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01> SF라는 소리에 솔깃해서 네이버 평점을 보니 5점대... 뭔가 심각하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SF니까..봤다. 감독 "마르크 카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있다. 응? 두 영화는 장-피에르 주네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하시다가 독립하셨나? 한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 모두

감독에 장-피에르 주네와 마르크 카로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있다. 알아보니, 마르크 카로는

만화 및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었고, 영화에서는 주로 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장-피에르 주네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분업체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 카로가 홀로 감독에 나섰을 때에는, 내러티브에서 뭔가 부족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데... 예상대로,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ㅡㅡ;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아마도 예산부족

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없었으리라...)에서 분위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약한 이야기를 난해한 영상들로 채워넣다보니, 꾸벅꾸벅 졸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줄거리에서나, 후반부 영상에서나 대니보일 감독의 <선샤인>과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왜 굳이 블로그에까지 소개를 하느냐..하면...

사실, 보면서 10여년전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고,

최고의 3D 영상을 만들어 보겠어 라던 때가 있었다. 당시는 3D 컴퓨터 그래픽이 일반화되지 않던 때라,

모니터 안에서 가상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요새는 그래픽 영상들이 일반화 되면서 3D그래픽은 말 그대로 3D 업종으로 분류가 되는듯..)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을 구실삼은 이유들로 해서 3D 그래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1인 단편 영화를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스토리를 짜놓았는데,

<단테01>을 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스토리를 떠올렸다.

 

 스토리의 이름은 <S.E.E.D>...Search for Earth...어쩌구의 약자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토리 보기


사실 당시 나우누리 SF동호회의 단편 소설 <십자호의 최후>나,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책을 구해서

 보고 싶은데, 보지는 못했고, 우주선의 추진 원리등을 참조..)를 참조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스토리이다.

 

<단테01>을 보면서 십자형태의 우주선, 테라포밍, 빡빡머리 죄수, 살신성인(?)등 여러부분에서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생각들을 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영상을 옮길 의지까지 닮았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나의 의지(?)가..마르크 카로의

그것만큼 대단하지 못하다는게 문제이지만..^^;

(위의 <단테01>의 이미지와  아래 동영상을 비교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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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개인전 - <기억의 서 : K의 슬라이드>

20090924-20091011

브레인 팩토리

 

 

 지난 개인전 <Un-Vanished Memory>展에서 사람이 떠난 빈집에 놓여진 사물들을 스케치 하며,

그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과, 물건들의 역사, 그리고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의 모호한 중첩을

시도했던 것 처럼, 이번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展에서는 집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4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단서로, 역시 그것의 주인과, 작가와, 관객의 기억들을 짜집어 나간다.

 

  전시된 K씨의 흔적-편지, 엽서, 일기, 등을 살펴보며, K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그 당시는

저랬을 법도 하겠구나,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왔을까, 저 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갔었을까, 이 사진에서

K씨는 누구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K씨의 흔적에 젖어들다가, 문득 전시 소개글을 읽어보니

슬라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작가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이미지들마저,

작가에 의해 모호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헛'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법원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갤러리라는 사실, 즉 내가 해야 할 게임은 '탐정 놀이'가 아니라

'기억 만들기'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서, 작가의 간극 매꾸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로 한다.

40여년전 K씨의 기억과 오늘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매꾸어질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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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아트 선재에서,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주최로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놓고, 프랑스 제8대학에서 오신 석학들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진행되었지만, 나는 결혼식이 오전에 있는 바람에,
2시경부터 들어가 주형일 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발제글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짬은 안되지만, 간략히 소개/느낌을 적어보자면,

 주형일,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
 - 대중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였는데, 다소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듯 했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행위는 자본이 좋아하는 아주 착한 자발적인 무보수 노동자에 비해진다는 것,
 공동체(즉, 세력)를 형성해서 인터넷을 소유한 자본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 제시나,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통한 저작권의 무력화, DDOS를 연상시키는 사이트 공격 등의 극단적인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공생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요구하기는 (발제자도 인정했다시피)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 시간의 이영준 교수 말마따나, 자본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보다는
 자본에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쥘리앙 세레쥬, <자본주의의 사진적 재현에 관하여: 도시와 일상>
 - 자본주의를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일상성'으로 초점이 모여지는 듯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해 나가며,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지엽적이라고 보이는 일상적인 것들이 바로 도시의 모든 것 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은 반대로 말하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에 Eric Sadin의 문화분석적인 사진을 모범예(?)로 제시했다.
 한데, 저기서 도시나, 자본주의를 빼고 '삶'을 넣어도 말이 그대로 될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삶, 도시의 삶이기 때문일까?
 (참고로 본문과 상관은 없지만 쥘리앙 세레쥬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서동진, <생명의 이미지, 자본의 이미지>
 -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CT, MRI의 의학영상에서 부터, 첨단의 의학영상분야까지 소개를 하면서,
 인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병의 진단을 넘어서서 병의 확률을 이야기 하며
 의료행위와 그 영상들을 자본종속적으로 변화시켜 간다는 이야기. 달변과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웠다.

 박상우, <사진 복제를 통한 개인의 식별>
 - 용의자 검거에 사진이 도입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설명과, 그 사진들의 복제되기까지의 과정들.
후반부는 주로 프랑스 경시청의 베르티용(최초로 사진을 용의자 수사에 도입했음)의 노력에 촛점이 맞춰졌다.
 발표하느라 진땀은 빼셨는데, 다소 발표 스킬이 부족하셨던듯..^^;





 

ps.1 발제글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인 관계로, 연락처만 적어놓고 왔다.
내가 듣지 못한 앞서 발제글중, 프랑스와 슐라쥬의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관계들>은
번역도, 통역도 난해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ps.2 장내에 들어서면서 놀랐던 것은, 대략 2/3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청중. 연령대도 다양한듯 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예술(or 미학)인구에 비해..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으니..음...
뒤에 앉아 있던 두 여자분은 통역기를 귀에 붙였다 땠다 하며, "통역이 너무한데? 이렇게 빼먹어도 되나?"
를 연발하고 있었는데..그저 부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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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 2009 서용선
20090703-20090920

아리랑 꽃씨
20090717-20090927

국립현대미술관



 간만의 국립현대 미술관 나들이.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과   일본/러시아/중국 거주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리랑 꽃씨>展을 보았다.
서용선 작가는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이어서 단종의 폐위를 다룬 역사화와
도시인들의 군상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위의 도록에서도 느껴지듯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과감하게 쓰여진 색채와 검은 선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막 분출될 것만 같은 억눌린 꿈틀거림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했다라는 부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계유정란(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사건)을 다룬 역사화와 당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그림이
단순히 역사화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굳은 표정과 붉고 날카로운
눈매는 이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사명감, 그리고 실천적, 현실참여적 작가로서 민중미술
계보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서용선 작가는 근래 철암의 폐광지역에서
철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매월 세째주 토요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도슨트의 설명을 비롯 리플렛의 내용 등 전시 전반에 걸쳐서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인
시대의 현실보다는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실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실존, 실존적 고통,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등등..)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고, 또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부분에서의
공감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시대 현실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업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조차 든다. 말많았던 MB코드 인사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덕에 말이다.)


<아리랑 꽃씨>展은 일본/중국/러시아에 거주중인 1/2/3세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중에 벌어진 사건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1세대 한인 작가 한락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작품 철거를 알리는 패널만이 존재할 뿐,
벽에 남은 못자국만이 작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장처의 특별한 사정으로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라는데,
특별한 사정인 즉슨, 지난 7월 5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유혈사태로 바짝 긴장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이 모일만한 장소는 사전 차단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혹시나 1세대 한인
작가의 작품앞에 모여들 한민족들을 걱정하여 작품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겠지만,
예술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주시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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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 앞 프리모바치오 바치의 독주를 견제할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등장!
 전통의 강호 노리타가 오픈했다. (신촌의 일프리모나 프리모바치오 바치가 노리타의 조리장이 독립해서
가게를 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진득한 크림스파게티의 원조격으로 통하는 노리타!)

 일단 프리모바치오 바치에 비해 자리수가 많고, 인테리어도 분위기 있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맛이면
서비스로 승부하겠다는 의지인지, 프리모바치오 바치에 비하면 황송할 정도의 종업원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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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판 쿠폰으로 주문한 베지타리아노 샐러드(\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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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바치오 바치의 빠네에 해당하는 코페르토(\11,000)
양이 다소 아쉬웠다. 물론 빵까지 다 먹는다면 무척 배부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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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곤졸라 피자 (\13,000)


일프리모-프리모바치오바치-노리타
맛과 가격은 세 곳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특히 같은 상권인 프리모바치오바치와 노리타는
슬슬 서비스 경쟁으로 돌입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프리모바치오바치의 경우 매일 2-3시간씩
대기줄이 있는 걸 보면, 대기줄이 짧아지는 것 외에 별 타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외출이 뜸했던 것인지, 아직 노리타 홍대점 오픈에 대한 홍보가 덜된탓인지,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기줄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론 노리타를 이용하게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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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순형이 준 CJ 외식상품권이 있어서...무엇에 쓸까 무척이나 고민했더랬다...

대표적인 사용처로는 VIPS, 피셔스 마켓, 씨푸드 오션, 뚜레쥬르, 투썸 플레이스 등등이 있는데...

최근 씨푸드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하향세인데다가, 피셔스 마켓이나, 씨푸드 오션이나 평이 너무 좋지 않았고,

VIPS는 무난하긴 하지만, 밍군이 꺼려하는 관계로 패스....그렇다면 결국 뚜레쥬르에서 빵이나

사먹을 운명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사용처 중에 The Place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홈페이지(http://www.cafetheplace.com/)를 찾아보니, 위치가 광교와 광화문이라는 애매한 점은 있지만,

나름 가격대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괜찮아 보여서 방문 결정! 지난 일요일 점심에 광교점을 다녀왔다.

메뉴나 음식 컨셉은 Mix&Bake를 많이 참고로 한 듯 했고, (서울대에 있는 The Kitchen도 같은 컨셉..)

분위기로는 적당히 캐쥬얼하면서 살짝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게, Mix&Bake나 Kitchen 보다는 한수 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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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g 당 2,500원 하는 샐러드 바. 소심해서 팍팍 못담고 쪼꼼씩쪼꼼씩..^^ 3,700원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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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 크림 파스타(\9,800). 노리타나, 일프리모, 프리모바치오 등의 진득한 크림소스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먹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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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도 나도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멕시칸 피자(\7,800).  이처럼 야채가 듬뿍 올라간 피자는 내가 아는 한 삐에뜨로의 마르게리타가 유일. 하지만, 삐에뜨로 매장들이 하나 둘 철수하면서 아쉬웠었는데, 이곳에서 적당한 대안을 찾은 느낌^^  가격도 저렴!(\7,800).

 종로에 먹을만한 맛집 하나 개척해서 뿌듯했던 하루^^ (거기다 계산도 상품권으루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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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리차드볼턴 | 김우룡 역
도서출판 눈빛



 흔히 '소통' 또는 '참여'로 이야기 되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맺음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많은 예술관련 비평서들이 그 관계맺음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 모더니즘(즉, 자기지시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의 맹위는 유효하다.


 단시간내에 예술사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한 '사진'의 경우도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까닭.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업이 '예술'과 구분되기를 바라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의미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위의 질문-사진과 사회의 '관계맺음'에 대한 비평들의 모음이다.
 20세기 사진 비평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의미의 경쟁>은 사진이 미술관을 통해서
모더니즘 미학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예술 장르의 사진에 국한하지 않고,
광고, 언론, 다큐멘터리, 근대 경찰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어떻게 이용되어 왔으며,
그 사진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사적인 담론들과 과연 사진이 표방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상당수가 논문으로 발표된 까닭에 쉽게 읽히는 글들이 아니며, 특히 동성애나, 중남미 혁명에
관한 글들은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해서 다소 접근이 난해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글들이 짚어내는 사진의 역사적, 계급적, 문화적 맥락과 날카로운 비평들은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의 끈기와 인내에 충분히 보답을 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비교적 매끄러운 번역도 그 공로를 기릴 필요가 있다!)

 - 목차 -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사진 인식 / 더글라스 크림프
-사진을 판결하는 자리 -뉴욕 현다미술관 / 크리스토퍼 필립스
(*스티글리츠와 사코우스키의 대결이 볼만하다)
-팩투라로부터 팩토그래피로 -사진에 있어서의 러시아 형식주의 / 벤저민 H.D. 부크로
(*서구 사진사에 밀려 역사속에 묻혀진 러시아 사진을 재조명하는 글로
  '생산주의'-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시각예술의 무장 해제: 무기로부터 스타일로 변천해 간 급진적 형식주의 / 애비게일 솔로몬-고도우

사진은 성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 무엇이 전설을 만들었나: 짧고 슬픈 다이안 아버스의 삶 / 캐슬린 로드
- 어머니로서의 자연, 그리고 말보로 맨: 풍경사진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한 탐구 / 데보라 브라이트
- 그래픽을 통해 본 욕망의 우선 순위: 중산층 여성지의 현대화, 1919-1939 / 샐리 스타인
- 동성애의 맥락: 소수집단의 자기 표현에 관한 문제들 / 잔 지타 그로버

사진은 어떻게 국가와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 기업 연감과 사진 / 캐롤 스콰이어즈
- 드러난 이데올로기와 숨은 이데올로기: 혁명의 두 이미지 / 에스터 패라다
- 미국 동부에서: 리차드 아베든 주식회사
(*최근 상업 사진가들의 예술사진 및 다큐 사진계의 진출이 활발한 우리의 현실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듯한 글!)

사진적 진실의 정치학은 무엇인가
- 사진의 담론 공간들 / 로잘린드 크라우스
(*앗제의 사진은 과연 어떠한 진실을 담고 있는가?)
- 다큐멘터리 사진론: 그 속에서, 그 주변에서, 그리고 그 후에 / 마사 로슬러
(*다큐-타인의 삶을 담는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담론 속에서 움직이는가!)
- 몸과 아카이브 / 앨런 세큘러
(*초기 사진사에서 가장 큰 업적이면서도, 정작 사진사에서는 소외받는 경찰/기록 사진에 대한 논의!)


ps. 사진 관련 비평 서적을 읽을 때 마다 점점 사진 한 장 남기기가 힘들어지는 듯 하다.
    사진에 대해 탁월한 비평을 남긴 수잔 손탁도, 그래서 평생 사진을 찍지 않았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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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lm 2009.03.04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요즘 카메라는 뭐 쓰세요;?

    • 냐궁 2009.03.05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니 a350 쓴다우...
      요새 독일 그동네는 분위기가 어뗘?
      여기는 난리두 아니넹..
      돌아가는거보면 진짜 IMF때보다 더 한거 같어..

  2. calm 2009.03.07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동유럽 폭탄 때문에 위태위태 하죠..
    뭐 그게 터지면 한국이 더 심각한 상황이 되겠습니다만 =_=;
    그럼 환율 문제 때문에 유학 접고 돌아가야 할지도 --;;

[적들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2001년 9월 11일 100여층짜리 고층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장관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주변의 반응은
무척이나 상이했던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누군가는 미국이 희생한 수만명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며 통쾌했다. 나와 친구들도 각 입장을 두고
격한 감정 싸움을 벌인 기억이 있다. 미국 시민이었다면 일단은 무조건 전자의 입장을 취해야 했겠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에, 미국을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이 그때처럼 극명하게
교차했던 적도 없었다.

 사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헐리우드도 시류를 타서, [왜 적들은 우리를 미워하나?]를 묻는 영화들을 대거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스티브 개건이 감독하고, 조지클루니가 열연한 <시리아나, Syriana 2005> 가 있고,
소위 '헐리웃 공식'과 이러한 주제를 접목시키는 영화들, 에드워드 즈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제이미 폭스가 열연한 <킹덤, The Kingdom, 2007>등이 개봉했고,  굳이 이들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많은 영화들에서도,
중동 및 이슬람권을 분쟁 지역-미국에 적대적인-의 코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아이언 맨, Iron Man, 2008>에서도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다)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하는 헐리우드 답게, 영화에 절묘하게 녹여낸 [미국의 적] 코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 세게를 누비며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추상적인 선/악 구도를 제시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미국'의 입장들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까닭에, 미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냉정한 시선의 차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편, 여전히 상당수 중동 및 이슬람권 국가들은 미국 영화의 수입과 상영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예루살렘 쟁탈전을 소재로 화해의 메세지를 전달한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은 많은 중동국가들에서 상영이 허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하 소개할 영화 <트레이터, Traitor, 2008>와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역시 위에서 소개한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이며, 영화의 시선이 미국인들에게로 향할때와, 미국 밖의 사람들(여기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로
향할 때 발견되는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하다.


트레이터(Traitor, 2008)
감독 : 제프리 나크마노프
출연 : 가이 피어스, 돈 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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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버스테러를 계획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테러를 저지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폭탄전문가, 돈 치들)의 이중간첩 스릴러.
많은 이중간첩물이 그러하듯, 성공적인 침투를 위해 주인공은 아군에서도 소수에게만 알려진 극비의 존재이며,
그의 존재를 아는 소수가 그를 배신하거나, 죽임을 당함으로서, 결국 주인공 스스로 양쪽 모두의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는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이중간첩]플롯에 [미국의 적]코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 미정부 요원들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복수를 위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타락한 인물, 혹은 지나치게
순진해서 고뇌따위는 없는 단선적인 인물들로 그려지며, 주인공을 비호하는 미 정부 요원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소수 인명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서 영화가 취하는 시각은 주인공을 둘러싼 양쪽 인물들을 제거해(죽여)버림으로서, "그 어느쪽도 답이 아니다"
라는 양비론을 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손에 묻힌 피는 정당화 되고, 미국은 다시 한번 (테러를 막음으로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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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주인공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인명을 살상하는 방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는 이슬람 율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를 역설하며, 이러한 고뇌속에서 주인공은 이슬람 성자인 동시에, 미국의 수호성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다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역설되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을 벗어나 설득력이 있는지 살펴볼 일인데,
애초에 주인공은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미국 국적에,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아버지의 죽음도, 미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은
 출신과 믿는 종교에서 [미국의 적]들과 공통될 뿐이지, 미국에 대해 하등의 복수심 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아프리카계 이슬람교인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주인공에게 "동족"이라는 개념은 단지 이슬람 신앙으로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범위로 보이며,
애초에 위처럼 나이브한 결론을 내리고 미국을 구원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리라고 본다.

 결국 영화는 애초에 고뇌따위 할필요가 없는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그럴듯한 갈등과 스토리로,
[미국의 적]들에게 평화의 메세지를 역설하기에 다름 아니고, 이것이 '미국産-미制'가 갖는 한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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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다만 영화가 갖는 소기의 성과라면,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 시민인 주인공에게,
FBI요원인 가이 피어스의 입을 빌어 "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라고 인정하는 것 정도랄까?
이부분은 묘하게 오바마 미 대통령이 떠오른다.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감독 : 폴 해기스
출연 :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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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인종문제를 다룬 <크래시, Crash, 2004>의 폴 해기스 감독이 이번에는 이라크전을 치룬
미국 젊은이들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엘라의 계곡"의 은유는
전쟁(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적에 맞섰던 한명 한명의 미국 젊은이(다윗)로 풀이된다.
전쟁에서 승리했고, 살아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상처는, 되돌아 온 평온한 현실에서
그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겁고, 견디기 힘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지를 영화는 묻고 있다.

 다만 지금 리뷰를 작성하는 관객이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데, 미국 주변의 국가들이 느끼기에, 미국 젊은이들은 "다윗"
이라기 보다는 "골리앗"이고, 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국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타국 사람들의 숫자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가 휘두른 폭력과
그 국가에 속한 개인의 희생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영화는 무고한 미국의 '개인'
들이 '무엇을 위해서(석유든, 후세인이든, 화학무기든 간에)' 부조리하게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최소한의 설명을 했어야 했다.

 즉, 영화는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왜?"에 대한 해명은 없고, "희생"에 대한 강조만 하고 있기에
, 제3자인 한국의 검은머리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마도 이같은 사정을 고려했기에, 국내에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라크전을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내에서도 거듭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수지안맞는 이라크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09195 )

 토미 리 존스의 절절한 부정 연기와 여전사에서 돌아와 간만에 열연을 펼치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드라마로서는 훌륭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머나먼 타국의 관객에게 설득하기엔,
미국에 대한 애증의 골이 너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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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린 성조기마냥 미국은 총체적 난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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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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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lstein 2009.02.18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의 총체적 난국보다는....

    현재 대한민국이 더...ㅋㅋㅋ

    어쨌든 현실은 시궁창 -ㅁ-;

이은실 - Neutral Space
대안공간풀
20090130 - 20090210

모리스 두와
가나아트스페이스
20090204-20090210

주명덕 사진 I - 도시정경
대림미술관
20081126-20090208(연장전시중)





이은실 - Neutral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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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에도 참가했던 동양화단의 이단아.
오픈된 전통 가옥들과 구름속의 풍경들, 그리고 털들...털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인용해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아닐까 싶다.




모리스 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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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단편화된 시각의 모음 같아 보인다는 점에서 큐비즘과 맥을 같이하는 듯도 보이지만,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점의 분화보다는 시간의 분화, 혹은 주인공을 둘러싼 '아우라'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그렸을고 고민해보니, 구체적인 형상을 그린 후, 선을 그어 주변 공간을 나누고
비슷한 색으로 칠하는 식으로, 그다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개념이나 철학보다는 시각적인 신선함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상대적으로 짧은 전시기간과 도록의 부실한 서문(그리고 프랑스 관(官)차원에서 작성된)으로 볼때,
한국 미술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적 성격의 전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새로운 시각 보다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영/미/독일권 미술에 비해 프랑스는 시각적인 신선함에
관대한 것 같다는 밍군의 말. 그래서 화가들이 프랑스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나 뭐라나...



주명덕 사진 I - 도시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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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더 이상 사진은 다큐멘터리에 적합하지 않아. 비디오 캠코더를 들고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사진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지" (주명덕의 인터뷰 中)
"이제 우리 주변의 개인적인 것들을 기록하자" (존 사우스키의 뉴다큐멘트展 서문中)

 오늘날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영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듯 한데, 한국 다큐 사진작가중
그 흐름에 가장 충실히 몸담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주명덕이 아닐까 싶다.
서문의 표현을 빌면 '작가의 도시를 향한 시선과 미학이 담긴 사진'으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데,
대체로 광고판들을 빌어 소비의 아이콘을 제시하거나, 건물사이의 공간들을 통해 도시 풍경을 낯설게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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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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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개의 끓는 점
이소/이현민/이혜인/정혜진/허남준
20090114 - 20090201

이예린 - After the Rain
갤러리 나우
20090128-20090203

김선회 - Finding Sun in the City
갤러리 룩스
20090128-20090210


아래 대화는 냐궁과 밍군의 전시 감상을 대화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섯개의 끓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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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 전시 제목 그대로, 전혀 공통점이 없는 작업들인 것 같아.

냐궁: 아무래도 공모전 입상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니까 전체적인 주제는 루즈할 수 밖에 없겠지.
개인적으로는 '이소'의 <순환하는 이야기>라는 작업이 마음에 드네. 익명의 편지돌리기라.....
일방적인 글쓰기라는 편지의 특성 때문에, 하나의 질문에 대해 관객들의 각각 다른 반응들이 재미있어.
한데..100원을 넣고 뽑기를 한다는 것이 재미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포스트잇 붙여놓고
관객들이 글을 쓰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 같지 않아?

밍: 그렇게 한다면 아무래도 참여율이 저조하겠지. '뽑기'라는 것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 정혜진씨의 작업은 무얼 말하려는지 너무 어렵지 않아?

이소,<순환하는 이야기>

이소,<순환하는 이야기>

이혜인, <Shelter-Boat>

이혜인,

정혜진, <토끼풀꽃과 실패>

정혜진, <토끼풀꽃과 실패>

냐궁: 동감이야. 석고로 토끼풀꽃을 만드는 것 보다 팝콘으로 해보는게 더 재미있이 않았을까?

밍: 팝콘 재미있겠다. 강냉이도 괜찮을 것 같아 잘 썩지도 않을테고...

냐궁: 이혜인씨 작업의 주제는 '변화'인가?

밍: 기억, 망각 등등까지 포함한다고 봐야겠지. 금번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젊은모색'展의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거야. 공사 현장의 그림들은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서 그림의 맥락을
어느정도 짚어낼 수 있는데, 검은색으로 지우면서 나열식으로 표현한 그림들은 다소 접근이 어려운
느낌이 있네. 차라리 검은색으로 지우지 말고, 기억들을 레이어처럼 중첩해서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냐궁: 허남준씨의 작업과, 그 작업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전시론에는 어느정도 동감할 수
있지만, '손가는대로'식 작품론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워.

밍: 뚜렷한 의도 없이 덧칠해지는 물감들..., 아마 학교에서라면, 교수님들의 호된 질타를 듣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림에 뿌려진 반짝이들과 바니쉬들은 팔리기 위해 준비된 상품과 같은 느낌을 주어서
거북한 느낌이 들었어.

냐궁: 이소씨의 작업이나 허남준씨의 작업에처럼 요즘 예술의 화두는 관객과의 '소통'일 것인데,
예술가의 설명을 보면 그럴듯 하긴 하지만, 왠지 그들만의 논리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 경우에 이소씨의 '익명 편지돌리기' 작업에 참여해서, 편지의 일방적인 성격이나, 하나의 질문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어. 그냥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거야. 내가 참여함으로 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단 말이지.

밍: 허남준씨의 퍼포먼스-관객은 구경하게 되는-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냥 관객들은 구경할 뿐이지. 그것이 어떤 관객들의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 혹은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하지는 못하거든. 작가가 던지면, 관객들이 그냥 반응하는 수동적인 소통인 것이지.
어떻게 보면, 관객들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수동적인 감상에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작가가 잘 알 수도 없는 작업들을 들고나와서
'소통'을 외치면서 관객에게 다가온단 말이지. 거기에 대해 수동적인 반응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냥 반응일 뿐이지 '소통'이라고 이야기 하긴 어렵겠지.

냐궁: 어쩌면 지금의 '전시'-'감상' 으로 구성된 지금의 미술관 제도의 구조적인 한계일 것도 같아.
'소통'하면 관객이 참여해서 작업을 만들거나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렵잖아.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 하면, 미술관 벽을 부수는 작업에 관객이 참여해서 망치질을 한번씩 한다던가...

밍: 미술관이 잘도 좋아하겠네^^.


이예린 - After the Rain

이예린 <in Praha>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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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 거꾸로 뒤집어 보니...정말 평범한 사진이구나..

냐궁: 반영을 제외하고 흑백처리한 것 빼면...평범한 사진이야..
현실과 가상의 문제를 논하자는 건가? 그러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비온 후...비의 흔적이 보이는 시간의 세상..(중략).. 내가 가진 눈으로는 명확히 보이는,
내가 밟고 있는 이 세상, 그리고 잔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가녀린 자연의 액자와 그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는 세상...(작업 노트 중)

밍: 작가의 말이 솔직해서 좋네..그리고 물결에 의한 미세한 떨림들도 보이긴 하니까...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도 들고 거꾸로 죽 늘어놓으니까 시각적으로는 괜찮은 것도 같아.
뉴욕 미술사 교수가 적은 데카르트의 허상 현실 천재악마 등등의 말은 닭살스럽네.
굳이 그보다는 뉴욕이라는 국제적인 도시, 그 이미지에 대한 향수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냐궁: 그러게.. 개인적으론 이렇게 큰 사이즈로 인화할 거면 픽셀이 깨지지 않게끔
원본의 해상도에도 신경써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아무리 대형 사진이 유행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지는 디테일은 안타까워...


김선회 - Finding Sun in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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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궁: 사진마다 숨어있는 작가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정말 별로인 사진이 될 뻔 했어.

밍: 전시 서문을 읽지 않았다면, 작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 했어.
작가의 모습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작가의 모습만이라도 칼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그러고보니 '박현두'의 <Goodbye Stranger>작업이 생각나네. 역시 이국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작업인데, 이 작업보다는 분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

박현두, <Goodbye Stranger>

박현두, 시리즈 중.


냐궁: 작가는 관광객도, 현지인도 아닌 경계의 상태인 자기의 모습과, 그런 자기에게 비추어진
무미건조한 도시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흑백으로 랜드마크들을 촬영한 것 같지만, 사진들이
너무나 '잘 찍은' 사진들이라서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덜한 것 같아. 차라리 관광객들이 일반적으로
찍는 구도 - 다소 못찍은 듯한 연출이 자신의 경계상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을 것도 같아.
그리고 본인은 '자화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분명 누군가 찍어준 사진인데, 그렇다면
자화상이라기 보다는 포트레이트, 그리고 그 찍어준 사람에 대한 '소통'의 측면에 있어서
자신이 경계상태에서 '외롭다'라는 느낌은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밍: 같은 맥락에서 이런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는 것 보다는,
어떤 자기 주위의 공동체를 배경으로 대조적인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이 경계상태의
자신의 모습을 전달하는데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경계의 상태..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장소나 문화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 문제 아닐까. 굳이 외국이 아니라도, 학교나, 회사 등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 시작할 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경험하게 되는것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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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궁: 그런데 오늘 본 전시 중에서, 갤러리 그림손에서 있었던 15명의 단체전을 포함해서...
사진작업들이 모두 외국의 이미지-그것도 미국이나 유럽의 모습들인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사대적'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밍: 하긴, 그런 사진에 'XX 해물탕' 같은 간판이 들어있다면 왠지 갑자기 격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 들 것 같기는 해. 앞서 이예린의 뉴욕 사진에서도 지적했지만,
국제적인 도시들의 이미지에 대한 향수도 사진을 감상하는데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

냐궁: 이런 사진들을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
우리들이 가지는 느낌하고는 차이가 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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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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