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추천을 받았던 것 같은데,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문윤성 SF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는 표지.
1회 수상작이라는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메시지 과잉으로
이야기가 증발하며 실망을 안겼던 기억이 있어 기대를 한수 접고 책을 시작했다.
만족은 기대에 반비례한다던가, 결론부터 보물같은 책을 발견했다.
소설은 '감정형 인공지능 설계사'인 주인공 '도하'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선천적인 충동조절 장애와 공감능력 부족으로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있어 늘 남다른 생각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우연히 인플루언서인 '릴리'를 도와주게 되고
'릴리'의 연인인 '백해나'의 죽음과 엮이게 되며
사건의 내막을 찾아가는 서사로 진행된다.
이 책의 미덕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럴듯하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했을때 빠지기 쉬운 인공지능에 대한 피상적 접근
(인공지능을 만능으로 묘사한다거나, 혹은 지나친 인격을 부여한다거나)
에서 벗어나 신경망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와
인공지능을 둘러싼 산업군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곁들여져
소설속에 펼쳐진 근 미래의 모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보법이 다르다'.
극중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나, 인공지능의 기록 영상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글줄로 장면을 서사하는 것이 아니라 '극' 혹은 '대본'의 형태를 이용하여
영상물을 독자들의 눈 앞에 그려낸다.
이를테면 "(화면 전환되며 설계사무소의 정경이 나타난다.....단정한 하얀색 셔츠와 청바지)"
식이다. 산문을 넘어 영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작가의 야심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는 플래시백과 순차진행을 거듭하며
백해나의 죽음을 둘러싼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사실 그것이 그렇게 거창한 결말이 아니거나, 혹은 예상 가능한 결말일지언정
퍼즐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형식적인 쾌감의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주인공과 동생의 집착과 구속의 줄타기 또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재미이다.
타인과의 반응이 적절했는지 스스로 채점표를 작성하는 주인공 도하의 모습이
학습이 끝나고 손실함수를 계산하는 신경망 학습의 시퀀스와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과격한 상상에서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과 오히려 그를 책망하고
벌주는 인공지능 '이모지 박사'의 역설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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