 너무도 당당하게 체온계를, 경찰을 응시하고 있다.

1968년과 202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닮은 듯 다른 두 사진을 발견한다는 것은

나를 꽤나 흥분시켰다.

 

이러한 발견은 그리 드문 편은 아닌 것인지, 이라크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Sophie Ristelhueiber는 헬기를 타고 이라크 상공을 찍은 전쟁현장의 사진에서, 만레이가 뒤샹의 작품에 내려 앉은 먼지를 찍었던 <Dust Bleeding>을 연상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왼편 : <Dust Bleeding>, 만레이, 1920 / 오른편 : <Because of Dust Bleeding>, Sophie Ristelhuiber, 1991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러한 발견을 기쁘게 지인들에게 공유하고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던 순간,

 잠시 주저할 수 밖에 없었는데, 혹시나, 인도의 지인들이 이 사진을 보고 인도의 공권력에 대한 - 베트남전에서의 즉결처분처럼 - 비판적인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부연설명을 곁들이고, 바이러스와의 싸움 / 이념의 싸움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니,

 굳이 그런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을듯 하여 약간의 부연과 함께 사진을 올렸는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선 한국의 지인이 "저 베트남전 사진의 희생자가 실상 무고한 사람이 아닌 비무장 시민을 학살한 게릴라를 사살하는 사진인데, 사진의 프로파간다가 껄끄러운 측면이 있는건 알고 있느냐" 고 댓글을 달았고, 인도 친구 한명은 "저 사진가가 이 소리를 들으면 까무라치겠는데요?" 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사실 다른 인도 친구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한달에 한번정도 올리는 포스팅에 열렬한 좋아요를 눌러주던 그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이번 포스팅은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위의 지인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다른 인도 친구들과도 이  두 사진의 비교가 그렇게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① 대부분은 베트남전의 사진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② 베트남전 사진은 사람이 죽는 사진이고, 인도의 사진은 사람을 돕는 사진인데,

    둘을 비교를 한다는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실 ②번이 정확히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유사한 형식, 다른 컨텍스트-인데,

 부연설명을 했음에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분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부연설명-글을 읽기에 앞서,

 두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아래와 같은 즉각적인 시각적 판독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신문 기사의 사진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사람을 죽이는 사진

 

 사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래와 같다.

 

   신문기사의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돕는 사진  / 베트남전 사진 : 총을 겨눈 동작 / 사람을 죽이는 사진.

 

 더불어, 두 사진을 비교하는 내 의도는 역사적 맥락을 걷어내고,

 순전히 그것들의 형식과 내용의 닮음과 다름에서 오는 발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두 이미지의 비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분히 두 사진의 외부의 맥락들,

예를들면 : 베트남전 당시 사진이 전달했던 프로파간다, 인도의 경찰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

 을 고려하여 두 사진을 비교하고, 의도를 품고 사진을 비교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베트남전의 사진 이미지가 워낙에 강렬하기도 하고,

 또 인도인들은 이 상황의 당사자이다보니 다분히 복잡한 외부의 맥락들 속에서

 사진의 비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일단 한번 이렇게 두개의 사진 비교가 의미화 되면,

 그 이후에 어떤 설명도 처음의 시각적 문법을 뒤집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은 읽을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삼 시각적 문법의 즉각성과 의미 고착의 강력함을 깨달았다.

 

 여기서 딜레마는, 비록 내가 그러한 의도로 올린 것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철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인데, 

 굳이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목소리도 없었고,

 또한 당사자들이 아니라 외국인이니까 할 수 있는 비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성(?)을 추가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소심한 복수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개인적으로 사진이 불편한지에 대해 물어본 친구들에게는

 충분히 내 의도를 설명을 했고, 대부분은 내 의도를 이해하고,

 굳이 글을 내리거나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근데 그렇게 이야기 했던 그중 한명이 결국 뒷통수를 치는데...

 약 6년여간 알고지낸, 나름 친하다면 친한 친구녀석이 있는데,

 약간 힌두 민족주의 / 반중주의 / 친일(?!) 노선을 취하는 친구라,

 종종 힌두우파 테러리즘의 입장에 준하는 글을 보내주기도 하고,

 나는 나대로 질문도 하고, 다소 보편적인 차원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며,

 나름 그런면에서는 터울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친구가 구자라트 지역에서 이슬람 폭동의 역사가 담긴 글을 보내주며

 

 "너는 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테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뜻이니?"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은, 모든게 그들(이슬람)에게서 시작되었음은 잊어버리고,

  이슬람을 피해자로 포장하지."

 

 "지금 나보고 그 자유주의자라는 이야기?"

 

 "난 너의 정치성향은 몰라, 하지만 흰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고 말해야겠어"

 

 

  나한테 너무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냐는 물음에 결국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긴 했으나,

  

  이것은 분명 상기한 사진 비교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고, 인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준 친구이긴 한데,

  다른 인도 친구들과 교차검증을 해보면 편향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이런식으로 투정을 부릴거라면 관련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리를 좀 둘 필요가 있지 싶다.

 

 이상 나름 개인적으로 뿌듯한 발견에서, 시각 문법의 즉각적 독해에 놀라고, 그로 인해 소심한 복수까지 당한 이야기.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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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이제 곧 나가는 마당에, 한번만 참았어야 했나 싶지만,

 결국 참지못하고 터져버렸다. 제사상 앞에서 애꿎은 피아노를 걷어차며 거칠게 항변했다.

 

 "아버지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얼마전부터 빈도와 수위가 점점 더해지던 손주 타령.

 손녀들 앞에 두고 대가 끊기게 되어 조상볼 면목이 없다는 말에

 오늘은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덩달아 숨을 몰아쉬며 화를 내시던 아버지.

 

 돌이켜보면, 그 분노의 원인이 아들이 갑자기 격렬히 저항한 것도 있겠지만,

 하필 아들이 그렇게 무례하게 군 것이 조상들을 모신 제사상 앞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시고, 고위공무원까지 지내신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조상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단순히 예나, 효의 차원을 넘어

 말 그대로 종교적 의식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었다.

 아버지께 조상이라는 것은 이성을 넘어 원초적인 공포 혹은 운명을 좌우하는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나는 극단적인 이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질적인 인과율을 바탕으로 매사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져가며 결정하는 세계.

 그런 내게 조상이란, 무시하자니 관습과 사회에 맞서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너무도 크기에 적당히 따라줘야 할, 그리고 최근에 보자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적당한 효용성을 지닌 하나의 소재나, 재료일 뿐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다 화해의 제스쳐는 없었지만, 일은 그렇게 또 덮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가는 아들네를 공항까지 따라와 살갑게 맞아주셨고,

 출국장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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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주저리주저리 2019. 9. 11. 00:07

아마도 별 이변이 없으면 내년 초에 인도로 가서 약 4년을 보낼 예정.

 

처음 도전 했던 것이 2015년이니 약 4년 만에 바램을 이룬 셈.

 

막상 왜 인도일까 생각해보면 끌리는 데는 이유가 없다던가...

 

혹은 나름대로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던 것 같다.

 

40이 되기 전에 인생의 이정표를 한번쯤 틀어보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늦기는 했다. 

 

게다가 이정표가 돌려질 만큼의 계기가 될지 살짝 걱정도 되고..

 

아이들이야 어디서든 잘 적응한다지만, 아내에게는 살짝 미안한 마음도,

 

그리고 나나 아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이것 저것 알아보고 고민할 것들이 많아지네...

 

그래도 행복한 고민이겠거니....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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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린이 미술관 방문을 핑계로..(정작 아이들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아했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방문했다. 

(접근성이나, 주변 분위기나 난 여전히 서울관보다 과천관이 더 정이 간다..)

아이들 때문에 아내와 번갈아서..빠르게.. 전시를 훑었다...30분씩..--;

진행중인 전시는 <문명:우리가 사는 법>, <김중업 다이알로그>, <박이소:기록과 기억>.

규모나 방식으로 보아 셋다 꽤 신경 썼을 것 같은 전시였고,

프레임을 짜서 전시물을 공간에 띄운 배치는 과거에도 시도된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재미를 본 것인지 <문명:우리가 사는 법>, <김중업 다이알로그>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아니 전시와 관련은 있는 것이지만...

<문명:우리가 사는 법>은 8개의 주제를 두고 루즈하게 엮인 수백점의 사진이 전시된 형태인데...


전시의 내용을 떠나 한방 두드려 맞은 느낌이 들었던건 사진들의 유사성, 혹은 익명성 때문이었다.

상당수의 사진이 흔히 유형학적 사진으로 (이게 결코 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분류될법 했고,

약간 먼발치서 사진을 보면 그 방면의 거장들의 이름이 저절로 떠오르는..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여분, 사진 한장당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수초. 

아..이건 딱 누구 느낌이네? 아니네 모르는 사람이네..

이 사진은 같은 작가 사진인가? 아니네 다른 작가네..

사진 개개로 보면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또 내적인 외적인 형식적인 의미화가 분명 있겠지만,

수십/수백장이 모여진 이곳에서는, 그리고 수초만에 눈앞에서 스쳐가는 이곳에서는

철저히 동질성과 익명성에 가려진 구분되지 않는 사진들.


결국 스스로에게 다가온 물음.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이렇게 서로 구분되지 않는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내고 있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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