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모아놓고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포스팅이 밀리고 있다.

이발을 해야지 결심한지가 3주가 넘었지만, 연말이라 이래저래 정신없이 지나다보니,

여전히 머리는 덥수룩 하다.

 

쌓여있는 포스팅을 영원히 묻어두기는 아깝고, 밀어내는 차원에서 그간 본 영화들에 대한 촌평 몇마디.

 

우선  경쾌한 좀비 영화 두편. 두 편 모두 좀비가 무섭다기 보다는 불쌍할 정도로 무능력하게 묘사되고 있다.

하기사, 그래서 조지로메로는 <랜드 오브 더 데드>에서 좀비에 빗대어 디트로이트의 노동자들을 묘사했던가.

하나, 아래 소개할 두 영화 모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며 볼 영화는 아니다.

 

<좀비랜드> - 우디 해럴슨의 능청스런 카우보이 연기가 포인트. 빌 머레이도 카메오 출연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이경규쯤 되려나, 미국 사람들은 많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경쾌한 전개와 위트, 그리고 일탈의 대리만족으로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영화. 살짝 상처입은 네 영혼들의 경쾌한 좀비나라 생존기.

 

<도그하우스> - 여자만 좀비가 되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뛰어든 7명의 장년남. 내심 여성들의 통쾌한 복수가 이어질까 기대했었지만, 왠걸 영화는 남자들이 얼마나 어린애들 같은지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을 뿐. 여자 좀비들을 상대로 보이스카웃 놀이에 정신이 팔린 철없는 남자들. 그래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철이 안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재난영화의 대부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를 감상.
흑인 대통령과,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가 아프리카 희망곶이라는 데서,
아프리칸 흑인 파워의 성장이 우선 느껴지고..(일단 등장하는 흑인은 모두 착하다!)
중국의 성장과 티벳은 중국이라는 암시도 은연중 하는 것 같다.
한국은 등장도 안하고....
물론 제작사가 컬럼비아 픽쳐스(소니)인 탓도....
2시간 40분은 다소 지루했다.

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우디해럴슨은 역시나 반갑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결혼 때가 다가와서일까...심하게 공감되는....

약속시간을 때우려고 보던 중이라 끝에 20분 가량을 보지 못했는데,

심히 궁금하다.

<팬도럼>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지구인들의 대규모 집단 이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생각난다.

믿었던 선장(?)이 악마라는 컨셉은 <이벤트 호라이즌>의 샘 닐을 연상시키는데,

아무래도 본격 호러물이 아닌 이상 샘 닐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충분히 흥미 있었고, 괜찮았던 구성의 영화.

SF소설 <매로우>(하드  SF르네상스1 수록)도 떠오른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조지 R. R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에서 주인공들이 찾는 항성간 이동 생명체 "볼크린"이

새 지구를 찾아 우주를 수천년 여행하는 <파피용>이었다..라는...

<나이트플라이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포스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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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트릭트9> 이라는 신선한(?) 작품 덕에, 브루스윌리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관심밖으로 밀려난 <써로게이트>. 금요일 저녁 6시 30분 타임, 영통 메가박스에서 가장 큰 M관 상영중이었지만, 나를 포함 딱 2명이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렇게 극장을 전세 냈던 적은 5년전 <에일리언 2020, Pitch Black (빈 디젤이 본격적으로 액션 배우로 나선 영화)>을 조조로 4명이서 관람했던 이후로 가장 적은 숫자.

 

 

 영화는 인간에 의해 조종되긴 하지만, 인간을 대체할만큼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진 로봇, "써로게이트"-영어로는 대리, 대행자, 라는  뜻이다-가 실용화된 근 미래를 그리고 있다. 사람이 집에 누워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생각만 하면, 로봇이 실제 사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사람처럼 아프지도 않고, 외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혹은 원한다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도 가능하니, 너도 나도 "써로게이트"로 자신을 대신할 "대리인"을 원할 것은 자명한 사실. 이로 해서 전 세계의 99%의 사람들이 "써로게이트"를 이용하고, 덕분에 범죄도, 차별도, 사고도 사라진 유토피아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방구석에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로봇 조종이나 하는 인간미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나를 대신하는 "가상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다크시티>, <엑시스턴즈>, <13층>, <너바나>...그리고 결정적으로 <매트릭스>까지 여러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재면에서는 다소 진부한 것도 사실이지만, "써로게이트"들의 매끈한 고무피부, 약간 어색한 움직임, 써로게이트 충전소, 써로게이트들 사이를 맨몸으로 지날때의 현기증의 표현 등등 영화의 디테일은 진부한 소재를 넘어 눈을 즐겁게 해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들의 행동보다도, 영화의 설정들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큰 줄기는 "내가 원하는 나를 이루어줄 수 있는 <가상의 나>가 생긴다면, 정말 범죄도, 차별도 사라지는 멋진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써로게이트들의 모니터링과 통제 등에 따른 인권침해를 보여주긴 하지만, 써로게이트 자체는 살과 살이 닿는 인간적인 측면-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부관계-의 약점을 제외하면 무척 긍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영화에서와는 다른 "디스토피아"가 떠오르는데, 두어가지만 짚어보려한다.

 

1. 빈부의 격차, 그리고 차별은 써로게이트로 해서 심해질 것이다.

 써로게이트는 상품이다.(영화에서는 VSI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즉, 부유한 사람은 비싸고 좋은 모델을 살터이고, 가난한 이들을 어쩌면 구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가격의 제품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구입하더라도, 비싸고 좋은 모델과 확실히 구별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리고 비싸고 좋은 능력의 써로게이트로 해서 처리하는 일의 양이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수준이 달라진다면, 저급 모델을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점점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사람을 판단하는 모든 척도는 "얼마나 좋은 써로게이트"를 가졌느냐가 될 것이다.

 

2. 범죄는 증가할 것이다.

 모든이들이 써로게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살인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내리쳐도, 부서지는 것은 상대방의 로봇일 뿐, 몇푼 물어주고 말자며, 상대방의 써로게이트를 파괴하는 행위가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익명의 공간-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공격성을 볼 때, 써로게이트 뒤에서도 역시 유사한 공격적인 성향이 증가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3. 강력한 감시와 통제 체계가 구축될 것이다.

 영화에서도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써로게이트의 모든 영상과 기능을 중앙에서 관리할 수 있다면, 그 감시와 통제는 오늘날의 CCTV니, 핸드폰감청이니 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아마 써로게이트로 보내지는 영상이나 소리를 컨트롤 해서 사용자에게 무의식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조차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적다보니 영화보다 개인적인 "썰"이 길었다. 이제는 컴퓨터, 핸드폰, 각종 모바일 기기등이 없는 삶을 하루도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불과 20-30년전에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상이다. 어린시절 공상과학소설 속의 멋진 광경들을 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된 오늘, 과연 나는 그것들로 인해서 행복한 것일까. 그리고 20년, 30년이지나, 써로게이트의 세상이 다가 왔을 때,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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揮景: 휘경, 사라지는 풍경

20090918-20091008

통의동 보안여관

 

(이하 모든 이미지 출처는 neolook.com입니다)

 

 

 

  경복궁 옆길, 대림미술관, 진 아트 갤러리 등 제법 번듯한 건물이 늘어선 길 끝 코너에 누추한 건물이

두 개 보이는데, 하나는 브레인 팩토리 이고, 또 하나는 보안여관이다. 과거 서정주가 머물며 집필활동을

하기도 했다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보안 여관은,  일맥문화재단의 부설 연구소인 (주)메타로그 아트서비스

에 의해서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행사로 건물의 앙상한 뼈대

가운데서, 휘경동의 재개발을 주제로 하는 휘경, 사라지는 풍경展이 열렸다.

 

 

 휘경동 인근에 작업실을 얻었거나, 거주중인 작가 6명 강지호, 권용주, 김주리, 김태균, 김형관, 신은경은

2008년부터 동네의 재개발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 <어디 사시나요?>를 진행했다.

이들은 300여명이 넘는 이웃들을 만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고, 외대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작업실을 떠나 집단적인 예술의 완성을 이루어갔다고 한다.

 

 

 재개발 정책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용산참사를 비롯해서, 전국이 재개발로 들썩이는 까닭에,

주위를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재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예술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 또한 예술이라긴

뭐하지만, 돌탑을 쌓아올리는 중이니까..., 한데, 이런 개인적인 작업들의 한계는 명백한데, 그 행위로 해서

직접적인 변화나 사회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현장의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보탬 혹은

영향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인적인 '감상'차원에서, 재개발이라는 소재를 '사용'

하고 있을 뿐이다.

 강홍구-은평뉴타운에관한 어떤 기록

Dream  House - 안규철/최원준 등

 

(물론 갤러리를 찾은 관객들, 언론에의 소개로 나타나는 2차적인 영향은 짚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작업이 아니라도, 개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보탬이 될만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최소한의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참고. 위 링크의 작가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절대 아님을 노파심에 부연한다.)

 

 

그런 측면에서 직접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당사자들의 행위를 예술의 전면으로 부각시켰다는 것 만으로도, 이들 6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s. 6명의 작가가 너무나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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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11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5.07.11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냐궁 2015.07.03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변이 너무 늦은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 글이 보탬이 된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참 이미지 출처는 네오룩입니다~~~)

 

City_net Asia 2009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20090930-20091122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F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City_net Asia 2009>展은 아시아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봄으로써, 현대 미술에서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격년제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전시 소개 글 중에서..

 

서울 시립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동경 모리미술관, 복경 금일미술관이 각각

양날의 검, 새로운 대륙 이스탄불, 오프 센터, 퇴적작용이라는 타이틀로 섹션을 나누어

도시별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김종구, 최수앙, 이명호 등 유명세를 탄 작가들이 대거 출품하였는데,

각각의 작업이 지나치게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탓에, 너른 공간에 작품이 흩어져있는

느낌을 주는 데다, 과연 이 작업들이 기획의도에 적힌 대로 "한국 현대사회에 자리하는 정치,

문화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병호는 이전 작업들로 볼때 직접적인 시대 현실을 주제로 한다기 보다는

물질의 변화, 혹은 순환을 통해 삶을 고찰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최수앙의 경우도 구체적인 시대 상황보다는 다소 개괄적인 측면에서 사회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명호의 경우는 가장 생뚱 맞은데, 애초에 미학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작업인 까닭에,

어떻게 해도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과는 관련을 짓기가 어려워보인다.

 

백번 양보를 해서, 한국의 현대사회라는 것이 이젠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 있으며,

과거의 치열했던 외적인 이슈들은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사실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개인화된 내적 이슈 혹은 보편적인 문제들이 예술작품의 주제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전제하에

작업이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작업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창원의 녹차 그림에서, 김종구의 철가루 그림에서

관객은 대체 어떤 문제의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측에서 내놓은 작업들은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질적인(유명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서울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정윤석의 설치 작업

<Video Kill the Radio Star>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게다가 코미디프로 라디오 스타때문에 더더욱)

익숙한 음악 Video Kill the Raido Star의 뮤직비디오인 정윤석의 작업은,

미국을 상징하는 만화 캐릭터들, 코카콜라 상표, 미국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들,

레이건 대통령의 사진, 베트남전, 냉전시대의 사진 등을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중간에 잠깐씩 흘러가는 88올림픽 마스게임 영상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전세계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이라 할만 하다.

 

쉬넬 오즈멘&엘칸 오즈겐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

할레 텐걀 <횡단면>

 

한편 이스탄불 섹션이 오히려 서울의 주제인 시대정신에 부합할만한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일단 절반정도의 작업들이 영상물인데다가, 섹션 어디서나 보이도록 크게 전시된 쟈난 세놀의

<마침내 당신이 내안에...>라는 설치 덕분에 비엔날레같은 분위기마저 들게했다.

 

쉐넬 오즈멘&엘칸 오즈겐의 <테이트모던으로 가는 길>은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영상으로,

터키의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귤슨 카라무스타파의 <내면으로부터의 인식>은

어린시절의 가정 안에서의 기억과, 집 밖, 광장에서의 사건의 영상들을 재구성하고

교차시키면서, 개인에 비춰진 역사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할레 텐걀의 <횡단면>은 이스탄불에서의 삶을 독백하는 영상인데, 화자의 가족이

이스탄불에 이주해오게된 역사, 그리고 과거 오스만 시대에 이스탄불의 이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이스탄불에 모여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스탄불의 시작에서

오늘까지를 관통하는 '어떤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비록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현실과 역사,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지만,

비 서구권에서라면 어느곳이든 상당부분 공유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이 곳 서울의 관람객인 내게 있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앞서 서울 섹션의 주제의식과 작품 선정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도쿄 섹션은 브로셔에 소개된 대로, 확산, 증식, 축적 등의 방식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정형화 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일본적인 시각요소-판화(우키요에)적인 평면성, 장식성, 그리고 오늘날의 망가(만화)까지-를

꾸준히 현대미술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부러운 부분이 아닐수 없다.

 

 

중국, 베이징은 큼직큼직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사진작업, 혹은 사진의 모사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전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로서,

대외에 공개되는 중국의 미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베이징 섹션에 큰 관심을 갖고 보지는 않았다.

(아리랑 꽃씨展 글 참조)

 

 

아시아를 주제로 한 교류전의 성격을 띈 만큼, 각 지역의 특수성을 살펴보고, 또 그 안에서 아시아라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전시의 기획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탄불 섹션은 4개의 섹션 중 가장 빛을 발했다고 본다.

 또 같은 맥락에서, 서울 측은 지나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함으로서, 보여지는 측면의

 화려함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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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01> SF라는 소리에 솔깃해서 네이버 평점을 보니 5점대... 뭔가 심각하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SF니까..봤다. 감독 "마르크 카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있다. 응? 두 영화는 장-피에르 주네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하시다가 독립하셨나? 한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 모두

감독에 장-피에르 주네와 마르크 카로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있다. 알아보니, 마르크 카로는

만화 및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었고, 영화에서는 주로 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장-피에르 주네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분업체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 카로가 홀로 감독에 나섰을 때에는, 내러티브에서 뭔가 부족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데... 예상대로,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ㅡㅡ;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아마도 예산부족

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없었으리라...)에서 분위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약한 이야기를 난해한 영상들로 채워넣다보니, 꾸벅꾸벅 졸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줄거리에서나, 후반부 영상에서나 대니보일 감독의 <선샤인>과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왜 굳이 블로그에까지 소개를 하느냐..하면...

사실, 보면서 10여년전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고,

최고의 3D 영상을 만들어 보겠어 라던 때가 있었다. 당시는 3D 컴퓨터 그래픽이 일반화되지 않던 때라,

모니터 안에서 가상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요새는 그래픽 영상들이 일반화 되면서 3D그래픽은 말 그대로 3D 업종으로 분류가 되는듯..)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을 구실삼은 이유들로 해서 3D 그래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1인 단편 영화를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스토리를 짜놓았는데,

<단테01>을 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스토리를 떠올렸다.

 

 스토리의 이름은 <S.E.E.D>...Search for Earth...어쩌구의 약자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토리 보기


사실 당시 나우누리 SF동호회의 단편 소설 <십자호의 최후>나,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책을 구해서

 보고 싶은데, 보지는 못했고, 우주선의 추진 원리등을 참조..)를 참조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스토리이다.

 

<단테01>을 보면서 십자형태의 우주선, 테라포밍, 빡빡머리 죄수, 살신성인(?)등 여러부분에서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생각들을 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영상을 옮길 의지까지 닮았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나의 의지(?)가..마르크 카로의

그것만큼 대단하지 못하다는게 문제이지만..^^;

(위의 <단테01>의 이미지와  아래 동영상을 비교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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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개인전 - <기억의 서 : K의 슬라이드>

20090924-20091011

브레인 팩토리

 

 

 지난 개인전 <Un-Vanished Memory>展에서 사람이 떠난 빈집에 놓여진 사물들을 스케치 하며,

그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과, 물건들의 역사, 그리고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의 모호한 중첩을

시도했던 것 처럼, 이번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展에서는 집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4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단서로, 역시 그것의 주인과, 작가와, 관객의 기억들을 짜집어 나간다.

 

  전시된 K씨의 흔적-편지, 엽서, 일기, 등을 살펴보며, K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그 당시는

저랬을 법도 하겠구나,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왔을까, 저 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갔었을까, 이 사진에서

K씨는 누구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K씨의 흔적에 젖어들다가, 문득 전시 소개글을 읽어보니

슬라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작가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이미지들마저,

작가에 의해 모호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헛'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법원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갤러리라는 사실, 즉 내가 해야 할 게임은 '탐정 놀이'가 아니라

'기억 만들기'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서, 작가의 간극 매꾸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로 한다.

40여년전 K씨의 기억과 오늘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매꾸어질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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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아트 선재에서,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주최로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놓고, 프랑스 제8대학에서 오신 석학들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진행되었지만, 나는 결혼식이 오전에 있는 바람에,
2시경부터 들어가 주형일 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발제글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짬은 안되지만, 간략히 소개/느낌을 적어보자면,

 주형일,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
 - 대중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였는데, 다소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듯 했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행위는 자본이 좋아하는 아주 착한 자발적인 무보수 노동자에 비해진다는 것,
 공동체(즉, 세력)를 형성해서 인터넷을 소유한 자본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 제시나,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통한 저작권의 무력화, DDOS를 연상시키는 사이트 공격 등의 극단적인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공생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요구하기는 (발제자도 인정했다시피)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 시간의 이영준 교수 말마따나, 자본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보다는
 자본에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쥘리앙 세레쥬, <자본주의의 사진적 재현에 관하여: 도시와 일상>
 - 자본주의를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일상성'으로 초점이 모여지는 듯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해 나가며,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지엽적이라고 보이는 일상적인 것들이 바로 도시의 모든 것 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은 반대로 말하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에 Eric Sadin의 문화분석적인 사진을 모범예(?)로 제시했다.
 한데, 저기서 도시나, 자본주의를 빼고 '삶'을 넣어도 말이 그대로 될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삶, 도시의 삶이기 때문일까?
 (참고로 본문과 상관은 없지만 쥘리앙 세레쥬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서동진, <생명의 이미지, 자본의 이미지>
 -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CT, MRI의 의학영상에서 부터, 첨단의 의학영상분야까지 소개를 하면서,
 인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병의 진단을 넘어서서 병의 확률을 이야기 하며
 의료행위와 그 영상들을 자본종속적으로 변화시켜 간다는 이야기. 달변과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웠다.

 박상우, <사진 복제를 통한 개인의 식별>
 - 용의자 검거에 사진이 도입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설명과, 그 사진들의 복제되기까지의 과정들.
후반부는 주로 프랑스 경시청의 베르티용(최초로 사진을 용의자 수사에 도입했음)의 노력에 촛점이 맞춰졌다.
 발표하느라 진땀은 빼셨는데, 다소 발표 스킬이 부족하셨던듯..^^;





 

ps.1 발제글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인 관계로, 연락처만 적어놓고 왔다.
내가 듣지 못한 앞서 발제글중, 프랑스와 슐라쥬의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관계들>은
번역도, 통역도 난해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ps.2 장내에 들어서면서 놀랐던 것은, 대략 2/3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청중. 연령대도 다양한듯 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예술(or 미학)인구에 비해..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으니..음...
뒤에 앉아 있던 두 여자분은 통역기를 귀에 붙였다 땠다 하며, "통역이 너무한데? 이렇게 빼먹어도 되나?"
를 연발하고 있었는데..그저 부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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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 2009 서용선
20090703-20090920

아리랑 꽃씨
20090717-20090927

국립현대미술관



 간만의 국립현대 미술관 나들이.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과   일본/러시아/중국 거주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리랑 꽃씨>展을 보았다.
서용선 작가는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이어서 단종의 폐위를 다룬 역사화와
도시인들의 군상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위의 도록에서도 느껴지듯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과감하게 쓰여진 색채와 검은 선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막 분출될 것만 같은 억눌린 꿈틀거림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했다라는 부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계유정란(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사건)을 다룬 역사화와 당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그림이
단순히 역사화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굳은 표정과 붉고 날카로운
눈매는 이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사명감, 그리고 실천적, 현실참여적 작가로서 민중미술
계보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서용선 작가는 근래 철암의 폐광지역에서
철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매월 세째주 토요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도슨트의 설명을 비롯 리플렛의 내용 등 전시 전반에 걸쳐서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인
시대의 현실보다는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실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실존, 실존적 고통,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등등..)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고, 또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부분에서의
공감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시대 현실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업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조차 든다. 말많았던 MB코드 인사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덕에 말이다.)


<아리랑 꽃씨>展은 일본/중국/러시아에 거주중인 1/2/3세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중에 벌어진 사건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1세대 한인 작가 한락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작품 철거를 알리는 패널만이 존재할 뿐,
벽에 남은 못자국만이 작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장처의 특별한 사정으로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라는데,
특별한 사정인 즉슨, 지난 7월 5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유혈사태로 바짝 긴장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이 모일만한 장소는 사전 차단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혹시나 1세대 한인
작가의 작품앞에 모여들 한민족들을 걱정하여 작품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겠지만,
예술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주시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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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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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 앞 프리모바치오 바치의 독주를 견제할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등장!
 전통의 강호 노리타가 오픈했다. (신촌의 일프리모나 프리모바치오 바치가 노리타의 조리장이 독립해서
가게를 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진득한 크림스파게티의 원조격으로 통하는 노리타!)

 일단 프리모바치오 바치에 비해 자리수가 많고, 인테리어도 분위기 있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맛이면
서비스로 승부하겠다는 의지인지, 프리모바치오 바치에 비하면 황송할 정도의 종업원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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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판 쿠폰으로 주문한 베지타리아노 샐러드(\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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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바치오 바치의 빠네에 해당하는 코페르토(\11,000)
양이 다소 아쉬웠다. 물론 빵까지 다 먹는다면 무척 배부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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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곤졸라 피자 (\13,000)


일프리모-프리모바치오바치-노리타
맛과 가격은 세 곳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특히 같은 상권인 프리모바치오바치와 노리타는
슬슬 서비스 경쟁으로 돌입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프리모바치오바치의 경우 매일 2-3시간씩
대기줄이 있는 걸 보면, 대기줄이 짧아지는 것 외에 별 타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외출이 뜸했던 것인지, 아직 노리타 홍대점 오픈에 대한 홍보가 덜된탓인지,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기줄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론 노리타를 이용하게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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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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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순형이 준 CJ 외식상품권이 있어서...무엇에 쓸까 무척이나 고민했더랬다...

대표적인 사용처로는 VIPS, 피셔스 마켓, 씨푸드 오션, 뚜레쥬르, 투썸 플레이스 등등이 있는데...

최근 씨푸드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하향세인데다가, 피셔스 마켓이나, 씨푸드 오션이나 평이 너무 좋지 않았고,

VIPS는 무난하긴 하지만, 밍군이 꺼려하는 관계로 패스....그렇다면 결국 뚜레쥬르에서 빵이나

사먹을 운명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사용처 중에 The Place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홈페이지(http://www.cafetheplace.com/)를 찾아보니, 위치가 광교와 광화문이라는 애매한 점은 있지만,

나름 가격대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괜찮아 보여서 방문 결정! 지난 일요일 점심에 광교점을 다녀왔다.

메뉴나 음식 컨셉은 Mix&Bake를 많이 참고로 한 듯 했고, (서울대에 있는 The Kitchen도 같은 컨셉..)

분위기로는 적당히 캐쥬얼하면서 살짝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게, Mix&Bake나 Kitchen 보다는 한수 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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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g 당 2,500원 하는 샐러드 바. 소심해서 팍팍 못담고 쪼꼼씩쪼꼼씩..^^ 3,700원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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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 크림 파스타(\9,800). 노리타나, 일프리모, 프리모바치오 등의 진득한 크림소스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먹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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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도 나도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멕시칸 피자(\7,800).  이처럼 야채가 듬뿍 올라간 피자는 내가 아는 한 삐에뜨로의 마르게리타가 유일. 하지만, 삐에뜨로 매장들이 하나 둘 철수하면서 아쉬웠었는데, 이곳에서 적당한 대안을 찾은 느낌^^  가격도 저렴!(\7,800).

 종로에 먹을만한 맛집 하나 개척해서 뿌듯했던 하루^^ (거기다 계산도 상품권으루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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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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