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어쩌다보니 한주 쫙 쉬게 되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현대미술과 오므제> 세미나를 다녀왔다.
사전신청 60명이라는데.. 모인 사람은 얼추 100명가까이 되어보이는 듯. 아마 유료회원(연회비 \10,000)은 따로 할당이 되어있나보다.

아래와 같이 4분이 발표를 하셨다.

<미술과 사물의 얄팍한 경계 : 마르셀 뒤샹의 <샘>과 그 복제품들>, 우정아
<클래스 올덴버그의 오브제 : 일상물건에서 오브제로, 오브제에서 (정치적) 모뉴먼트로의 변화>, 정연심
<사물의 조건 : 조합틀과 중립>, 유진상
<不-在의 오브제 : 현대 미술에서 사물과 비물질성>, 강수미

이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정아 교수님이 발표하신 마르셀 뒤샹에 대한 것이었는데, <샘>의 발표와 전시 거부를 이슈화하기
위해 벌인 일종의 자작극(R Mutt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자신이 발행하는 <The Blind man>誌에 투고하는 등의)
에 대해서는 일찌기 알려진 바대로인데, 이후 (<샘>은 망실되고 십수년여동안 <샘>은 기억속에서 지워졌다) <샘>의 복제에
대한 뒤샹의 대단한 집착은 이번 발표를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1938년 뒤샹의 휴대용 포트폴리오인 <가방 속의 상자>를 위해 <샘>의 미니어쳐를 1958년까지
4차례에 걸쳐 복제를 한데 이어, 1950년에 벼룩시장에서 구한 변기에 "R. Mutt 1917" 서명을 함으로서 또 하나가 복제되었고,
1961년 스웨덴의 울프 린드의 요청으로 또 하나가 복제(철저히 수공업적으로)되었으며, 또 동시에 스톡홀름 식당에서
발견된 변기에 서명을 함으로서 또 하나가 복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에 뒤샹이 스티글리츠에게 의뢰해서 찍은 <샘>의 사진이 이후 복제되는 <샘>의 인덱스가 되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최초의 원본이라고 할 수 없는(대량생산품이기에) 원본이 사라지고, 원본 없는 복제품들이 뒤샹의 서명을 통해
원본의 지위를 획득하는(시뮬라크르)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뒤샹은 분명 "의식적"으로 서명을 통해 복제품들을 생산해낸 것이겠지만, 이 모든 상황 (<샘>의 망실 이후부터 재조명 받기까지의
30여년 가까운 시간)을 예측하고 이용한 치밀한 기획자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때그때 순발력있게 대응한 기지의 달인인 것인지,
어느모로보나 본인이 원했던 "전부를 알 수 없기에 후대에 계속 파악되어야만 하는" 작업을 남긴 것은 분명해보인다.


올덴버그에 대한 발표는 작가론에 가까운 것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유진상 교수님의 프랑스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바깥>과 <중립>이라는 철학적 개념, 담론은,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프랑스에서는 정말 미국이나 영국 등지와는 다른 철학적 논의들을 통해 예술이 존재하고 있는건지...;
그리고 강수미 선생님의 강연은 아주 미약하게라도 물질 없이 예술작품이 시각화할 수 없기 때문에,
비물질화를 추구하는 작업 역시도 물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라는 요지였는데,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이를테면 개념미술이라든가에 대해선 좀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soso...


 현대미술에서 오브제가 갖는 의의에 대해서 사전에 살짝 들춰보고 갔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내용들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예를들면,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과 미니멀리즘, 플럭서스,
그리고 개념미술, 팝아트 등으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배경이라던가, 보들리야르의 <사물의 체계>에서 말하는
사물의 기호가치와 소비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이러한 이야기들 - 특히 포스트모던에 대한-은 아무래도 제도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다룰 수 밖에 없기에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일반 청중들을 놓고 이야기 하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하다거나,
혹은 이러한 미술사적 맥락의 논의는 이미 다뤄질만큼 다뤄져서 진부하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의시간.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유료회원이신듯!)이 많았는데,
내가 한 질문을 포함해서 대체로 "현대미술 난해해요, 어려워요, 어떻게 봐야해요?"라는 이야기.
세미나 명칭은 "학술 세미나"였는데, 솔직히 학술은 폼이었던 듯 하다. 주관한 쪽도 교육팀인듯 하고.
우정아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소설책을 읽을라고 해도 글을 알고, 배경이 되는 사회를 알고 봐야 하듯이,
미술을 보려고 해도 기본적인 문법과,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데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예전(한 100년전쯤?)에 비하면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는 것 또한 사실인듯.
유진상 교수님께서는 프랑스의 독특한 예술적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는데,
<바깥>과 <중립>에 대한 발표 내용도 그렇고, 특유의 <살롱>, <까페>문화가 다양한 청자를 형성하고,
그 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또 다양한 예술활동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프랑스 <바깥>에 있는 우리는
대체 프랑스 예술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질의중 인상깊었던 것은 강수미 선생님의 답변 중 "어떤 철학적 배경이 예술을 탄생시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부분은 뛰어난 예술작품이 나오면 그것을 위해 철학이 뒤따라갑니다. 누구의 담론에 맞출지, 누가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감상을 작업을 하세요"(대충 이런 요지였던듯). 희망을 주는 이야기 :)

중간에 정연심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 건물 별루에요" 했더니 학예사 한분이 발끈 하셔서 "첫인상은 그렇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좋아요!" 라고 하셨는데.. 뭐 그리 대응하실 필요 있었나 싶다..:p 어차피 기무사터에 새로 지을건데.
전반적으로 학예사분들이 좀 방어적이라는 느낌이...예술계에 있어도 공무원은 어쩔 수 없는 공무원인건가..
거기에 나도 발끈(?) 해서 미술관 명칭을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Museum of Modern Art>로 바꾼다는
소문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의외로 질의시간이 길어져서 물어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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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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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 2009 서용선
20090703-20090920

아리랑 꽃씨
20090717-20090927

국립현대미술관



 간만의 국립현대 미술관 나들이.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과   일본/러시아/중국 거주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리랑 꽃씨>展을 보았다.
서용선 작가는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이어서 단종의 폐위를 다룬 역사화와
도시인들의 군상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위의 도록에서도 느껴지듯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과감하게 쓰여진 색채와 검은 선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막 분출될 것만 같은 억눌린 꿈틀거림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했다라는 부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계유정란(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사건)을 다룬 역사화와 당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그림이
단순히 역사화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굳은 표정과 붉고 날카로운
눈매는 이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사명감, 그리고 실천적, 현실참여적 작가로서 민중미술
계보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서용선 작가는 근래 철암의 폐광지역에서
철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매월 세째주 토요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도슨트의 설명을 비롯 리플렛의 내용 등 전시 전반에 걸쳐서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인
시대의 현실보다는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실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실존, 실존적 고통,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등등..)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고, 또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부분에서의
공감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시대 현실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업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조차 든다. 말많았던 MB코드 인사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덕에 말이다.)


<아리랑 꽃씨>展은 일본/중국/러시아에 거주중인 1/2/3세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중에 벌어진 사건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1세대 한인 작가 한락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작품 철거를 알리는 패널만이 존재할 뿐,
벽에 남은 못자국만이 작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장처의 특별한 사정으로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라는데,
특별한 사정인 즉슨, 지난 7월 5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유혈사태로 바짝 긴장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이 모일만한 장소는 사전 차단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혹시나 1세대 한인
작가의 작품앞에 모여들 한민족들을 걱정하여 작품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겠지만,
예술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주시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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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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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젊은 모색
국립현대미술관
20081205-20090308


"1981 <청년 작가>전으로 시작되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를 함께 겪어온 <젊은 모색>전이 올해로 15회를 맞이했다.....(중략).....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표피적인 대중주의에 영합하고, 자본주의 미술 시장에 길들여진 예술의 이성을 깨우며,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젊은 작가들의 신념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서문 中)

 우선 왼편의 본인 얼굴에 불쾌하신 분께 심심한 위로부터...--;


둘리 노래를 기억하시는가?

"요리보고~, 저리봐도~, 알수 없는~ 으흠~ 예술!"

굳이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마치 정신착란증 환자를 연상시키는 현대 예술 작품들과, 거기에 드러나는 애매함과 불친절함들은, 어느덧 현대 예술의 덕목이 되어버린듯 하다. 수수깨끼 같은 작품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답답한 마음에 브로셔나, 도록의 글들을 읽다보면, 힘, 에너지, 본질, 자아, 정체성등의 선문답에 머리가 멍 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무뚝뚝한(혹은 할 말이 없는)" 작품들에 진저리가 난 관객들을 위해 17명의 작가가 한데 모여 전시를 이루었다. 바로 <2008 젊은 모색>


 17명의 작가들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수다스러운" 작업들을 선보이는데, 그중 가장 수다스러운 몇몇 분만 소개하고자한다.




고등어 : 시각적으로도 초강력한 회화 및 설치작업들은, 이 사회를 지탱(지배)하는 남성성에 맞서 여성들의 방황과 상처와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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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실 : 얼핏 보기엔 은은한 한폭의 동양화로 보이지만, 다가서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성기들에 당황하게 될 지어다.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반항 (실제로 동양화과 대학원에서 교수님들한테 왕따 중이라고 한다..)


최원준 : 일전에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개인전 - UnderCooled 에서 이미 한번 본 적이 있다. 수다스럽게 보이는 작업과 달리, 본인의 마음속은 조용한듯 하지만... 암튼 이젠 완전 떴구나(KIAF에서도 봤다) 싶다.


이완 : 회전하는 원판에 죽은 참새를 파먹고, 자라고, 흩어지는 구더기 그리고 끊임없이 갈아치워지는 욕망의 소비재들. Forbidden Land의 아이스크림 산이 무너질때, 구더기에서 태어난 파리와 그 죽음. 작가에 의해 야구공으로 재탄생된 마트에서 파는 생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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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당신은 어떤 상(像)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이 사회의 상들은 과연 정상인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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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일 : 미술계와, 명품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사대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하나하나 위트가 넘치긴 했지만, 범위가 워낙 넓어서 수다스러움에 정신이 살짝 없을 정도.


 
 17명의 작가와 그 작품들은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고, 질문을 던지면서, 요컨데, "과연 관객-당신은 안녕하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러한 작품과 관객-사회와의 관계맺음이, 예술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임은(누구나 자신의 작업은 사회적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분명하고, 이 작가들이 <젊은 모색>이라는 커다란 영예에 주눅들지 않고, 그들의 신념을 꿋꿋히 관철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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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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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lstein 2008.12.15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어렸을때의 미술관 충격을 아직도 기억해.

    수많은 '무제' 들...

    어쩌라고... ㅡ,.ㅡ

    • 냐궁 2008.12.15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지 캔버스에 "무제" 라는 제목...-_-
      이런 작업들만 찾아봐도 한트럭 나오지 않을까?

  2. 2008.12.17 0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ㅡ,ㅡ 작품과 관객-사회와의 관계맺음

    외에 말들은 휘리릭 안녕!

    내 마음이 피폐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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