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달여의 한국일정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간다.

가족들은 좀 더 한국에서 볼일을 보기로 하고 혼자 돌아가는 여정에 부여받은 임무는 '책'

수하물 23kg 3개와 기내가방, 그리고 백팩까지 아이들 책으로 가득 채웠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도는 한적한 출국장에서 

공항 라운지를 무료 입장하여 홀로 즐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인도로 돌아간다는 긴장 때문인지 아릿한 아랫배를 의식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끼니를 하고

1시간 반여를 무엇으로 때울까 하다 가방 속의 책을 끄집어 냈다.

 

'The Giver(기억전달자)'

 

동명의 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딱히 블로그에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을 보면,

크게 임팩트는 없었던 모양이다.

 

책은 모든 것이 동질해진 미래의 어떤 사회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생의 시작에서 죽음까지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고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12세가 되면 본인의 적성에 따라 정해진 직군을 배속받는다.

직업을 배정하는 의식은 공동체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행사로 여겨지는데,

주인공 조너선은 무슨 일인지 직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을 느낀다.

 

탑승시간까지는 20여분 남았지만, 라운지에서 게이트까지 제법 거리가 있던 걸 기억해서

여유있게 라운지를 나서기로 했다. 텅빈 라운지에 교대로 식사를 하는 종업원들을 뒤로하고,

리셉션의 안내원에게 목례를 하고 라운지를 나섰다. 

기내용 가방에 책이 제법 묵직하게 든 탓에 끌면서 손잡이가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손목도 비틀리면서 아파오는 지라 무빙워크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갔다.

내 뒤에 한눈에보아도 가방이 통통 튈만큼 가벼워보이는 사내가 있었는데, 나를 의식해서인지

무빙워크뒤에 한참을 서있다가, 이윽고 종종걸음으로 추월해갔다.  

 기종은 A350 neo, 좌석은 10D. 기내가방을 위로 올리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듯 올리려 했으나,

아무래도 힘들어보였던 모양인지, 승무원이 도와주려 손을 댔다가 깜짝 놀라 눈이 마주쳤다.

겸연쩍인 미소를 지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채 -그러면서 최대한 힘을주어- 선반을 닫았다.

  인도로 가는 길은 올때와 다르게 승무원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기내식까지 서비스를 해주었다.

 기내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라운지에서 요기를 했건만, 주는걸 다 먹자니 아랫배가 불편해서

 기내식을 조금 남겼다. 

 아침에 콜밴을 타고 공항에 올땐 공항고속도에서 그렇게 졸리더니, 막상 비행기에선 피곤한듯 하면서

 딱히 눈붙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포드 vs 페라리>를 시청하고 멍하니 기내 모니터의 지도를 쳐다보다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예상했겠지만, 그리고 영화를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조너선은 "기억 보유자"가 되어 선대 기억보유자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전달받아 기억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된다. 색과 소리, 음악에 대한 기억이 책에서 흥미롭게

나타나는데, 책속의 사회에서는 모든 차이를 부정하여 '색'과 '음'에 대한 개념을 지워버렸다. 조너선은 색에 대한

기억을 전수받고 나서야(그 이전에도 조금씩 보기는 했지만) 비로소 세상에 채워진 색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문득 아내와 잠깐 논쟁했었던 '문자매체' vs '시각매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영화 <Tenet>을 아내에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고, 시간의 역행과 순행의 합맞춤은 시각매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역설했고,

아내는 책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더랬다. 색을 볼 수 없는 세상이라니, 그리고 그 안에서

부분적으로 색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이라니, 책은 참 쉽다. "모든 색이 동일하게 보이는 세상" 한마디면

그 복잡한 것들이 설명되어버리니 말이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상상하며 글을 적어내렸을지,

아니면 개념적으로 색이 없는 세상을 선언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눈을 뜬자는, 언제나 그렇듯 체제를 거부한다. 조너선과 선대 기억 전달자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그리고 늘 있어왔지만 그들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기억전달자가 기억을 갖고 사라져야 그 기억이 공동체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으로,

조너선은 급히 새로운 세계-아니 계획된 세계의 테두리 밖-로 나아간다.

 

비행기위 현위치를 표시하는 지도를 보니  낯설은 그러나 낯익은 지명들이 스쳐간다. "Viz..", "Bogu.."

그렇게 큰 도시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지명을 표시해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이 주는 느낌은 분명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가 싶어 화장실에서 씨름을 해보았지만 별 성과는 없다.

책을 덮고 문득 인도의 '집'에 돌아가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올려보는데,

집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수가 없다. 

승무원들은 귀항편을 대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과 고글로 둘러싸고

흡사 외계로 향하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뱅갈루루에서 하이데라바드까지는 사정이 있어 회사 출장자(인도인)들과 함께 밤새 버스를 타야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쉬고 업무를 보고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고국 땅에 돌아와 마음이 푸근해보이는 현지인 친구들. 저녁을 먹고 가겠다 하여 한시간 남짓 출발이 늦어졌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어스름한 저녁 풍경. 왔구나 싶지만 또 낯설은 풍경들.

한국에서도 그랬더랬다. 그랬었나, 이랬었나 하는.

 

문득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말을 건내 본다.

 

"한국에서도 내집이 아니라, 여행으로 다니다보니 편하지 않았고,

막상 인도에와서 보니 내 집이 잘 떠오르지 않아, 집에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 세상에 내 집은 없는 느낌이네, 어디에도 속한 것 같지 않아"

 

알아들은 것인지, 자기 하고 싶은말만 하는지 다소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한국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저녁을 직접 해먹을 수 있어서 아주 편하게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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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newyorker.com/magazine/2020/01/13/the-equality-conundrum

 

The Equality Conundrum

We all agree that inequality is bad. But what kind of equality is good?

www.newyorker.com

좋은 글.

 

번역본은 newspeppermint.com/2020/05/07/m-equality1/

 

평등이라는 수수께끼(1/3)

마이클과 안젤라 부부는 이제 쉰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지인 중 두 명이 암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이를 지켜본 부부는 아이들에게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할지 �

newspepperm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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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딘 맥커린|그림 데이비드 파킨스|역자 최인자|웅진주니어 |2006.09.28

원제 Gilgamesh the hero

페이지 142|ISBN 9788901060415|판형 A4, 210*297mm

 

멀리 나오다보니, 아이들 읽을 책이 꽤 광범위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아이들이 지금 당장 읽을 책부터 꽤 나이가 찬 이후에 읽을 책까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장장 150여권을 구입했더랬다. (덕분에 플래티늄 회원됨...)

 

그중에 하나가 웅진에서 나온 길가메시였는데,

큰 딸이 신화를(그리스 로마신화지만..) 꽤 좋아하기도 하고,

길가메시를 소재로한 재창작물로는 자주 접했으나, 길가메시의 원래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기에, 나도 읽어볼 겸 해서 책을 골랐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길가메시 서사시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글밥이나, 내용이 거의 어른들용이라고 해도 무방할 수준이었고,

원전의 문학성과 더불어 책 자체의 혹은 번역의 문학적 퀄리티가 상당한 듯하다.

 

읽고 난 느낌은.. 인류 최초의 서사시에서 인류 마지막 서사시를 쓴 느낌이랄까.. 

초월적인 영웅에서 필멸을 면하고자 발버둥치는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리고 죽음에서의 귀환 후 삶의 의미를 깨닫는 그 과정이 너무도 생생하여

수천년전의 사람들도 삶에 대해 벌써 이런 깨달음을 이야기 하고 있구나 하는

숙연한 기분마져 들었다.

 

내가 먼저 눈으로 한번 읽고, 아이가 읽어달라고 해서 다시 한번 읽고 있는데,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나누는 대화 사이사이의 복선에 목덜미가 쭈뼛하다.

 

"죽을지도 몰라"

 

"설마 둘에게 모두 나쁜 일이 생기기야 하겠나"

 

<죽음>이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과연 길가메시는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지,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한 원전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 그러고보니 여기 힌두의 신들의 이야기도 한번 찾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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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석형에게 소개받은 사진잡지(아티스트북) BLINK.
김아람씨가 1인 발행하는 독립매거진.
A4 크기의 전시장이라는 컨셉답게 사진 한장한장 뚫어져라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에 아직 널리 소개되지 않은 해외작가들 위주라 신선한 느낌도...

카메라를 손에 쥔 사람으로서의 개인적인 한줄 평을 하라면...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책..이랄까.






독립 매거진  블링크 홈페이지 : http://www.blinkreflex.com/

 덧. 매거진 형식이지만 정기간행물(ISSN)이 아닌 단행본(ISBN)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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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을 꾸미면서, 집에 있던 책들을 가져와 책꽂이에 옮겨보았는데....

이런..나름 꾸준히 책을 본다고 생각했었는데..책장이 너무 횡하다.....

뭐 꼭 책장을 채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정말?) 헌책방에 들른지도

제법 오래 된듯 하여 낙성대 뿌리 서점에 들렀다.

 

간만의 방문이라 마음에 드는 책이 제법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으나...

우선순위 1순위로 두고 사는 '눈빛'사 책들은 한 권도 없었고,

한참을 뒤적여서 살까 말까 망설여지는 책들만 조금 있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꼭 책장을 채우겠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결국 이것저것 17000원어치를 구입했는데...

 

하룻밤의 지식 여행 시리즈 - <롤랑바르트>, 김영사

같은 시리즈로 <데리다>, <라캉>, <포스트페미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등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쉽게 풀어놓은 책이긴 하지만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는 책.

 

<미학입문> - 죠지 딕키 지음, 오병남 황유경 옮김, 서광사

살까 말까 정말 고민을 했던 책이다. 자그마치 출간년도가 1980년도,

 한자어 뒤에 독음도 없다. 철학자들 별로 예술에 대한 관점이 나열된 것 같아서 일단 구입.

 

<기계시대의 미학>, 열화당

페르낭 레제 평전이다. 페르낭 레제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말미에 페르낭 레제의 논문

<기계시대의 미학>이 수록되어있다. 예술가들의 글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무의식의 분석>, 칼 구스타프 융 외, 흥신문화사.

흥신문화사 서적들이 필수(?) 인문 교양 서적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요즘 무의식에 대해 관심이 좀 생겨서 일단 구입.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칸딘스키, 열화당

칸딘스키의 유명한 글. 지금의 관점에서라면 아마도

버럭버럭 말도 안돼! 를 외치며 읽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일전에 <사진의 독재>에 인용된 칸딘스키의 글-예술의 무의미에 대한 긍정?-을 보고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니체의 눈으로 다빈치를 읽다>, 사카이 다케시, 개마고원

사실 이토우 도시하루의 <사진과 회화>, 일본에서 번역되고, 다시 한역된 존 버거의 <이미지> 등에서

나타나는 왠지 모를 '주류(영미권)를 거스르는 듯한' 느낌 때문에 옆나라 출신 서적들에 대해서는

다소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처럼 명징한 서적들도 있다)

다른건 모르겠고 바타이유가 제법 등장하는듯 하여(요새 무의식과 더불어 바타이유에도 관심이 생겼다)

 일단 구입.(저자가 바타이유 전공이란다), 그러고보니 요새 짜라투스트라도 읽고 있어서--;

니체에 솔깃했던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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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달 전쯤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책. "눈빛"출판사 책이라면 일단 득템했다고 생각하고 모으는 중.

 

첫장을 넘겨 보이는 저자의 프로필이 심상치가 않다. 1955년출생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해서,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부(사진영상), 파리1대학 미학대학원(사진미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지금쯤 한자리 하고 있을 법도 한 경력인데, 최근에야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이긴 하지만, 도통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고 해서, 찾아봤다.

 

 <유럽의 괴짜박물관(2009)>,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2008)>,

 <사진 속의 세상살이(2007)>

<앨범사진 1920-70(2007)>,

<이라크 견문록(2006)>,

<사랑의 이미지(2005)>,

......

 

학술활동보다는 세계 이곳 저곳으로 다니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책의 제목으로 봐서 전문적이기 보다는 대중적인 부분에 역점을 두는 듯 하다. 본 책 <사진 이미지의 안과 밖> 역시 전반적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진 느낌이 강하다.

 

서문에 적혀 있듯, <사진 이미지의 안과 밖>은 크게 4개의 파트로 구분되는데,

 

1부 - 사진이미지의 특성

2부 -  작가론

3부 - 대중적 이미지의 신화적 성격

4부 - 사진의 역사에 관련한 글

 

1부에서는 기념 사진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고찰, 사진을 둘러싼 여백의 의미, 그리고 사진에 담기는 도시적(아마도 현대 사진의 한 경향인 일상성의 맥락에서) 풍경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고 있다.

 

2부에서는 성두경, 김기찬, 배병우, 전미숙, 앗제, 로베르 두아노, 신디셔먼, 매이플소프, 등의 작가론을 담고 있다.

 

3부에서는 비디오 촬영과, 텔레비젼 등의 동영상이 사진과 비교되는 대중적 속성을 살피고, 세간의 화제였던 플레이보이 모델 노랑나비 이승희를 화두로 누드 사진-예술의 대중적 신화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미술시장의 논리와 사진의 속성인 복제가 빚는 아이러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부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사진 및,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사진예술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글은 전반적으로 편하게 읽혔고, (물론, 편한 와중에서도, 나의 앎이 부족하기에 놓치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편한 반면,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김기찬의 작가론에서 "물건의 세계에 위계질서가 있다면 아마 가장 밑바닥을 차지할 것들...(중략)...문득 인간의 세계에 쳐들어와 제자리를 찾겠다고 시위중인 것 같기도 하다."와 같이 감상적, 혹은 수필적인 문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글의 성격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저자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 작가론은 "의뢰받은 글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글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에 씌여진 1999년 당시의 사진의 문화와 기술(tech)적인 부분들이, 약 10년여가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상당부분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사진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초상화가 서서히 세를 확장하고 있다고 언급되고 있지만, 현재 초상화는 딱히 세를 갖추지 못한 것 같고, 당시 센세이션이었던 노랑나비 이승희의 누드 화보는 너도나도 벗어대는 연예인 누드 화보 덕분에 더 이상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또한 본문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기념 사진이 갖는 "시간의 죽음"에의 엄숙함은 오늘날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으며, 주사선과 도트로 구성된 제한된 해상도의 비디오, 텔레비전 영상, 그리고 그에 비교되는 은염결정체인 사진은 초고해상도의 HDTV와 디지털 카메라의 보편화로 인해 더이상 구분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득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세기말에 쓰는 사진론". 세기가 바뀌고 10년이 지난 오늘의 변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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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리차드볼턴 | 김우룡 역
도서출판 눈빛



 흔히 '소통' 또는 '참여'로 이야기 되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맺음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많은 예술관련 비평서들이 그 관계맺음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 모더니즘(즉, 자기지시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의 맹위는 유효하다.


 단시간내에 예술사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한 '사진'의 경우도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까닭.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업이 '예술'과 구분되기를 바라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의미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위의 질문-사진과 사회의 '관계맺음'에 대한 비평들의 모음이다.
 20세기 사진 비평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의미의 경쟁>은 사진이 미술관을 통해서
모더니즘 미학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예술 장르의 사진에 국한하지 않고,
광고, 언론, 다큐멘터리, 근대 경찰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어떻게 이용되어 왔으며,
그 사진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사적인 담론들과 과연 사진이 표방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상당수가 논문으로 발표된 까닭에 쉽게 읽히는 글들이 아니며, 특히 동성애나, 중남미 혁명에
관한 글들은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해서 다소 접근이 난해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글들이 짚어내는 사진의 역사적, 계급적, 문화적 맥락과 날카로운 비평들은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의 끈기와 인내에 충분히 보답을 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비교적 매끄러운 번역도 그 공로를 기릴 필요가 있다!)

 - 목차 -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사진 인식 / 더글라스 크림프
-사진을 판결하는 자리 -뉴욕 현다미술관 / 크리스토퍼 필립스
(*스티글리츠와 사코우스키의 대결이 볼만하다)
-팩투라로부터 팩토그래피로 -사진에 있어서의 러시아 형식주의 / 벤저민 H.D. 부크로
(*서구 사진사에 밀려 역사속에 묻혀진 러시아 사진을 재조명하는 글로
  '생산주의'-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시각예술의 무장 해제: 무기로부터 스타일로 변천해 간 급진적 형식주의 / 애비게일 솔로몬-고도우

사진은 성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 무엇이 전설을 만들었나: 짧고 슬픈 다이안 아버스의 삶 / 캐슬린 로드
- 어머니로서의 자연, 그리고 말보로 맨: 풍경사진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한 탐구 / 데보라 브라이트
- 그래픽을 통해 본 욕망의 우선 순위: 중산층 여성지의 현대화, 1919-1939 / 샐리 스타인
- 동성애의 맥락: 소수집단의 자기 표현에 관한 문제들 / 잔 지타 그로버

사진은 어떻게 국가와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 기업 연감과 사진 / 캐롤 스콰이어즈
- 드러난 이데올로기와 숨은 이데올로기: 혁명의 두 이미지 / 에스터 패라다
- 미국 동부에서: 리차드 아베든 주식회사
(*최근 상업 사진가들의 예술사진 및 다큐 사진계의 진출이 활발한 우리의 현실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듯한 글!)

사진적 진실의 정치학은 무엇인가
- 사진의 담론 공간들 / 로잘린드 크라우스
(*앗제의 사진은 과연 어떠한 진실을 담고 있는가?)
- 다큐멘터리 사진론: 그 속에서, 그 주변에서, 그리고 그 후에 / 마사 로슬러
(*다큐-타인의 삶을 담는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담론 속에서 움직이는가!)
- 몸과 아카이브 / 앨런 세큘러
(*초기 사진사에서 가장 큰 업적이면서도, 정작 사진사에서는 소외받는 경찰/기록 사진에 대한 논의!)


ps. 사진 관련 비평 서적을 읽을 때 마다 점점 사진 한 장 남기기가 힘들어지는 듯 하다.
    사진에 대해 탁월한 비평을 남긴 수잔 손탁도, 그래서 평생 사진을 찍지 않았던게 아닐까.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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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진의 현재 (Art Photography Now)
수잔 브라이트 지음 / 이주형 역
월간사진 출판사


어딘가에서 강력 추천을 받고, (가난한 예술가인) 밍군을 졸라 받은 책..^^
수록된 작가들의 명성이나, 글, 사진의 분량을 보아서는 \38,000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듯 하다가도, 사진 한장씩만 딸랑 소개된 작가들을 보자면,
그 작가와 작업들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다소 역부족인 것도 사실.
(물론 비중있는 작가들 - 크루드슨, 신디셔먼 등등등은 작가의 말을 비롯한
글들을 수록하고 있어 작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나, 최근 작업 위주로 소개를 하고 있는 터라,
관심이 있던 작가라면, "아 요새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군"이라고 끄덕이겠지만,
생소한 작가의 경우엔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문제는 80명중 이름이나 들어본 사람이 10명이나 될까말까하다는 것--;
(대표적인 예로 지난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토마스 데만드의 경우 사진 한장과 짤막한 해설 한줄로는
그의 작업이 어떠한 작업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절대절대 알 수가 없다.)

인물/풍경/내러티브/오브제/패션/다큐먼트/도시

와 같이 장르를 나누어 작가와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서문 및 각 장르에 대한 소개 글들은 상당히 읽을만하다.

전체적으로는 사진 애호가들을 위한 카탈로그 성격의 책으로,
미술 시장의 경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찌보면 미술시장 입문을 위한 갈라잡이 같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소개된 작가들의 이름과 작업들을 맛보는 정도에 의의를 둬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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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개인적으로는 여기저기서 글로서 접한 앨런 세큘러가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확이긴 했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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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화 vs 사진의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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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정의가 애매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은 거장의 작품도 예술이고, '예술'이라는 단어가 있기 전에 그려졌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도 예술이라 불러지고, 바로 이 순간, 강원도 노인이 그리는 모래로 그린 그림도 예술이라 일컬어지고, 청계천에 놓여진 생뚱맞은 플라스틱 소라모양 조형물도 예술이라고 불러진다. (개인적으로는 '예술가-직업적인 훈련을 받거나, 그 그룹에 인정받은 사람'에 의해 행해진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있긴 하지만) 연일 소개되는 작품들이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예술 작품들을 보자면 '누구나 예술가', '그 무엇도 예술작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한편, '사진'이라는 매체도 예술의 견지에서 보자면 참으로 정체가 애매한 녀석인데, 사진 그 자체로 보자면 영상을 필름이나 디지털 등의 매체로 기록하는 장치이지만, 전문적인 훈련이 없이도(물론 전문적인 훈련이 무용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셔터를 누르면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대체 어디다 써먹을지 모르는(벽을,건물을 장식 하는 용도 이외에는?) 예술 작품과는 달리 보도, 일상의 기록-스냅, 상업 등과 같이 굳이 '예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물론 이 중에서도 도대체 써먹을 데가 없는 사진들을 추려 -예술 사진-이라 분류하기도 한다), 예술의 장르에 사진을 편입함에 있어 기존 회화나, 조각등의 순수미술계에서의 미묘한 긴장감(물론 이러한 까닭에는 취미 사진 가들이 '예술한답시고' 나대는 연유도 큰듯 하다. 직업적인 예술가들이 보기엔 얼마나 같잖겠는가)을 보자면 대체 사진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의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과, 과정을 살펴보는 책이 이토우 도시하루의 <사진과 회화>, 마리안네 케스팅의 <사진의 독재>이다.
 
 두 책 모두 사진의 출현에서 오늘날까지 시간을 따라 사진과 예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구성면에서는 비슷하나, <사진과 회화>는 제목처럼 회화와 원근법에 좀 더 비중을 두고 논지를 끌어나가는 반면, <사진의 독재>에서는 사진과 대립하는 대상으로 회화뿐 아니라, 문예작품을 포함시키고, 사실/자연주의, 현실의 모방의 관점에서 논의를 끌어나가고 있다.

 <사진과 회화>는 르네상스에 이르러 완성된 선원근법을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목표로, 자연의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이후 '사진적 시각'으로 불리는 부분적인 시각의 원근법으로 변모해 왔음을 제시한다. 즉, 사진의 발생 이전에 이미 예술에 '사진적 시각'이 존재해 왔으며, 따라서 사진은 '예술의 사생아'가 아니라, '예술의 적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화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단숨에 이뤄버린 사진을 회화(예술)는 어떻게든 배척할 수 밖에 없었으며, 보들레르의 표현을 빌어 인간 상상력의 고귀한 결과물인 회화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따라그리는 천박한 것(즉, 사진)이 아니라, 예술가의 상상력을 거쳐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상화되어야 함을 목표로 함을 천명하였다. 따라서 '나는 천사를 보지 않았으므로 천사를 그릴 수 없다'라고 천명하며 극단적으로 시각적인 재현에 충실했던 쿠르베가 당시 살롱의 관계자들과 화가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것과 같은 이유로 사진은 예술의 적이 되었다.(아이러니 하게도, 화가들은 사진을 수집하고, 사진을 자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때문에, 사진이 자신의 특성을 포기하고, 얼마든지 회화적인 표현이 가능함을 증명하려 했던 반동의 시기도 있었으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군의 작가들이 나타난다. (책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 등이 언급된다.) 해서 책은 회화와 사진은 대립의 관계가 아닌 형제로서 파악되어야 함을 밝히며, 정(회화)-반(사진)-합(예술의 상승) 식의 다소 나이브한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20세기 초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밝히는데 뒤샹의 유작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몇 번 읽어보아도 도저히 그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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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사진의 독재>는 그 제목과 <예술의 모방에서 그 압도에 이르기까지>라는 과격한 제목이 제시하듯, [예술의 종말]에 대해서 언급한다.

 19말-20초에 있어서 사진과 예술의 대립에서 나타나는 양상과 그 분석은 <사진과 회화>에서 나타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예술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가게 되고, '회화의 본질'과 같은 예술 자체를 주제로 삼는 예술들이 유행하게 된다. 보들레르, 카프카, 피란델로 등은 사진의 기술적 특징을 문제 삼아 사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을 제시하는데, 도구 의존적이며, 확대 재생산이 가능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인 이 매체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것도 제시하지 않으며,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사진은 사진대로, 기술적인 완성과 함께,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자 여러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앞서 언급했던 회화를 모방하는 사진등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라즐로 모흘리 나기나 로드첸코 등이 선보였던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새로운 시각, 극단적인 확대, 축소 사진,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등, 눈의 시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며, 회화가 추구하고 있던 추상성을 따라잡는데에 이르렀다.

  회화는 회화대로, 사진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추상과 같은)를 하게 되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속담처럼, 사진을 피하기 위해 사진을 알아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0세기 중반 팝아트에 이르면, 아얘 사진적 시각을 그대로 도입하여 '소격-낯설게 하기'시킴으로서 사진을 극복(사실은 압도당함)하고자 하는데, 2차원적인 현실의 모사를 넘어 아얘 3차원적으로 (물론 완전 비 실용적인) 사물을 모방하는 작업(올덴버그 등의)들까지 등장하게 된다. 척 클로즈는 사진을 그대로 확대 모사했고,(그의 작품 앞에 서면 사진과 다른 것은 그 압도적인 크기뿐이다!) 퍼포먼스나, 행위, 대지 미술가(크리스토퍼, 조지&길버트 등등..)들은 등등은 자신의 작업들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처럼 사진이라는 매체는 예술을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예술품의 복제와 보급-즉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상실-에 사진이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사진이 예술 전반에 미친 영향은 실로 예술을 종말로 이끌고 있다고도 할만하다.

 마리안네 케스팅은 말미에 이르러 현대의 예술의 위기(사진을 피해 달아나고자 했으나 실패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는데, 칸딘스키가 언급한 예술의 의미-'다양한 면모로 나타나는 다기능성'- 즉 무용하기 때문에 뭔가 있어보인다는 -를 인용하며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만이 이 국면을 극복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2013년 1월 23일 추가

사진이 회화의 적자라는 주장은 91년 MOMA의 사진분과 큐레이터로 취임한 Peter Galassi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1980년초 Peter Galassi가 조직한 <Before Photography: Painting and the Invention of Photography>전에서

Heinrich Schwarz의 영향을 받아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Peter Galassi의 인터뷰를 참고.(naive youth한 시절의 이야기라고....ㅎㅎ)

http://lejournaldelaphotographie.com/entries/5566/peter-galassi-30-years-at-the-moma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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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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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짜한 스타와 예술가는 왜 서로를 탐하는가
(Art and celebrity  )
 
존A.워커| 홍옥숙 역| 현실문화연구| 2006.08.07 | 511p | ISBN : 899221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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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교양서(?)를 고를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이, 저자와 출판사가 아닐까 싶다. 존.A.워커는 <대중매체시대의 예술 (열화당)>로 친숙한 사람이고, 현실문화연구는 꾸준히 알찬 책들(혹은 재미없는 책들!)을 출간하는 출판사.(개인적으론 <니코폴> 등의 유럽권 예술만화들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와 출판사를 보면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데....
제목이 좀 수상하다 <유명짜한 스타와 예술가....> 라니.. 혹시나 해서 영어제목을 살펴보니 <Art and Celebrity>, 번역하자면, <예술과 명사>쯤. 아마도 독자들에게 보다 편하게 다가갈 요량으로 과장스런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책은 참으로 방대한 분량의 스타들과 예술가, 그리고 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스타들의 예술 수집 취향에서, 예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프리미티브적인) 스타들, 스타들을 소재로 삼는 예술가들, 예술계의 스타들, 무영영웅(일종의 리얼리즘적인)과 예술등을 19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모든 책이 그렇 듯,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인데, 주로 영미권 스타들과 예술, 예술가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까닭에, 영미권 문화를 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수준의 이해로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빈센트 프라이스나, 데니스 호퍼, 폴메카트니가 예술을 수집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 보다는, 유인촌이 문화부 장관이 되었고, 정종철이 사진전을 열었더라 하는게 좀 더 피부로 와닿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유명 스타들과 예술의 관계를 조명하는 챕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예술과 미술 시장, 그리고 예술가들의 관계, 예술가들이 스타를 소재삼아 활용하는 까닭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는데, 영미권 예술계의 지형도를 관통하는 존.A 워커의 방대한 수집 능력과 통찰력이 돋보인다.(허나 역시 그쪽 분야에 대한 내 배경이 부족한 까닭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이 부분까지 진행하면서, 나의 영미권 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감안하고라도, 어딘지 모르게 글이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무명영웅'에 대한 단락에 접어들면서, 내 느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작인 <대중매체시대의 예술>을 보면,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대중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조명해 오다가, 다소 급진적인 시각으로 리얼리즘-참여적인 예술의 미래에 대해 피력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무명영웅'에 대한 단락은 <대중매체 시대의 예술>의 결론부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덕분에 이 단락에 이르러서야 진행이 무척 힘차고, 비로소 저자가 하고 싶던 말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냥 예술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쬐끔 생각해보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 탓일 수도 있겠다.
 
책은 주로 영미권을 배경으로 예술과 스타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예술계의 스타들과 미술 시장, 그리고 참여적성격의 예술황동까지 방대하게 소개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다소 거리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좋든 싫든, 현재 문화를 선도하는 곳은 영미권이고, 우리는 시차를 두고 그들을 쫓아가는 것이 사실이기에, 앞으로 우리 문화계의 예술과 스타의 관계가 나아갈 바에 대한 예언서, 내지는 참고서로서 존.A.워커의 탁월한 통찰과 더불어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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