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 에이브럼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유는 영화도 뭔가 드라마 스럽게 = 스케일이 작게 만든다는 (근거없는?) 느낌 때문인데...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다크니스는 솔직히 말아먹었다고 생각이 들고...

스타워즈(그닥 좋아하진 않지만)도 초반 신경쓴 장면과 중 후반 빈티나보이는 장면들이 역시 거슬렸다..

(어디 창고 빌린 것 같은 반란군 기지는 좀...;;)

결국은 최근에 리붓 or 리메이크 하는 영화들에 대한 불만도 될 것 같은데,

원작만한 리메이크는 없다고들 하지만 20-30년전의 원작이 주는

'크다'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뭔가 작아진 느낌의 리붓 or 리메이크 작들 /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로보캅/토탈리콜/쥬라기월드 등등....

주로 SF들이군..-.- 흥미로운건 프로메테우스(에일리언)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안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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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초반에 1/2편의 오마쥬인듯한 장면까지만 딱..

캐스팅도 스케일도.. 2편을 넘어서지를 못하는구나...


시카리오

압도적인 영상과 사운드 - 영화의 몰입도는 최고.

하지만 알레한드로와 케이트의 감정선은 글쌔...


오토마타

하드보일드판 I-robot


루퍼

내가 나를 죽인다는 강렬한 설정 + 조셉고든레빗의 미친 존재감.

타임패러독스따위 무슨 상관이랴.


드레드

제발 2편이 나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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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출장온 김에 매일 영화 한편..


폭력의 역사 / The History of Violence, 2005

제목이나 평점만 보고 대작일 줄 알았는데..생각보다는 소작이었다..

비고 모텐슨의 이중인격 연기는 빛났지만..

글쌔.. 평범하게 살고 싶은 킬러와 가족애라는 설정은...

크로넨버그의 이름값에 비하면 다소..?

원작이 그래픽 노블인듯 한데.. 짧은 단편 코믹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가는 측면이...


레퀴엠 포 드림 / Requiem for Dream, 2000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문제작.

욕망의 종착지는 예정된 파국.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생략한 대담한 연출과 

비디오아트의 영역을 넘보는 음악/영상/편집...

이것이 바로 21세기 영화다.


케빈에 대하여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영화.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생각해보게 되지만 곧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틸다 스윈튼의 폭넓은 연기와 에즈라 밀러의 서늘한 연기는

부모 자식 관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다만 마지막에 케빈의 변화된 태도는 왜 갑자기? 라는 물음표가...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The Fall, 2008

타셈 싱 감독의 <더 셀>의 화려한 데뷔와 그 이후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한사람으로서...

감독의 특기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2시간 동안 세계 곳곳의 절경을 보여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솔직히 저기가 어딜까 생각해보느라 더 집중이 안되기도 했다.)

빈약한 상상력을 영상미-하지만 어디서 본듯-다소 상투적인-로 채우다보니

시종일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영화.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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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큰 이름이 되어버린 대런 아로노프스키.

시각적으로 말하자면 천년을 흐르는 사랑의 연장선 상에 있는듯 한 영화.

대중을 상대로 한 블록버스터가 아니었다면 마지막 10분은 저렇게 타협하지 않았을 것 같다.

노아로 분한 러셀크로의 완고한 모습을 보며 인간의 신념과 대답하지 않는 신,

그리고 아버지, 가족의 '원형'에 대해 생각해보다.

시대가 지나고, 세상이 다시 시작해도 인간은 그렇게 살아간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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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영화 보기는 힘들듯 하여, 마지막 호사를..


■ 유로파 리포트 (Europa Report, 2013)

-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대한 훌륭한 오마쥬.

  다만 뭐든지 다 까발려야 직성이 풀리는 촌스러운 할리우드식 촉수 괴물은 안습.


■ 데자 뷰(Deja vu, 2007)

- 전형적인 타임 패러독스 영화. 사실 진정한 의미의 기시감을 기대했는데..

  역시 할리우드식 친절한 SF. 시간 여행 영화는 깊게 생각하지 말자!


■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

- 데자뷰는 토니스콧, 카운슬러는 리들리 스콧.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시작해서 <더 로드>를 거쳐...코맥 맥카시는 정말 나랑 안맞는듯.

  엘리트 출신 주인공이 어둠의 세계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에서 자꾸 내 모습이 떠올랐다.


■ World War Z, 2013

 - 용두사미.

■ Inside Liewyn Davis, 2013

 -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코언 형제의 영화는 잘 모르겠다.

   그런걸 알고 있어서 상당히 각오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10분 정도면 기승전결이나 인물에 대한 '감'을 잡아야 집중이 되는데..

   위의 영화들은 뭔가 기대하는 바를 계속 어긋난다(내 감상법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게다가 인물들의 성격이나 처지에 대한 공감이 쉽게 되지 않는다.

   영화가 무얼 말하려는지는 알겠는데, 그걸 꼭 이렇게 풀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듬.

   솔직히 내 자신이 많이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인데,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아서...

■ The man from Earth, 2010

  흥미롭게 시작해서 마지막 절반을 종교 이야기에 쏟아붓는건 좀 아쉬웠다.

  지성의 상징인 교수들의 의심과 고집, 그리고 믿음도 결국 노인네들의 고집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종교 이야기보다 훨씬 흥미롭게 다가왔다.

 ■ Cloud Atlas, 2012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Fountain>의 대서사 버젼이랄까...

   캐스팅 굿, 영상 굿, 각각의 스토리 굿...

   다만 스토리간의 개연성이 한번에 들어오지 않아 좀 아쉽다.

   불친절한듯 친절해서 보다가 자존심이 상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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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낙원상가에 위치한 허리우드 극장, 종로 극장가의 몰락, 멀티플렉스의 번성과 함께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서울아트시네마, 실버상영관으로 운영하고 있나보다. 벌써 9주년이라 하여 기념 영화제가 열렸다.
어렵사리 구해놓기는 했으나, 도저히 리스닝이 되지 않아 보지 못하고 있던 스티브 맥퀸의 <Hunger>를 상영한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예매를 했다.

 영화는 IRA의 일원인 보비 샌즈의 옥중 단식 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배경음악까지 자제해가며 펼치는 긴 호흡의 영상,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만큼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반드시 객관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건조하고, 중립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화면 하나하나, 그리고 음향까지도 대단히 함축적인 의미와
상징들을 보여주는데, 메마른 분위기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관객에게 강렬한 느낌을 던져준다.

 표면적으론 IRA-북아일랜드와 영국의 정치적인 갈등과, 투쟁을 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남자의 '신념'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자그마치 30분에 가까운 대화신으로 담아낸
주인공과 목사의 대화에서 그 의도를 드러낸다. 신념, 투쟁, 그리고 죽음의 선택의 문제는,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신념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비 샌즈는 대화중에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게 된다.

 이후 영화는 분위기를 바꾸어 다소 (앞서에 비하면) 서정적으로  단식투쟁과 주인공의 내면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긴 단식으로 살과, 근육과, 신체의 기관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청력을 잃어 친구의 대화가 '웅웅'대는 소리로
들리게 되는 그 순간은, 이미 주인공의 투쟁이 외적 요인에 대한 것들을 넘어 내적인 투쟁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묵묵히 주인공의 투쟁을 바라보는 가족들과, 그런 가족들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주인공.
과연 그는 그 순간에 자신의 신념과 투쟁, 죽음의 선택에 대해 어떠한 고뇌를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러한 신념에 대한 믿음으로 일말의 고뇌조차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흘러내린 한줄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희열, 안도, 후회..아니면 이 모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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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모아놓고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포스팅이 밀리고 있다.

이발을 해야지 결심한지가 3주가 넘었지만, 연말이라 이래저래 정신없이 지나다보니,

여전히 머리는 덥수룩 하다.

 

쌓여있는 포스팅을 영원히 묻어두기는 아깝고, 밀어내는 차원에서 그간 본 영화들에 대한 촌평 몇마디.

 

우선  경쾌한 좀비 영화 두편. 두 편 모두 좀비가 무섭다기 보다는 불쌍할 정도로 무능력하게 묘사되고 있다.

하기사, 그래서 조지로메로는 <랜드 오브 더 데드>에서 좀비에 빗대어 디트로이트의 노동자들을 묘사했던가.

하나, 아래 소개할 두 영화 모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며 볼 영화는 아니다.

 

<좀비랜드> - 우디 해럴슨의 능청스런 카우보이 연기가 포인트. 빌 머레이도 카메오 출연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이경규쯤 되려나, 미국 사람들은 많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경쾌한 전개와 위트, 그리고 일탈의 대리만족으로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영화. 살짝 상처입은 네 영혼들의 경쾌한 좀비나라 생존기.

 

<도그하우스> - 여자만 좀비가 되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뛰어든 7명의 장년남. 내심 여성들의 통쾌한 복수가 이어질까 기대했었지만, 왠걸 영화는 남자들이 얼마나 어린애들 같은지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을 뿐. 여자 좀비들을 상대로 보이스카웃 놀이에 정신이 팔린 철없는 남자들. 그래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철이 안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재난영화의 대부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를 감상.
흑인 대통령과,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가 아프리카 희망곶이라는 데서,
아프리칸 흑인 파워의 성장이 우선 느껴지고..(일단 등장하는 흑인은 모두 착하다!)
중국의 성장과 티벳은 중국이라는 암시도 은연중 하는 것 같다.
한국은 등장도 안하고....
물론 제작사가 컬럼비아 픽쳐스(소니)인 탓도....
2시간 40분은 다소 지루했다.

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우디해럴슨은 역시나 반갑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결혼 때가 다가와서일까...심하게 공감되는....

약속시간을 때우려고 보던 중이라 끝에 20분 가량을 보지 못했는데,

심히 궁금하다.

<팬도럼>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지구인들의 대규모 집단 이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생각난다.

믿었던 선장(?)이 악마라는 컨셉은 <이벤트 호라이즌>의 샘 닐을 연상시키는데,

아무래도 본격 호러물이 아닌 이상 샘 닐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충분히 흥미 있었고, 괜찮았던 구성의 영화.

SF소설 <매로우>(하드  SF르네상스1 수록)도 떠오른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조지 R. R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에서 주인공들이 찾는 항성간 이동 생명체 "볼크린"이

새 지구를 찾아 우주를 수천년 여행하는 <파피용>이었다..라는...

<나이트플라이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포스팅할 예정.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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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트릭트9> 이라는 신선한(?) 작품 덕에, 브루스윌리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관심밖으로 밀려난 <써로게이트>. 금요일 저녁 6시 30분 타임, 영통 메가박스에서 가장 큰 M관 상영중이었지만, 나를 포함 딱 2명이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렇게 극장을 전세 냈던 적은 5년전 <에일리언 2020, Pitch Black (빈 디젤이 본격적으로 액션 배우로 나선 영화)>을 조조로 4명이서 관람했던 이후로 가장 적은 숫자.

 

 

 영화는 인간에 의해 조종되긴 하지만, 인간을 대체할만큼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진 로봇, "써로게이트"-영어로는 대리, 대행자, 라는  뜻이다-가 실용화된 근 미래를 그리고 있다. 사람이 집에 누워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생각만 하면, 로봇이 실제 사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사람처럼 아프지도 않고, 외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혹은 원한다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도 가능하니, 너도 나도 "써로게이트"로 자신을 대신할 "대리인"을 원할 것은 자명한 사실. 이로 해서 전 세계의 99%의 사람들이 "써로게이트"를 이용하고, 덕분에 범죄도, 차별도, 사고도 사라진 유토피아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방구석에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로봇 조종이나 하는 인간미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나를 대신하는 "가상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다크시티>, <엑시스턴즈>, <13층>, <너바나>...그리고 결정적으로 <매트릭스>까지 여러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재면에서는 다소 진부한 것도 사실이지만, "써로게이트"들의 매끈한 고무피부, 약간 어색한 움직임, 써로게이트 충전소, 써로게이트들 사이를 맨몸으로 지날때의 현기증의 표현 등등 영화의 디테일은 진부한 소재를 넘어 눈을 즐겁게 해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들의 행동보다도, 영화의 설정들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큰 줄기는 "내가 원하는 나를 이루어줄 수 있는 <가상의 나>가 생긴다면, 정말 범죄도, 차별도 사라지는 멋진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써로게이트들의 모니터링과 통제 등에 따른 인권침해를 보여주긴 하지만, 써로게이트 자체는 살과 살이 닿는 인간적인 측면-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부관계-의 약점을 제외하면 무척 긍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영화에서와는 다른 "디스토피아"가 떠오르는데, 두어가지만 짚어보려한다.

 

1. 빈부의 격차, 그리고 차별은 써로게이트로 해서 심해질 것이다.

 써로게이트는 상품이다.(영화에서는 VSI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즉, 부유한 사람은 비싸고 좋은 모델을 살터이고, 가난한 이들을 어쩌면 구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가격의 제품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구입하더라도, 비싸고 좋은 모델과 확실히 구별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리고 비싸고 좋은 능력의 써로게이트로 해서 처리하는 일의 양이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수준이 달라진다면, 저급 모델을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점점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사람을 판단하는 모든 척도는 "얼마나 좋은 써로게이트"를 가졌느냐가 될 것이다.

 

2. 범죄는 증가할 것이다.

 모든이들이 써로게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살인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내리쳐도, 부서지는 것은 상대방의 로봇일 뿐, 몇푼 물어주고 말자며, 상대방의 써로게이트를 파괴하는 행위가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익명의 공간-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공격성을 볼 때, 써로게이트 뒤에서도 역시 유사한 공격적인 성향이 증가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3. 강력한 감시와 통제 체계가 구축될 것이다.

 영화에서도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써로게이트의 모든 영상과 기능을 중앙에서 관리할 수 있다면, 그 감시와 통제는 오늘날의 CCTV니, 핸드폰감청이니 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아마 써로게이트로 보내지는 영상이나 소리를 컨트롤 해서 사용자에게 무의식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조차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적다보니 영화보다 개인적인 "썰"이 길었다. 이제는 컴퓨터, 핸드폰, 각종 모바일 기기등이 없는 삶을 하루도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불과 20-30년전에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상이다. 어린시절 공상과학소설 속의 멋진 광경들을 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된 오늘, 과연 나는 그것들로 인해서 행복한 것일까. 그리고 20년, 30년이지나, 써로게이트의 세상이 다가 왔을 때,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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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01> SF라는 소리에 솔깃해서 네이버 평점을 보니 5점대... 뭔가 심각하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SF니까..봤다. 감독 "마르크 카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있다. 응? 두 영화는 장-피에르 주네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하시다가 독립하셨나? 한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 모두

감독에 장-피에르 주네와 마르크 카로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있다. 알아보니, 마르크 카로는

만화 및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었고, 영화에서는 주로 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장-피에르 주네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분업체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 카로가 홀로 감독에 나섰을 때에는, 내러티브에서 뭔가 부족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데... 예상대로,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ㅡㅡ;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아마도 예산부족

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없었으리라...)에서 분위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약한 이야기를 난해한 영상들로 채워넣다보니, 꾸벅꾸벅 졸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줄거리에서나, 후반부 영상에서나 대니보일 감독의 <선샤인>과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왜 굳이 블로그에까지 소개를 하느냐..하면...

사실, 보면서 10여년전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고,

최고의 3D 영상을 만들어 보겠어 라던 때가 있었다. 당시는 3D 컴퓨터 그래픽이 일반화되지 않던 때라,

모니터 안에서 가상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요새는 그래픽 영상들이 일반화 되면서 3D그래픽은 말 그대로 3D 업종으로 분류가 되는듯..)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을 구실삼은 이유들로 해서 3D 그래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1인 단편 영화를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스토리를 짜놓았는데,

<단테01>을 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스토리를 떠올렸다.

 

 스토리의 이름은 <S.E.E.D>...Search for Earth...어쩌구의 약자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당시 나우누리 SF동호회의 단편 소설 <십자호의 최후>나,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책을 구해서

 보고 싶은데, 보지는 못했고, 우주선의 추진 원리등을 참조..)를 참조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스토리이다.

 

<단테01>을 보면서 십자형태의 우주선, 테라포밍, 빡빡머리 죄수, 살신성인(?)등 여러부분에서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생각들을 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영상을 옮길 의지까지 닮았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나의 의지(?)가..마르크 카로의

그것만큼 대단하지 못하다는게 문제이지만..^^;

(위의 <단테01>의 이미지와  아래 동영상을 비교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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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2001년 9월 11일 100여층짜리 고층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장관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주변의 반응은
무척이나 상이했던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누군가는 미국이 희생한 수만명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며 통쾌했다. 나와 친구들도 각 입장을 두고
격한 감정 싸움을 벌인 기억이 있다. 미국 시민이었다면 일단은 무조건 전자의 입장을 취해야 했겠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에, 미국을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이 그때처럼 극명하게
교차했던 적도 없었다.

 사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헐리우드도 시류를 타서, [왜 적들은 우리를 미워하나?]를 묻는 영화들을 대거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스티브 개건이 감독하고, 조지클루니가 열연한 <시리아나, Syriana 2005> 가 있고,
소위 '헐리웃 공식'과 이러한 주제를 접목시키는 영화들, 에드워드 즈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제이미 폭스가 열연한 <킹덤, The Kingdom, 2007>등이 개봉했고,  굳이 이들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많은 영화들에서도,
중동 및 이슬람권을 분쟁 지역-미국에 적대적인-의 코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아이언 맨, Iron Man, 2008>에서도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다)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하는 헐리우드 답게, 영화에 절묘하게 녹여낸 [미국의 적] 코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 세게를 누비며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추상적인 선/악 구도를 제시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미국'의 입장들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까닭에, 미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냉정한 시선의 차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편, 여전히 상당수 중동 및 이슬람권 국가들은 미국 영화의 수입과 상영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예루살렘 쟁탈전을 소재로 화해의 메세지를 전달한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은 많은 중동국가들에서 상영이 허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하 소개할 영화 <트레이터, Traitor, 2008>와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역시 위에서 소개한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이며, 영화의 시선이 미국인들에게로 향할때와, 미국 밖의 사람들(여기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로
향할 때 발견되는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하다.


트레이터(Traitor, 2008)
감독 : 제프리 나크마노프
출연 : 가이 피어스, 돈 치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버스테러를 계획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테러를 저지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폭탄전문가, 돈 치들)의 이중간첩 스릴러.
많은 이중간첩물이 그러하듯, 성공적인 침투를 위해 주인공은 아군에서도 소수에게만 알려진 극비의 존재이며,
그의 존재를 아는 소수가 그를 배신하거나, 죽임을 당함으로서, 결국 주인공 스스로 양쪽 모두의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는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이중간첩]플롯에 [미국의 적]코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 미정부 요원들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복수를 위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타락한 인물, 혹은 지나치게
순진해서 고뇌따위는 없는 단선적인 인물들로 그려지며, 주인공을 비호하는 미 정부 요원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소수 인명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서 영화가 취하는 시각은 주인공을 둘러싼 양쪽 인물들을 제거해(죽여)버림으로서, "그 어느쪽도 답이 아니다"
라는 양비론을 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손에 묻힌 피는 정당화 되고, 미국은 다시 한번 (테러를 막음으로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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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주인공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인명을 살상하는 방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는 이슬람 율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를 역설하며, 이러한 고뇌속에서 주인공은 이슬람 성자인 동시에, 미국의 수호성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다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역설되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을 벗어나 설득력이 있는지 살펴볼 일인데,
애초에 주인공은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미국 국적에,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아버지의 죽음도, 미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은
 출신과 믿는 종교에서 [미국의 적]들과 공통될 뿐이지, 미국에 대해 하등의 복수심 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아프리카계 이슬람교인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주인공에게 "동족"이라는 개념은 단지 이슬람 신앙으로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범위로 보이며,
애초에 위처럼 나이브한 결론을 내리고 미국을 구원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리라고 본다.

 결국 영화는 애초에 고뇌따위 할필요가 없는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그럴듯한 갈등과 스토리로,
[미국의 적]들에게 평화의 메세지를 역설하기에 다름 아니고, 이것이 '미국産-미制'가 갖는 한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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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다만 영화가 갖는 소기의 성과라면,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 시민인 주인공에게,
FBI요원인 가이 피어스의 입을 빌어 "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라고 인정하는 것 정도랄까?
이부분은 묘하게 오바마 미 대통령이 떠오른다.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감독 : 폴 해기스
출연 :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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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인종문제를 다룬 <크래시, Crash, 2004>의 폴 해기스 감독이 이번에는 이라크전을 치룬
미국 젊은이들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엘라의 계곡"의 은유는
전쟁(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적에 맞섰던 한명 한명의 미국 젊은이(다윗)로 풀이된다.
전쟁에서 승리했고, 살아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상처는, 되돌아 온 평온한 현실에서
그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겁고, 견디기 힘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지를 영화는 묻고 있다.

 다만 지금 리뷰를 작성하는 관객이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데, 미국 주변의 국가들이 느끼기에, 미국 젊은이들은 "다윗"
이라기 보다는 "골리앗"이고, 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국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타국 사람들의 숫자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가 휘두른 폭력과
그 국가에 속한 개인의 희생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영화는 무고한 미국의 '개인'
들이 '무엇을 위해서(석유든, 후세인이든, 화학무기든 간에)' 부조리하게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최소한의 설명을 했어야 했다.

 즉, 영화는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왜?"에 대한 해명은 없고, "희생"에 대한 강조만 하고 있기에
, 제3자인 한국의 검은머리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마도 이같은 사정을 고려했기에, 국내에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라크전을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내에서도 거듭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수지안맞는 이라크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09195 )

 토미 리 존스의 절절한 부정 연기와 여전사에서 돌아와 간만에 열연을 펼치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드라마로서는 훌륭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머나먼 타국의 관객에게 설득하기엔,
미국에 대한 애증의 골이 너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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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린 성조기마냥 미국은 총체적 난국이여..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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