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부터 KT&G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문화지원센터'인 상상마당에서 사진 강좌를 듣고 있다.

 SLAP(SangSangMadang Life-Art Photographer) 프로그램으로, 생활사진가 프로그램 정도로 보면 되겠다.

원래 수업의 목적은 기존에 찍은 사진들 중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전시/ 출판까지 하는 것이지만, 이왕 하는 김에 이번에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다.(그래서 상상마당 내부적으로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석달에 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강료이지만, 출판과 전시에 대한 부분은 100% 상상마당 측에서 지원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담배를 주제로 하는 다소 짖궂은 장난을 시도했다. 즉 상상마당의 모체인 KT&G를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작업 의도를 설명하자면,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담배를 만드는 사람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현실에서의 답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담배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인 손실이 발생하지만, 그 손실의 비용은 담배를 피우고 건강을 해친 '개인'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진다. 혐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담배회사를 나쁘다고 지적하기 보다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담배 회사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담배 회사들이 담배로 건강을 잃은 개인에게 보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발 담배소송 소식이 들려오지만, 개인의 승소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고, 국내도 7년간 공방 중이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하며, 유럽의 경우엔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물론 담배 회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론으로 국내의 경우를 보면, KT&G 복지재단, 상상마당 등등으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그 긍정적인 이미지는 고스란히 KT&G의 이미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활동에도 금연 캠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병주고 약주면서 생색까지 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근에 한국금연연구소를 후원하여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벌이긴 했으나, 거의 1人 NGO인데다가, 이왕 피울거면 양담배 말고 국산담배! 를 외치는 한국금연연구소의 활동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담배'라는 유해소비재가 '필요악'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흡연자들의 존재가 그것을 증면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 자체가 '좋은 것', '괜찮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일 뿐이다. 담배를 없애지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수업을 듣는 상상마당의 (고마운)존재는, 각도를 달리해 보면, 결국 수많은 개인들이 피워올린 담배, 그 희생에 기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담배로 상상마당 건물을 만들어 태웠고, 그 장면들을 찍어 현재의 상상마당 건물의 모습과 합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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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같은 작업에는 나름 존경해마지 않는 한스 하케(Hans Haacke)의 모티프가 있다.
 1971년 한스 하케는 뉴욕 구겐하임에 초대되었고, 그 때 내건 작업이 구겐하임 미술관의 후원자인 샤폴스키 그룹의 맨하탄 부동산 소유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전시는 취소되었고, 담당 큐레이터는 해고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 작업은 지난 광주 비엔날레에도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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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한스하케에까지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오늘 상상마당은 KT&G에 적대적(?)인 작업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게임은 애초에 무척 불평등한 게임이다. 내 작업이 허용된다면,  어쨌거나 KT&G로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만약 거부한다면, 결국 기업의 문화, 예술 후원이라는 것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니, 나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그런데, 사실, 기업 입장에서, 나따위가 그런 전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어떤 영향이 있을까? "그래, 뭐 저건 예술이니까. 누가 신경쓰겠어?" 라고 말하면 그만 아닌가싶다)

 지난 토요일 수업시간에 전시에 쓰일 사진 선정 시간이 있었고, 교수님과, 상상마당 관계자의 당황한 표정을 목격했다. 그리고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역시 극도로 보수적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의 일원으로서, 관계자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도 있다.  앞서 말했듯, 어쨌거나 나는 목표를 달성할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게임이니까.

 그저 내 개인 작업의 성공(?)을 위해서 멀쩡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지금도 그 고민은 여전하다. 나는 그저 '공익'이라는 허울에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들을 괴롭히는 '진상' 혹은 '찌질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최소한 KT&G의 예술 후원의 '진의'를 떠보는 의의는 가지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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