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형 NAS를 고를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듯 해서

고려 사항 및 간단한 후기를 남겨본다.

 

아마 가격대가 비슷하다보니 대부분 시놀로지 DS220J / 아이피타임 NAS2 Dual 두개를 고민하는것 같다.

 

구분 시놀로지 DS220J 아이피타임 NAS2 Dual
가격('21.6월기준) 198,000 169,000
베이수 2베이 2베이
CPU RTD1296 쿼드코어(1.4Ghz) Marvell 88F6820 듀얼코어
(1.6Ghz)
Ram 512MB 2GB
WOL 지원 미지원
트랜스코딩 부분적으로지원 미지원
NTFS 비공식지원 지원
DDNS 별도구성필요 제공

 

CPU나 이름값이나, 그리고 출시년도나 신제품인 DS220J가 매력적이긴 하다.

사실 아이피타임은 NAS2 DUAL이 나온지 만 3년이 넘었는데, 후속제품이 없어서

앞으로 NAS제품을 더 만들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목에 적은대로 결국 아이피타임 NAS2 Dual을 선택했는데,

가장큰 이유는 로지는 하드디스크를 구성하려면 거의 무조건 포맷을 해야 하고,

NTFS를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공식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찾았으나.. 그렇게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기존에 구형 아이피타임 NAS2에서 하드를 그대로 옮기고 싶었는데, 

약 6TB에 달하는 데이터를 백업했다가 다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계라는건 언제든지 고장이 날 수 있는건데... 시놀로지처럼 하드를

NAS 전용으로 만들어버리면  만약의 경우 바로 컴퓨터에 하드를 붙여서 데이터를

읽는 것 조차 어려워지면 곤란할 것 같은 생각도 있었다.

물론 내가 NAS를 거의 외장하드 개념으로 쓰고 있어서 보통 생각하는 NAS의 사용 시나리오와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아이피타임은  ipdisk.co.kr이라는 DDNS를 기본적으로 제공해서

집 밖에서 NAS에 접속하기가 무척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문제의 구형 NAS2. 애초에 구조적으로 발열로 인한 문제가 많은 모델이긴 하다.

사실 내  NAS 용도는 거의 외장하드에 가까워서 (그리고 가끔 가뭄에 콩나듯 미디어 서버) 굉장히 라이트하게

쓰는데도 불구하고, A/S를 한번 받았었고, 그후로 약 3년? 뒤 인도에서 활동을 개시한지 약 두달여만에 결국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 (가운데 초록색 콘덴서가 부풀어있다.)

 

하드를 NAS2 DUAL로 옮기고 장착하고 접속하자마자 기존 설정파일을 찾았다는 메세지가 뜬다.

컴퓨터에 설정파일 백업해놓은 것이 어디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수고를 덜었다.

 

그런데, 지난 모델이 발열로 워낙에 말이 많았던 탓인지, 

이번모델은 온데 구멍을 송송 뚫어놓았는데, 아무래도 먼지 유입이 걱정이 되기는 한다.

특히 인도에는 워낙 먼지가 많아서.... 그래서 뚜껑을 하나 만들어서 씌워주었다.

내려앉는 먼지는 좀 커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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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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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달여의 한국일정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간다.

가족들은 좀 더 한국에서 볼일을 보기로 하고 혼자 돌아가는 여정에 부여받은 임무는 '책'

수하물 23kg 3개와 기내가방, 그리고 백팩까지 아이들 책으로 가득 채웠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도는 한적한 출국장에서 

공항 라운지를 무료 입장하여 홀로 즐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인도로 돌아간다는 긴장 때문인지 아릿한 아랫배를 의식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끼니를 하고

1시간 반여를 무엇으로 때울까 하다 가방 속의 책을 끄집어 냈다.

 

'The Giver(기억전달자)'

 

동명의 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딱히 블로그에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을 보면,

크게 임팩트는 없었던 모양이다.

 

책은 모든 것이 동질해진 미래의 어떤 사회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생의 시작에서 죽음까지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고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12세가 되면 본인의 적성에 따라 정해진 직군을 배속받는다.

직업을 배정하는 의식은 공동체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행사로 여겨지는데,

주인공 조너선은 무슨 일인지 직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을 느낀다.

 

탑승시간까지는 20여분 남았지만, 라운지에서 게이트까지 제법 거리가 있던 걸 기억해서

여유있게 라운지를 나서기로 했다. 텅빈 라운지에 교대로 식사를 하는 종업원들을 뒤로하고,

리셉션의 안내원에게 목례를 하고 라운지를 나섰다. 

기내용 가방에 책이 제법 묵직하게 든 탓에 끌면서 손잡이가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손목도 비틀리면서 아파오는 지라 무빙워크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갔다.

내 뒤에 한눈에보아도 가방이 통통 튈만큼 가벼워보이는 사내가 있었는데, 나를 의식해서인지

무빙워크뒤에 한참을 서있다가, 이윽고 종종걸음으로 추월해갔다.  

 기종은 A350 neo, 좌석은 10D. 기내가방을 위로 올리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듯 올리려 했으나,

아무래도 힘들어보였던 모양인지, 승무원이 도와주려 손을 댔다가 깜짝 놀라 눈이 마주쳤다.

겸연쩍인 미소를 지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채 -그러면서 최대한 힘을주어- 선반을 닫았다.

  인도로 가는 길은 올때와 다르게 승무원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기내식까지 서비스를 해주었다.

 기내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라운지에서 요기를 했건만, 주는걸 다 먹자니 아랫배가 불편해서

 기내식을 조금 남겼다. 

 아침에 콜밴을 타고 공항에 올땐 공항고속도에서 그렇게 졸리더니, 막상 비행기에선 피곤한듯 하면서

 딱히 눈붙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포드 vs 페라리>를 시청하고 멍하니 기내 모니터의 지도를 쳐다보다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예상했겠지만, 그리고 영화를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조너선은 "기억 보유자"가 되어 선대 기억보유자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전달받아 기억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된다. 색과 소리, 음악에 대한 기억이 책에서 흥미롭게

나타나는데, 책속의 사회에서는 모든 차이를 부정하여 '색'과 '음'에 대한 개념을 지워버렸다. 조너선은 색에 대한

기억을 전수받고 나서야(그 이전에도 조금씩 보기는 했지만) 비로소 세상에 채워진 색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문득 아내와 잠깐 논쟁했었던 '문자매체' vs '시각매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영화 <Tenet>을 아내에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고, 시간의 역행과 순행의 합맞춤은 시각매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역설했고,

아내는 책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더랬다. 색을 볼 수 없는 세상이라니, 그리고 그 안에서

부분적으로 색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이라니, 책은 참 쉽다. "모든 색이 동일하게 보이는 세상" 한마디면

그 복잡한 것들이 설명되어버리니 말이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상상하며 글을 적어내렸을지,

아니면 개념적으로 색이 없는 세상을 선언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눈을 뜬자는, 언제나 그렇듯 체제를 거부한다. 조너선과 선대 기억 전달자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그리고 늘 있어왔지만 그들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기억전달자가 기억을 갖고 사라져야 그 기억이 공동체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으로,

조너선은 급히 새로운 세계-아니 계획된 세계의 테두리 밖-로 나아간다.

 

비행기위 현위치를 표시하는 지도를 보니  낯설은 그러나 낯익은 지명들이 스쳐간다. "Viz..", "Bogu.."

그렇게 큰 도시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지명을 표시해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이 주는 느낌은 분명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가 싶어 화장실에서 씨름을 해보았지만 별 성과는 없다.

책을 덮고 문득 인도의 '집'에 돌아가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올려보는데,

집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수가 없다. 

승무원들은 귀항편을 대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과 고글로 둘러싸고

흡사 외계로 향하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뱅갈루루에서 하이데라바드까지는 사정이 있어 회사 출장자(인도인)들과 함께 밤새 버스를 타야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쉬고 업무를 보고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고국 땅에 돌아와 마음이 푸근해보이는 현지인 친구들. 저녁을 먹고 가겠다 하여 한시간 남짓 출발이 늦어졌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어스름한 저녁 풍경. 왔구나 싶지만 또 낯설은 풍경들.

한국에서도 그랬더랬다. 그랬었나, 이랬었나 하는.

 

문득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말을 건내 본다.

 

"한국에서도 내집이 아니라, 여행으로 다니다보니 편하지 않았고,

막상 인도에와서 보니 내 집이 잘 떠오르지 않아, 집에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 세상에 내 집은 없는 느낌이네, 어디에도 속한 것 같지 않아"

 

알아들은 것인지, 자기 하고 싶은말만 하는지 다소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한국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저녁을 직접 해먹을 수 있어서 아주 편하게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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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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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모텐슨 주연의 가족 영화. 

 

6명의 자녀를 둔 부부 캐시와 레슬리는, 문명을 멀리한채 야생에서 자녀를 양육한다.

우울증에 걸린 레슬리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내와 엄마의 유언(화장을 해달라는)을 지키기 위한 6남매의 세상 구경과 해프닝이 주된 내용.

 

영화는 내내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유쾌하게 그려내지만

캐시와 레슬리 부부가 꿈꾸었던 이상향에 대한 의문점은 가시지 않는다.

 

현대의 물질문명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왔건만,

캐시 가족들이 보여주는 전인 교육의 모습은 대단하기만 하다.

1. 온가족이 강인한 체력과 극한에서의 자연에서의 생존능력을 획득하고

2. 해부학적 지식에 통달해있으며,

3. 예닐곱살 정도인 막내가 권리장전을 외우고 해석하고,

4. 중학생정도인 딸이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5. 맏아들 보는 자본론 및 사회주의 사상의 흐름을 독파했다.

6. 거기에 바하의 골드베르크 연주를 즐겨듣는 고상항 취향과

7. 분위기에 맞춰 즉흥 연주가 가능한 예술 감각은 덤.

 

이들 부부의 자녀 교육의 목적은 레슬리의 편지에도 나타나는데,

우리 아이들은 "철인(Philosopher King)"이라고 자랑한다.

 

주변 교육 관련하여 학교나 학원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면,

아이들의 인성이 어떻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어떻고, 진로가 어떻고...

온갖 미사어구를 붙이고 결국은 명문대 진학으로 끝나는 것을 자주 본다.

 

캐시/레슬리 부부도 물질문명을 멀리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었지만,

결국 엘리트인 본인들의 지적 우월에 대한 욕구만큼은 어쩌지 못했던 것 아닐까?

만약 그들의 가르침을 버거워하는 다소 능력이 부족한 자녀가

그중에 있었다고 하면 과연 두 부부는 어떤 입장을 취하였을지 궁금해진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의 견지에서 본다면,

(그리고 자녀들의 지적 능력이 두 부부에게서 유전된 것으로 보이는게 명백한 이상)

캐시 가족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결국 자신들이 경멸하는 세계에 대한 또다른 극단의

엘리트주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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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취업이 빨랐다.

2002년 당시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은 굴지의 기업이 된, IT회사에 입사를 했었고,

약 3년간 근무를 하고 퇴사후 복학/졸업을 하고 2006년 현재의 골수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골수 제조업 회사로 옮기니 

문화적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당이 없는 야근은 물론이고, 명시된 휴가를 쓰는 것 조차

허락아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입사 당시에는 경직된 회사 분위기에 아연실색했다가, 차차 조직에 물이 들어가며,

'그래 회사 생활은 이런게 당연한거지.. 나름 회사 안정적이니 된거지' 

라고 그렇게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와 일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최근이 변화라면 단연 주 40시간(52시간)과 코로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회사에서 40시간은 단순히 근무 시간 뿐 아니라 문화 자체를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의 준수와 더불어서 '나의 보장된 권리'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함께 높아진 것이다.

 

이를테면 '왜 원치 않는 회식을 참여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고,

 

예전 같았으면 '팀웍을 위해서!' 라고 답변되었을 질문들이 이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율 참여, 혹은 아얘 하지 마' 로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변화들을 보며 15여년 전 내가 처음 입사했을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너무도 달랐던 회사의 문화들을 비교해보며 당황해 했었고, 

'원래 회사가 이런거지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나봐' 라고 정리했던 생각들이

지금와서 보면 당연한 요구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IT기업과 골수 제조기업의 문화지체가 그만큼-15년- 존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40시간 도입때도 그렇고, 코로나때도 그렇고

회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표면적으로는 '효율성' 이고, 내부적으로는 '근무 기강'인듯 하다.

40시간 도입때도 '놀거 다 놀고 쉴거 다 쉬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막상 제도를 도입하고보니, 코로나로 재택 근무가 늘어나보니,

생각만큼 업무에 지장이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큰 무리 없이 업무가 진행이 된다.

특히 흔히 '사무직'으로 표현되는 연구 개발 업무 등은 의외로 원활히 돌아간다.

사실 여기에 오히려 더 큰 위기가 있다고 보는데, 일단 당장 현상유지가 된다는데에 만족을 하고, 

처음에 우려했던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 이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40시간/코로나 등으로 업무 시간이 제한되면, 당연히 '시간에 맞춰' 업무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에너지나 열정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무한하더라도)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면,

업무의 절대적인 처리량이나 퀄리티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효율성 = 퀄리티/업무시간

퀄리티/혹은 업무처리량 = log(업무시간)

 

위와 같기 때문에 업무 시간 축소에 따라 효율성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고,

그간 사실 필요 이상의 업무 시간이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업무의 질이나 량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 40시간 문화 확산, 코로나 등으로 인해 절대적인 업무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업무 처리량이나, 질이 기업이 기준으로 삼는 수준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제가 안생기니 애써 외면하고 있겠지만.

 

이야기가 길었는데,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결국 문제가 생겼을때 '근무 기강', '결과물 질' 등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투입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자원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부가적인 자원이었던 '근무기강', '마음가짐'등은 더이상 유효한 자원이 아니다.

 

결국은 '효율성'을 재고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앞서도 말했다시피,

직원 개인의 차원에서 투입 시간이 줄면 효율성은 저절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결국 직원 개인의 효율성은 노동시간 투입이 지배적이고,

그 나머지 부분의 효율성은 회사의 시스템적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개선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원들이 해야 할 일 중에 '쓸데없는 일'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절대 업무의 효율성은 줄어든 시간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런의미에서 차라리 40시간이나 코로나가 기업에게는 위기인 동시에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모두가 힘드니) 반 강제적으로 기업의 효율성을 재고하고

발전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아래 글의 일본 처럼 '친기업적'이라는 노동 문화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독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닐지...

 

 

 

아래는 쥬오대 교수의 글이라는데 출처는 찾을수가 없다...

공감가는 내용이 많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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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열심인데 왜 일본만 GDP가 회복되지 않는가?

봄이 왔다고는 하는데 기분이 다운되는 경기가 나쁘다는 얘기만 들려온다. 와세다대학교 비즈니스 파이낸스 연구센터 고문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씨의 「미약한 GDP 회복력, 코로나로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하락한다」 (다이아몬드 온라인 4월 1일)에 의하면, IMF의 추계를 토대로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일본의 2019년부터 21년에 걸친 GDP 증가율을 비교해 본바, 일본이 0.46%로 최저를 기록했다.

중국(14.5%)를 필두로 독일(11.8%), 프랑스(7.4%) 등 거의 모든 나라가 2%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하루 수 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나오고 지금도 록다운을 반복하며 실업자도 대량으로 넘치고 있는 나라조차도 착실히 경제가 회복하고 있는데, 일본만 시원치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일본 경제의 회복이 늦는 건, 경제활동보다 코로나 봉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며 코로나를 핑계 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일본의 GDP 성장률은 선진국 중 단연코 제일 낮았다.

요컨대, 원래부터 시원치 않았던 차에, 주변 국가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성장해 버린 탓에, 그렇지 않아도 시원치 않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 결과 다른 나라에 비해 완전히 뒤처지게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런 지적을 하면, 「일본의 강점은 GDP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일본만이 이렇게 낮은 게 이상하다. IMF 의 통계가 잘못되었다!」 등등 현실도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기분은 너무 잘 알고, 심정적으로도 이런 테이터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화가 치민다.

일본은 이 1년간,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보다도 경제회복이 안 되고 있다니,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가능한가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는 바다.

■ 결과가 수반되지 않는 시스템

손님이 없어도 가게를 연다. 팔리지 않아도 매장을 지킨다. 많은 일본인이 그런 심경으로 자포자기하고픈 괴로운 심정을 억제하며 버텨온 것이 이 1년이다. 겨우 경제활동이 부활할 것 같은 밝은 조짐이 비치자마자, 신규 감염자가 갑자기 확 늘어나는 일이 반복되어, 「이대로 가면 코로나로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고 불만을 토로하고픈 심정을 꾹 참고 억제했다. 「의료종사자 여러분은 더 힘들다」 를 자신에게 되뇌며, 심신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면서도 힘겹게 버텨온 사람들이 직종과 관계없이 매우 많을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3월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Work Trend Index」에 의하면, 코로나로 피로를 느끼는 사원이 글로벌에서는 39%, 아시아 전체에서는 36% 인데, 자그마치 일본은 48% 라는 매우 높은 수치가 나왔다.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사원은 45%로, 글로벌 42%, 아시아의 39%로 상회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나라보다도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피폐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 터이니, 어느 정도는 그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신규 감염자가 넘쳐나고 록다운으로 실업자가 넘쳐나는 나라보다도 경제는 얼어붙어 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인가 하며 한탄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결과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노력이 부족했다, 일하지 않고 땡땡이치는 놈들이 있다, 등등 이런저런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심플하게 일본 사회의 시스템이 블랙 기업(역주: 근무환경이나 임금 등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의 악덕 기업)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직장 근무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블랙 기업이라는 곳은 사원이 아무리 불철주야 노력하며 열정과 근성으로 일을 해나가도, 회사의 성장과 연결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급속하게 매상이 오르기도 하지만, 이런 기업은 인력에 100% 의존하고 있는 비즈니스모델인지라 언젠가 반드시 한계에 달한다.

예를 들어 경쟁에서 허무하게 패하든지, 노사문제나 직장 내 갑질 문제 등의 불씨도 꺼지지 않는다. 즉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 시스템」 인 것이다.

그리고 이건 블랙 기업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일본의 선량한 노동자 대부분은 그런 의식이 없겠지만, 일본 경제는 「개인의 노동력」 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걸 뼛속까지 빼먹는 시스템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에 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 개인에 대한 대가는 이상할 정도로 부족하다.

그 증거가 이제는 일본 명물이 되어 버린 「저임금 중노동」 이다.

■ 실질적인 실업자 문제

일본인 노동자 임금이 선진국 중에서도 눈에 띄게 낮은 것은 이런저런 객관적 데이터가 증명하는 사실이며, 최근에는 드디어 한국에까지 추월당했다고 화제가 되었다.

더구나 책임감에 의해 무급으로 일하는 소위 서비스 잔업이 만연하고 있듯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급취득률도 낮으며, 정신적으로도 매우 괴로운 지경에 처하고 있다. NHK도 참가하고 있는 국제비교조사그룹(ISSP)에 의하면, 일본의 직장 내 갑질(꼰대질) 비율이 25.3% 로 세계 37개국 중 4위로, 주요 선진국 중에 매우 높다. 참고로 이런 일본의 블랙 기업화는 외국인 범죄도 늘려가는 중이다.

「저임금 중노동」이 디폴트이므로 당연히 젊은이는 조금이라도 조건이 좋은 기업에 몰리고, 중노동에 비해 임금이 낮은 기업에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 그러면 거기에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싼 노동력이 혹사당하는 소위 「외국인 노동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이는데, 문제는 이들 나라에서도 경제성장으로 눈에 띄게 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럼 당연히 “왜 이렇게 싼 임금을 받아 가며 혹사당해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고조되기에, 직장에서 도망 나와 불법체류자 상태가 되는 외국인이 늘어간다. 그런 가운데 범죄로 흘러드는 자도 생겨나는 법이다.

21년 2월, 군마현 경찰이 20년에 적발한 재일 외국인(영주자, 특별영주자 등을 제외) 가 433명으로 과거 10년 동안 2번째로 많으며, 그중 베트남 사람이 212명으로 국적별로는 촤다라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런 뉴스는 전국에서 눈사태처럼 늘어나고 있다.

「확실히 일본의 저임금이나 장시간 노동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블랙기업과 함께 취급하는 건 얘기가 너무 비약된 게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공통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블랙 기업이 블랙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알바나 파견 노동자라는 고용 불안정한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철저하게 쓰고 버리는 비열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바인데, 사실은 일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그걸 상징하는 것이 「실질적 실업자」 이다.

이 용어는 노무라 종합연구소가 파트타임・아르바이트 중에서 「근무 시프트가 50% 이상 감소」에 「휴업수당을 못 받는」사람들을 정의한 것인데, 이 사람들은 통계상의 「실업자」 「휴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알기 쉽게 말하면, 고용주로부터 “미안하네 코로나로 어려우니까 이번 달은 근무 날짜를 절반으로” 라는 식이 되어 원래는 그렇게 되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휴업수당도 못 받고, 월급도 절반 정도로 견디어 내야 하는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 노동 착취 구조

그런 불쌍한 사람들이 있었다니 하며 놀라는 정사원들도 많겠지만, 지금 음식점, 호텔 등 서비스업 현장에서는 이런 「실질적 실업자」 가 매우 많다. 노무자종합연구소가 2월에 전국 20~59살의 파트타임•아르바이트 취업자 6만 49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총무성의 노동력조사를 이용하여 추계해 보았더니, 21년 2월 시점에서 전국의 「실질적 실업자」는 여성이 103.1만 명, 남성이 43.4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약 1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런 상식을 벗어난 블랙 노동을 강요받아야 하는 가인데, 이는 입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근무 날짜를 줄인다면 휴업수당을 주세요” “그렇게 되면 먹고살기가 힘드니 다른 알바와 병행하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 고용주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근무 날짜가 더 줄어들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해고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게 되어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노동력 착취 구조는, 블랙 기업에서 상식을 벗어난 근무 형태를 강요받아도, 그냥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파견 사원이나 알바들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이처럼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산업이 유감스럽게도 일본에는 무척 많다. 좋고 나쁨의 얘기가 아니라 이런 사실은 속일 수 없는 일본의 모습이다.

물론 이처럼 얘기한다고 해서 “하이 소우데스까?” 하며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블랙 기업 같이 나쁜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일본인이 착취와는 관계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다만 일본의 시스템이 블랙 기업의 그것과 같다는 뺴도 박도 못하는 증거의 하나라 사실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정신론」이다.

■ 이름뿐인 관리직

블랙 기업의 특징 중의 하나에 「정신론 강요(무장)」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회사는 가족」 「감사를 잊지 않는다」 등의 파워 워드를 연호하며, 개인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세뇌를 해가며 과중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을 ‘자신의 의지로’ 행하도록 조정한다.

또한 「이름뿐인 관리직」처럼 책임감이 있는 듯한 직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런 식이면 신뢰받는 리더가 못 된다」며 부추기며, 정신론 강요를 「밑」의 인간들에게 파급시킨다.

사실은 이것도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서 괴로워지면 질수록 이와 같은 「정신론 무장」에 의해 성가신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움직임을 활성화시킨다. 그 최고의 사례가 도쿄도가 새로이 감염대책으로 들고나온 「코로나 대책 리더」이다.

이것은 도쿄 내의 음식점 점장이나 점원 중에서 인터넷으로 감염대책 포인트를 배운 후, 솔선해서 감염방지책에 착수하는 「코로나 대책 리더」를 등록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점 감염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가 아니겠는가」라 느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으나, 「리더」가 된다고 해서 무언가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 회식을 하지 않는 손님에 대해 「나는 코로나 대책 리더인데」 라며 스티커를 보여주어도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식으로 냉소당할게 뻔하다.

그러면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가 하면, 이자카야 측에 책임감을 떠넘기어, 자신들이 스스로 손님에게 「마스크를 해주세요」 라며 주의를 주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녁 뉴스를 보면, 코로나 대책 리더에 등록했다는 이자카야 점주가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내가 손님의)생명을 맡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제 알겠지만, 「코로나 대책 리더」라는 것은 블랙 기업에서 말하는 「이름뿐인 관리직」과 똑같은 것이다.

직함과 책임을 부여하기만 하고 권한이나 대가는 일절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 가진 건 몸 밖에 없는 개인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몰아넣고 난국을 빠져나가 보려고 하는 전투를 일본의 위정자들은 참 좋아한다.

「간바레」 「지금이야말로 하나로 뭉치자」고 선동만 하고 있으면, 근본적인 대책이나 시스템 개혁 따위 손대지 않아도 된다. 즉 개인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김으로써 「현상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이자카야 측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 「솔직히 이런 방식에 위화감을 느낀다. 점포마다 자기 방식대로 대처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라의 대책으로서 분명하게 해주는 게 좋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의 부담이 현장으로서는 너무 무겁다」라는 의문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일본인의 곤죠(근성)가 부족하다

코로나가 되고 나서 일본 사회는 전보다 더 「곤죠根性」 나 「기합気合」을 들먹인다. 서구보다도 감염자 수가 적은 것은 「일본인이 자숙하며 노력했기 때문」. 반대로 조금이라도 감염자가 늘어나면, 「젊은이들이 느슨해졌다」.

우리 모두 한 팀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코로나를 반드시 격퇴할 수 있다. 그런 고교야구팀 슬로건과 같은 무드가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수상의 연설도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전력을 다해 대처하겠습니다」 는 식의 기합을 강조하는 언설로 일관한다.

일본인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정신주의에 경도한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럼 가운데 「GNP가 도무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요즘 일본인의 곤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떠들기 시작할 날도 그리 멀리 않은 것이 아닐까.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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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음악과 부자의 갈등 해소와 로드무비와 로맨스를 곁들인...

 

종합선물세트는 항상 그렇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어릴적 그렇게 받고 싶었던...

 

 

제목인 코다크롬은 코닥에서 생산했던 리버설(슬라이드) 필름으로,

생생한 색으로 유명하여 많은 사진가들이 애용했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디지탈에 밀려 필름은 설자리를 일어갔고,

결국 2009년 새산 종료 및 2010년 현상서비를 종료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저명한 사진가인-그러나 아버지로서는 0점인- 아버지와

아버지와 연을 끊고 지내던 아들이 함께

아버지의 마지막 코다크롬 필름을 현상하러가는 여정을 그린다.

 

영화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시대를 주름잡았던 필름의 마지막을 병치하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마지막 필름속에 담긴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따스한 시선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공 커플의 맺어짐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의 상징일테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화는

코다크롬으로 찍었다며 이국의 풍경 사진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대부분이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으로 보이는데,

주로 인도와 티벳이 배경이다.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코다크롬의 단종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엔딩크레딧과 함께 지나가는 이국-하지만 내가 있는-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코다크롬의 종료는 사진의 짧은 역사를 돌아볼 때, 

[더이상 발견할 <새로운> 세계 없음]의 선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세계는 언제나 거기 있어왔었던 세계였었지만.

 

인도에는 이런 친구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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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는 <The Devil All The Time>.

 

악(마)은 언제 어디에나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느낌이 살짝 다르다.)

 

영화는 종교와 성의 광기와 폭력, 그리고 복수에 대한 이야기.

 

극중에 찬송가가 나오는데, 곡조와 가사가 낯이 익다.

 

 

 

<Are You Washed In The blood>

 

Have you been to Jesus for the cleansing power?

Are you washed in the blood of the lamb?

Are you fully trusting in His grace this hour?

Are you washed in the blood of lamb?

 

[Chorus]

Are you washed in the blood,

In the sould cleansing blood of the Lamb?

Are your garments spotless?

Are they white as snow?

Are you washed in the blood of the Lamb?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써>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지역 배정으로 기독교 재단 고등학교에 진학했었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박자에 맞춰 박수까지 쳐가며

하루에도 몇번씩 이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피로 죄씻김을 한다는 섬뜩한 가사와 다르게,

노래가 꽤 뽕기가 있다. (영화에서도 컨트리송 느낌이다.)

 

교원 임용이 되려고 해도 교회를 다녀야했고,

교직원중 다수는 장로, 전도사, 목사 등등의 직함을 갖고 있었고,

학급임원이 되고자 해도 거짓으로라도 집근처 교회 이름을 적어내야했었다.

 

수업시간에 졸아도 마귀역사, 친구와 장난을 쳐도 마귀 역사...

 

친구들의 영향으로 7-80년대 Rock음악에 눈을 떠가던 내게

Sex pistols의 <Arnachy In the U.K>의 첫마디  "I am an anti-christ!" 가 

고등학교시절 내게 좌우명처럼 되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찬송가를 부를때마다 등장하는 예수는 모두 마귀로 은총이나 은혜는 모두 죄악으로

가사를 바꿔부르곤 했었고, 그모습을 본 독실한 친구(지금은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다)는

(타락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도 했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짧은 노래 한소절이지만

결국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종교를 빙자한 광기이든, 혹은 지극히 본능에 충실한 욕망이든,

 

자신이 저지른 죄는 자신의 피로 죄씻김을 할터이다.

 

다만, 어쩌다 심판자가 되어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손에 묻힌 피를 어떻게 씻을 것인가..?

 

궁금증을 남기며 영화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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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영화.

 

마침 책꽂이에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이 보이고,

넷플릭스에 이안 감독의 <이성과 감성, 1995>가 보이길래,

소설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였다.

 

우선 원제 <Sense and Sensibility>에서 Sense가 통상적으로 쓰이는 "지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번역된 것이 의아하여 찾아보니, "S"ense and "S"ensibility 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처럼 제목에 묘를 더했다는 의견도 있고,

당대에는 문학적으로 "Sense"를 이성(Common Sense의 맥락에서의)의 문맥에서

많이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쪽이든, 영문학자들이 고민해서 내놓은 번역일테니 그렇다 치고..

 

소설과 영화의 비교는 조금 이따가 하도록 하고,

우선 소설을 읽으면서 책에 등자하는 시대적 윤리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들었다.

소설은 한마디로 하면 영국 중산층(젠트리..니 사실상 귀족) 자매의 결혼 대작전인데,

지적이며 사려깊은 언니인 "엘리너"와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동생 "메리앤" 둘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여기서 문제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남자들인데, 하나같이 문제투성이인 남자들이다.

엘리너와 맺어지는 에드워드는 사정이야 어쨌든 양다리를 걸쳐 두 아녀자를 희롱하는 인물이고,

메리앤과 썸을 태웠던 존 윌러비는 바람둥이에 난봉꾼이며,

결국 메리앤과 이 되는 브랜든 대령은 품성으로는 더할나위 없는 인물이나,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사생아를 거두어 키우는 비밀을 품고 있다.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남자들, 특히 에드워드와 윌러비에게 면죄부를 주는 과정인데,

에드워드는 양다리중 한명이었던 루시가 빈털털이가 된 에드워드를 버리는 속물적인 선택을 통하면서

자동으로 엘리너를 사랑할 수 있는 면죄부를 받게 되었고,

윌러비는 메리앤한테는 진심이었는데, 부득이한 현실때문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는 식.

 

"통속적인 관념을 피하고자 하는 통속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정도의 결코 통속소설 치고는 꽤 지적이고

 다층적인 심리묘사가 넘쳐나는 책의 맥락으로 볼때, 단순히 젊은날의 실수나, 상대방의 배신, 혹은 순수했던 감정

따위로 위 남자들의 과오가 덮여질리 만무한 것은 작가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지 않았을까 싶은데,

굳이 저 남자들에게 형식적으로라도 핑계거리를 주어야했던 까닭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사실 아연실색했던 장면은 윌러비의 고백을 전해 듣고 매리엔이 마음의 짐을 더는 - 윌러비를 용서하는- 장면.

물론 그런 고백 따위로 윌러비의 잘못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엘리너의 단서가 붙긴 하지만.

(이런 점에서 볼때 확실히 엘리너는 작가의 분신인 느낌이 강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소설 같으면 엘리너와 브랜든 대령이 맺어지는 전개가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했다.

 

이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감독이 대만 출신의 이안감독인지라, 과연 서양의 고전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는데,

크게 모험하지 않는 방향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에드워드에게 면죄부를 주는 설정도 여전하고,

다만 윌러비가 내사랑은 메리앤 뿐이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삭제되었다.

아무리 원작에 있다지만, 아닌밤중에 찾아와 진심을 고백하고, 매리엔이 안도하고,

그리고 브랜든 대령과 결혼하는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화면에 옮기기는 매우 힘들었을듯.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충실히 묘사되고 있는

에드워드가 루시와 헤어졌다는 이야기에 기뻐 어쩔줄 모르는 엘리너...

만약 옆에 있었다면 한마디 속삭여 주고 싶은 한마디.

 

"이봐 엘리너, 당신은 좀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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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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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악의 무리들의 활극 앞에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을 열연했던 토미 리 존스가

 

노인비하(?)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탓일까?

 

노익장을 발휘해서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를 만들었다.

 

서부의 극심한 역병과 기근, 그리고 가정 폭력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3명의 마을 아낙들.

 

그리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오와까지 장도에 오른 여장부 커디(힐러리 스웽크)

 

그리고 커디덕에 목숨을 구하고 이들을 아이오와까지 운송할 부랑자 브릭(토미리 존스)

 

영화는 3명의 아낙의 비참한 삶의 모습, 그리고 남편/아버지들의 만행을 비추며

 

이들의 정신 이상이 단순한 역병이나 기근이 아닌

 

남성들의 폭력에 의한 것이라는 암시하는 동시에

 

커디와의 여행에서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커디가 자신의 순수한 도덕관에 스스로 무너져 극단적인 선택을한 그 순간부터

 

영화는 이 척박한 서부에서 여자가 설 곳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브릭이 커디에게 일말의 죄의식과 의무감을 느끼는가 싶었지만, 

 

결국 커디가 남긴 돈이 탕진되는 순간, 다시 원래의 탕아로 돌아가는 결말.

 

그렇지 결국 사람 고쳐 못쓴다고 했던가.

 

 

 

시종일관 클리셰를 비틀면서 언뜻 여성주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관찰자이면서 이들을 구원(?)해내는 남성중심 서사로의 귀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어도,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덧1. 처음에 다소 찌질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토미 리 존스가 극중 어느 순간부터는 

 

목소리부터 진지함이 깔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역시 주연이라....

 

 

덧2.  힐러리스웽크가 퇴장하는 순간.. 왠지 모를 토미 리 존스의 주연 욕심인가 하느 느낌이 들어

 

쓴웃음이 절로.. :) 

 

 

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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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장기로 불치병을 치유하고 생명 연장이 가능해진 시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인공장기가 워낙 비싸다는 것.

 

물론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월 단위로 장기를 리스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임대료가 밀리면 Repo men이 찾아간다. 장기를 "회수" 하러.

 

 

인공장기 대여와 회수라는 나름 참신한 소재.

 

쥬드로, 포레스트 휘테커, 리브 슈바이버..(잘생기신 분이 왜 이런 역으로...) 캐스팅 좋고..

 

경쾌한 음악 선곡도 나쁘지 않고,

 

무거운 이야기를 적당히 가볍게 풀어나가는 위트도 좋고,

 

올드보이를 오마주한 난장 신이나,

 

아마 감독이 작정하고 넣었을 - 스캐너-러브신도 더할나위 없이 좋았고,

 

한번 더 비틀어주신 반전도 나쁘지 않았는데...

 

다 모아놓고 보니 살짝 아쉽다.....한 5% 정도?

 

로튼토마토 지수가 22점인데.. 이정도까지 갈 영화는 아닌듯한데, 

 

영화의 경쾌함에 비해 다소 유혈낭자한 점-개인적으론 좋았다-

 

무거운 주제의식에 비해 다소 전개가 산만한 점..이 원인이지 싶다.

 

 

극중 신입 Repo man을 담당 국장이 교육하는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야, 장기를 회수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거지"

 

언뜻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이미 주변에 정교한 어휘로 포장된 착취 또는 통제, 그리고 나아가서 회수 시스템을 본다.

 

예를들면..이것은 단순한 공정 합리화 활동이 아닌 고객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입니다...식의...

 

아마 가까운 미래엔 단순히 생리적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 장기뿐만 아니라,

 

신체적 기능을 확장하는 인공 장기, 신체 기관들도 장려되지 않을까?

 

"인공-확장형 신체 기관의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그로 인한 생산성 향상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물론 그 부작용도 여러분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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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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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워터 호라이즌>

 

재난 다큐멘터리로는 나쁘지 않았는데....

 

차라리 사건 전후-수습까지의 과정을 드라마로 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폭발 사건 그 자체로는 이야기거리가 많지 않은데,

 

억지로 쥐어짜다보니 허전한 느낌.

 

 

<차일드44>

 

톰하디, 누미라파스, 개리올드만....

 

아니 대체 이 배우들로 이런 재능 낭비를....

 

 

<블랙 클랜스맨(Blackkklansman, 2018)>

 

애덤드라이버 x 존 데이비드 워싱턴 x 스파이크 리.

 

콜로라도 최초 흑인 경사의 KKK단 가입기.

 

전반적으로 70년대 분위기를 잘 살린 동시에 무겁지 않은 전개..까지는 좋았으나..

 

말미에 다큐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바람에.. 제 3자가 보기엔 다소 얼떨떨한 느낌.

 

 

<밀리언 웨이스 투 다이 인 더 웨스트, 2014>

 

세스 맥팔런의 서부영화 비틀기. 그런데 좀 가볍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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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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